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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atre Romance May 27. 2021

일과 삶을 분리하기

소설가 김훈이 말했지.

 요즘 '아, 내가 다시 일을 시작했구나'라는 깨달음을 종종 머릿속에 되뇌이는 이유는 일에 있어서 보람을 느껴서도, 다시 시작한 일에서 즐거움을 느껴서도 아니다. 통장에 들어온 작고 소중한 월급을 볼 때도 당연히 아니다. 바로 입사 한달 반만에 벌써부터 겪는 무례함과 폭력적인 언행들에 상처받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였다. 좋아하는 (아마 그렇다고 착각하는) 일을 다시 시작했고, 나는 1년간의 쉼 아닌 쉼을 지나온 이후, 일을 다시 시작한지 한달 반만에 서점에서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법>이라는 책을 보자마자 홀린듯이 책을 집어 계산대로 향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그렇게 홀라당 집어든 책을 읽다 발견한 구절이다.


소설가 김훈이 “기자를 보면 기자 같고 형사를 보면 형사 같고 검사를 보면 검사같은 자들은 노동 때문에 망가진 것이다. 뭘 해 먹고 사는지 감이 안 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다” 라고 했는데, 나는 이 말을 아주 좋아한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일관된 모습을 연기할 필요는 없다.


 이 구절이 마음에 들어, 아니 김훈 아저씨의 말이 마음에 들어 메모장에 저장해 두고는 생각했다. 아 그렇지. 내가 원하는 삶은 이거였지. 나는 이런 애였지. 다섯시 반, 땅 하면 퇴근해 한강으로 달려가 해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자전거를 타는것에 인생의 목표를 둔 것 마냥 사는 애였지. 노동과 삶을 철저하게 분리하고 노동이 나를 잠식하지 않도록 뚜렷하게 경계를 긋는 사람이었지. 


내게 있어 이 일을 하며 불행해지는 경우는 크게 세가지인 것 같다. 첫째, 무례한 사람을 웃으며 나는 상처받지 않는 사람마냥 마주할 수 밖에 없는 상황. 둘째, 상처받은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상처를 얹어버리는 상황을 지켜보는 경우. 그리고 마지막, 내 삶을 잠식당하는 경우. 


 다시, 일은 일로써만 내 삶에 두고, 절대 나를 잠식하지 않게 해야지. 정해진 시간에만 일을 하고, 그 외에는 나를 바라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읽고 보고 쓰고, 나를 가꿔야지. 종종 달리며 얼굴에 닿는 바람에 충만해지고 햇빛 아래서 고양이처럼 앉아 일광욕을 하는 소소한 행복에 즐거워해야지. 상처받지 말아야지.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들을 좋은 것을 먹으며 보내는 것에 온 힘을 다 해야지. 촙촙한 공기를 마시며 여유를 부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지. 이런 생각을 했다. 


아, 그래도 물론 일은 열심히, 또 잘 할거야. 할땐 하고! 놀땐 놀자!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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