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은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부침개가 먹고 싶었는데, 고추가 들어가서 못 먹었다. 아빠는 엄마에게 왜 고추를 넣었냐고 타박을 했다. 엄마는 아기한테 주는 것처럼 손으로 부침개를 조금씩 찢어주셨는데, 원래 고추를 넣었기 때문에 알싸하게 매운맛이 나서 먹기 힘들었다. 나는 언제쯤 엄마의 음식을 걱정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요양병원에 있을 때 하도 입맛이 없어서 시켜본 카라향
저녁을 먹고 어버이날 오지 못해서 작은 선물을 드렸고, 엄마는 나에게 쓴 편지를 주셨다. 엄마가 나에게 편지를 주다니. 처음 있는 일인 것 같다. 엄마는 글씨를 못 썼으니 알아서 잘 읽어보라고 했다. 집에 와서 울면서 편지를 읽었다. 아마 엄마는 눈물을 삼키며 이 편지를 썼을 것이다. 부모 자식 간은 뗄 수 없고, 천륜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실감 났다. 정말 눈물이 많이 났다. 이제 엄마의 편지가 내 행운의 상징이 될 것이다.
엄마는 나의 수호천사
5차 항암을 앞두고 요양병원 입원 때문에 남편과 갈등이 좀 있었다. 남편은 면역 주사를 맞아야 하니 요양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고, 나는 집으로 오고 싶었다. 마침 현충일이라 아이들이 집에 다 오기도 하고, “엄마 이번에 집에 와?”라고 계속 물으니 더 오고 싶어졌다. 5차 주사를 다 맞고 교수님께 여쭤보니 면역 주사를 꼭 맞아야 하는 건 아니고, 필요하면 사는 지역의 병원에 가서 영양제 등을 맞으면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집에 와서 쉬면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짧은 외출을 하면서 지냈다. 큰 무리 없이 잘 지내서 6차 항암 때도 끝나고 집으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진작 집에 와서 애들 챙기고 운동도 편하게 하면서 지낼걸. 요양병원 식구들이 너무 친절하고 좋았지만, 역시 집이 최고였다.
나만 주사를 오래 맞는 것 같은 기분...
아침에 일어나서 방바닥을 밟으면 발바닥이 많이 저렸다. 다른 집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바닥인데 발바닥 전체는 저리고, 냉장고에서 나온 반찬통이 손에 조금 닿아도 손끝부터 손가락 전체가 많이 저렸다. 밥을 먹어야 하니 준비를 하는 건데, 남편은 자기가 할 거니까 나한테는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어서 이것저것 도왔다. 매일 새벽마다 꿈을 꾸는데, 오늘은 뭘 먹어야지 하는 꿈이다. 일반 사람들과 다르니 아무거나 먹기 힘들어서 매일 그 꿈을 꾸고 잠을 깼다. 나도 아무거나 막 먹고 싶다. 특히,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를 쭉~~!
< 현재 발행 중인 ‘없는 여자’ 시리즈는 작년 위암 진단 및 수술 후, 마지막 항암까지의 스토리를 회상하며 썼습니다.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생활은 다른 시리즈로 이어집니다. 걱정해 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