brunch

매거진 없는 여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이 May 03. 2023

인생일기 15.

벚꽃은 저 멀리.


항암 일정이 3월 초와 3월 말로 두 번 잡혔기 때문에 후다닥 2차를 맞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맞았는데, 한 번 해봤다고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아니까 걱정이 덜 되기도 하고 반대로 걱정이 많이 되기도 했다. 병원에 가서 입원 과정도 잘 거치고, 심전도 검사와 엑스레이, 피검사도 씩씩하게 잘 받고 주사도 맞았다.


밤에 주사를 맞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벌써 두 번 맞았으니까 이제 여섯 번 남았네, 그래, 링거는 많이 맞아봤으니까 그냥 맞으면 되고 약도 잘 챙겨 먹으면 되고… 그러다 보면 낫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싶어서, 그러기로 했다.    

2차 항암 주사. 약아 빨리 내 몸으로 들어와...

이번에는 주사를 맞고 나니 전과는 다르게 손발이 조금씩 저렸다. 손에 차가운 물건이 닿기만 해도 저림이 배가 되었다. 게다가 목구멍까지 아리듯이 저렸다. 물을 마실 때마다 저렸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 남에게 들릴까 봐 조마조마할 정도로 배에 가스가 가득 차고 부글거렸다. 몸에 특별한 증상도 없는데, 미열도 계속 이어졌다. 팔이나 다리, 손등, 배에서는 각질이 좀 더 일어났고, 손가락, 발가락 끝부분이 거무스름해졌다. 그래서 손, 발톱이 하얗게 보일 정도였다.      

아파보이죠? 견딜만해요^^

그리고 입맛이 너무 없어서 몸무게가 계속 줄었다. 꼭 두 숟갈은 먹어야지, 반찬도 좀 많이 먹고, 했지만 사실 어려웠다. 어떤 반찬은 아무리 씹어도 분해되지 않아서 뱉어버렸다. 입맛 도는 약을 먹었지만, 많이 먹으면 토할까 봐 걱정도 되고 배가 가득 찬 느낌이 들었다. 어떨 때는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 목구멍까지 음식이 가득 찬 것 같았고. 그나마 마음이 놓인 것은 멈췄던 생리가 시작되었다는 것. 언제까지 안 하려나 싶었는데, 다행이었다. 또 멈출지 모르지만 할 거는 해야 하니까.     


함께 입원한 언니 중에 대리만족을 위해 유튜브 먹방을 잘 보시는 분이 계셨는데, 나도 물들어서 유튜버들의 먹방을 찾아보았다. 처음에 볼 때는 따라 먹고 싶다고 생각될 것 같았는데, 먹는 것만 봐도 함께 먹고 있는 것 같아서 은근히 효과가 있었다. 다음에 많이 좋아지면 이것도 먹어보고, 저것도 먹어볼 거야. 하며 나름의 리스트를 만들기도 했다.


참, 그리고 같은 병실 언니가 병원에 있는 동안 생일을 맞이해서 생일파티도 했다. 병원의 특성상 거창한 음식이나 큰 축하를 하지는 못했지만, 사진도 찍고 서로 공유했다. 병실 식구들과 가족처럼 이어진 끈끈한 시간이었다.     

병원에선 뉴케어(영양음료)로 생일상을 차리죠^^

요양병원에 들어온 지 한 달 반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추웠던 날씨는 봄꽃이 피면서 따뜻함으로 가득해졌다. 많은 사람들의 카톡 프로필 사진과 인스타에는 벚꽃 사진이 가득했다. 코로나 때문에 병원 진료 외에는 외출이 금지라 창문 밖으로 아주 먼 곳의 보일 듯 말 듯 한 핑크색만 바라봤다. 내가 지금 집에 있었다면 벚꽃길을 걷거나 드라이브를 했을 텐데. 사진도 찍고 핸드폰 앨범은 봄꽃으로 가득했을 텐데. 괜히 샘도 나고 억울했다.


나는 무엇을 잘못했기에 병원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봄을 즐기지도 못할까, 하면 할수록 기분이 나빠지고 마음 아파지는 생각. 하지만 어쩌나… 그래서 딸에게 봄꽃 사진을 찍어서 보내달라고 했더니 다양하게 보내줬다. 그 사진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서 카톡 프로필 사진 바꾸기. 그것만으로도 만족감이 생겨서, 나쁜 생각은 그만두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일기 1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