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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이 Jun 14. 2023

인생일기 20

얼굴은 흙빛, 인중은 까맣게.

3차 항암을 하고 집으로 왔다. 두 달 만에 사랑하는 아들을 만났다. 훌쩍 큰 키를 보니 대견하고 내가 없어도 건강하게 잘 지내줘서 고마웠다. 잠깐 외출을 했을 때도 손을 잡고 다니고, 기숙사로 돌아갈 때는 꼭 안아주었다. 내 마음이 전해졌길 바랐다.

항암주사 맞는 중.

항암은 맞았지만, 몸을 위해 걷기 운동을 열심히 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만족스러울 만큼. 햇살도 좋고, 물을 봐서인지 시원하고 생동감도 있었다. 직장을 다닐 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올해의 내가 이렇게 산책을 할 때 작년의 나는 바쁘게 일을 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건강을 잘 찾아서 내년에는 일을 해야 하나 싶은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건강이 제일 우선이지만, 아직 젊은 나이에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아쉬울 것 같다.     


4차 항암 후 요양병원에 다시 왔는데, 1인실에 격리하는 것도 싫고 내 마음대로 먹지를 못해서 힘들었다. 간호사 선생님들이나 원장님께서 잘해주셨지만, 그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다음 항암 때는 그냥 집으로 갈까 싶었다. 엄마, 아빠는 면역력 때문에 병원에 있는 것이 좋다고 하셨지만, 내가 힘들다고 하니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하셨다. 6월 초에 5차, 말에 6차가 있는데 그때 고민하기로 했다.

약봉지들.

거울을 보면 흔히 말하는 환자의 얼굴이었다. 얼굴 전체가 흙빛이고, 인중은 수염이 난 것처럼 특히 더 까매졌다. 손가락 끝과 발가락 끝이 시커메지고 조금이라도 차가운 물, 차가운 과일만 잡아도 손끝 저림이 더 심해졌다. 위암 항암치료는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지만, 체중이 많이 줄고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수술 전보다는 머리카락이 더 많이 빠졌다. 카톡이나 글을 쓸 때는 오타가 눈에 띄게 많이 생겼다. 항암 부작용으로 손이 저리면서 물건을 계속 떨어뜨렸다. 부작용의 불편함을 느끼며 다음에는 덜 하길 바랐다.


친했던 지인에게 전화가 와서 6월 중순쯤에 한번 보자고 했다. 조금 달라진 내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까 싶었다. 코로나 때문에 거의 2년 이상을 못 만났는데, 얼굴 보고 수다도 떨어야 하는데. 격의 없이 편하게 지내던 언니 동생 사이인데, 서로의 사정이 조금씩 달라졌지만 반갑게 인사하며 만나기로 했다.     

각질이 진짜 심했는데 이 글 읽으시는 분 놀라실까봐 못 올리겠다..

병원 복도를 돌면서 마음속으로 계속 말했다. ‘ 나는 나을 수 있다.’, ‘나는 가족들을 사랑한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많다.’를 번갈아 말하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그러면 좀 더 힘이 나고 진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병원에 입원한 와중에 내 생일이 있었는데 병원에서 생일을 보내기는 싫어서 퇴원하기로 했다. 그리고 생일 다음 날은 친정에 가야 하는데 내가 먹을 음식을 따로 준비해야 했다. 엄마가 준비하시려면 힘들기 때문이다.


브로콜리랑 단호박, 고구마 등을 미리 찌고, 메추리알과 양송이 볶음, 샐러드 채소 등을 조심씩 반찬통에 담고 보냉 가방에 넣었다. 예전엔 전혀 이런 적이 없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따로 밥을 먹는 것을 보는 부모님은 어떤 기분일까 걱정이 됐다. 친정은 집에서 꽤 멀어서 몸에 무리가 갈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다녀왔다. 엄마는 나를 보더니 꼭 안아주었다. 물건을 정리하고 엄마와 나는 한참 울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얼굴색도 안 좋고 손발에 각질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속상해하셨다. 딸이 암 환자가 되어 집에 왔으니 얼마나 놀라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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