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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atre Romance Dec 05. 2022

새로운 도시에서의 새로운 출발

LG아트센터 서울

굉장히 오랜만에 "처음 가 보는 극장"에 발을 디뎠다. 오롯이 국내의 극장만을 탐방하기 위해 어디론가 여행 가는 기분으로 집을 나선 것은 2015년 광주에서 개관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이후로 거의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니, 나에게는 무려 7년 만에 방문해 보고 싶은 새로운 극장이 생긴 셈이다. 오랜만에 새로운 극장에 방문한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을 안고 지하철에 몸을 싣었다. 광주까지 버스를 타고 갔던 3시간의 여정을 생각해 보면, 공항철도로 금방 갈 수 있는 새로운 극장이 생긴 셈이니 설렘이 두배다. 공항철도를 타고 내린 곳은 바로 마곡나루 역. 설레는 최종 종착지는 서울의 서쪽, 마곡지구에 지난 10월 개관 페스티벌과 함께 화려하게 돌아온 LG아트센터 서울이다. 

LG아트센터 서울 전경 (출처:www.lgart.com / ⓒBaejihun

LG아트센터는 본래 강남구 역삼동 소재로 GS그룹 사옥 GS타워에 2000년에 개관한 다목적 공연장이었다. LG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LG그룹 산하의 연암문화재단이 문화예술, 과학기술, 학술 등의 분야에서 공익적, 사회공헌적 활동의 일환으로 운영해왔으며 명실상부 한국의 대표 공연장 중 하나로 다양한 분야의 공연들을 지난 20여 년간 관객들에게 선보여 왔다. 새로운 극장을 탐험하기 전에 간략하게 LG아트센터의 특징과 지난 시간 동안의 업적(?)에 대해 살펴보자.

LG아트센터 역삼의 극장 내부 (출처: www.lgart.com)

LG아트센터에는 늘 따라붙는 수식어 하면 두 가지가 떠오른다. '믿고 보는', 그리고 '초대권이 없는'.

이 수식어 아래에는 지난 20여 년 동안 LG아트센터가 고집스럽게 이어온 기조가 있다. 바로 동시대 우리 관객에게 꼭 봐야 할 우수한 공연들을 시차 없이 소개한다는 것. 이러한 기조 아래 일관성 있게 동시대에 떠오르는 파격적이고 새로운 신예 아티스트부터 세계 공연예술계를 이끄는 거장들의 무대까지 과감하게 소개해 왔다. 더불어 국내의 잠재력을 가진 아티스트들을 무대에 올리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단순히 해외의 유수한 작품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내의 아티스트들까지 무대에 올림으로써 세계 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셈이다. 그 덕에 '믿고 보는'이라는 명성을 차곡차곡 쌓아갈 수 있었다. 

여기에다 초대권이 없는 극장을 표방하며 초대권 문화가 만연한 국내에서는 매우 파격적인 걸음을 보여주었고, LG아트센터의 이런 운영 기조에 따라 이후 문체부에서는 단계적으로 국공립극장부터 초대권을 폐지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으며 이후에 공연 분야에서 초대권을 지양하는 분위기가 만들지며 국내의 공연예술계의 문화를 바꾸어 놓는데도 일조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LG아트센터 역삼 시대의 마지막 시즌제 포스터 (출처: www.lgart.com)

LG아트센터는 국내 최초로 시즌제를 도입한 극장으로도 알려져 있다. 시즌제란 전체 공연 일정을 미리 발표하여 공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제도를 말하는데, LG아트센터는 시즌으로 운영되는 공연들을  CoMPAS

(Contemporary Music & Performing Arts Season)라고 명명하고 브랜딩을 키워나갔다. CoMPAS를 통해 LG아트센터는 공연의 장르를 한정하지 않고, 연극, 무용, 클래식부터 월드뮤직, 서커스까지 그 바운더리를 넓혀가며 다양한 공연들을 관객들에게 소개했고, 패키지 제도를 도입해 시즌제로 사전 공개된 공연들을 관객들이 미리 정보를 파악, 취향껏 보고 싶은 공연들을 할인을 받아 패키지로 구매하고 좋은 좌석을 선점할 수 있게 했다.

마곡에 새롭게 지어진 LG아트센터 서울 (ⓒSungyeon Park)

이렇게 지난 20여 년 동안 강남지역의 대표 대형 공연장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던 LG아트센터는 돌연 2019년 7월까지만 역삼의 극장을 운영하고, 이후에는 새롭게 마곡지구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1개의 대극장만 보유하고 있었던 역삼 시즌에 막을 내리고, LG그룹의 주요 기업들이 단체로 입주하는 마곡단지에 블랙박스 극장과 대극장 2개의 극장을 보유한 공연장으로 그 규모 또한 키우겠다는 것이었다. 발표했던 것과는 다르게 역삼의 극장은 2022년까지 운영했지만, 2022년 11월 현재, LG아트센터는 새롭게 지어진 극장으로 이전하고 지난 10월 화려하게 개관 페스티벌을 열었다.


LG아트센터 서울의 내부 (ⓒSungyeon Park)
LG아트센터의 메인 로비와 옥상 테라스 공간 ⓒSungyeon Park

그럼 새롭게 지어진 극장을 살펴보자. 극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바로 '건축'이다. LG아트센터는 오픈하기 극장 그 자체의 건축에도 집중하여 공연장을 홍보할 정도로 건축에 힘을 싣었다는 강점을 지속적으로 내세웠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제주 본태박물관이나 뮤지엄 산을 건축한 것으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직접 디자인하여 그의 건축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된 하나의 작품으로써 새 공간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안도 다다오 하면 떠오르는 노출 콘크리트의 기법이 LG아트센터에도 반영이 되어 있어 외내관이 모두 묵직하고 웅장한 느낌을 줬다. 여기에 튜브, 스텝 아트리움, 게이트 아크라고 하는 세 가지 건축 콘셉트를 적절히 섞어  나무색의 따뜻함, 곡선에서 주는 부드러움을 더해 차가움을 줄 수 있는 콘크리트라는 재질의 단점을 보완하여 극장을 디자인했다. 밖에서 보이는 외부는 유리로 전면을 마감하여 콘크리트의 무게감을 줄이고 내부에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설계했다. 

안도 다다오의 작품 LG아트센터 서울의 내부 ⓒSungyeon Park
2층에서 바라본 LG아트센터의 메인 로비 ⓒSungyeon Park

다만, 개인적으로는 안도 다다오의 시그니쳐인 콘크리트 기법은 드넓은 자연 속에서 오롯이 들어서 있을 때 가장 그 매력이 살아난다고 생각하는데, 이미 드넓은 마곡지구에 빼곡히 들어선 콘크리트 건물 사이에 또 들어서 있는 콘크리트 건물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했고 오히려 볼품없어 보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마곡이라는 젊은 도시에 처음 들어서는 극장인 만큼 새롭게 가져야 할 사명의식과 무게감은 남다를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새로운 극장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올드한 느낌이 났다. 게다가 외부에서 바라본 극장이 꽤나 폐쇄적으로 느껴져 과연 서울식물원 등을 산책하는 젊은 사람들이 호기심에라도 이 공간에 들어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건축의 미를 해친다고 생각해서인지 외부에 개관 페스티벌이 한창임에도 불구하고 그 흔한 홍보물 하나 걸려있지 않았다는 점도 아쉬웠다. 극장이라는 공간의 실제 기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지어졌는지, 누구나 오갈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서 지어졌는지, 또한 관객들의 편의를 생각한 동선으로 내부 구성이 되었는지, 공연을 홍보할 수 있을만한 실용적 기능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지어졌는지에 대한 부분에서는 매우 아쉬움이 남았다.

개관페스티벌 프로그램 중 하나인 DARKFIELD 3부작 공연이 진행되고 있던 U+ Stage ⓒSungyeon Park

역삼동의 LG아트센터는 1개의 큰 대극장만 있었던 것과 달리 새롭게 지어진 이곳에는 오케스트라부터 오페라, 뮤지컬, 연극, 발레, 콘서트까지 공연할 수 있는 1,335석 규모의 다목적 공연장인 LG Signature 홀과 2개 층으로 된 365석 규모의 블랙박스형 극장인 U+ Stage, 2개의 극장이 있다. 비교적 실험적인 작품을 들여오기에는 한계가 있는 대극장만 존재했던 이 전과 비교하면 가변형 블랙박스 극장이 함께 들어섰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큰 규모의 검증된 작품들은 물론 실험적인 작품이나 연극, 작은 콘서트 등을 직접 LG아트센터가 기획, 제작을 시도하기에도 비교적 적극적으로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극장 내에 소형 리허설룸 1개와 3개의 클래스룸 및 스튜디오가 들어선 것으로 미루어 보아 앞으로 직접 작품 기획, 제작에도 손을 뻗거나 혹은 관객들을 위한 클래스도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그 외에도 소규모 전시를 할 수 있는 작은 아트라운지와 카페가 한쪽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LG아트센터 서울 ⓒSungyeon Park

새로운 LG아트센터가 문화예술 불모지와 다름없는 서울 서구권에서 역삼의 명성을 그대로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할 것은 분명하다. 흔히 말하는 고급문화예술의 주요 관객들이 거주하는 강남도, 인구 밀집도가 높고 신생 관객들이 많은 강북도 아니라는 지리적인 위치에서 이미 너무나도 큰 약점과 손실을 지고 가는 것이기 때문. 하지만 비교적 문화 소비에 열려있고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층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고 김포, 인천, 일산, 고양 등 주변 위성도시에서 문화예술에 목마른 소비자들이 가까운 마곡으로 많이 유입될 것이라 예상된다. 또한 주변의 서울 식물원이나 새롭게 지어진 미술관 스페이스K와 함께 마곡지구의 방문해야 할 대표 공간으로 떠오를 것으로 기대된다. 낡은 극장에서 벗어나 안도 다다오라는 세계적인 거장이 새롭게 지은 명품 공간이 탄생했다는 강점도 있다. 잃은 것도 있지만 새로운 출발로 얻은 요소도 분명히 크다. 다만 과거의 명성에 걸맞은 공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분석을 통해 포지셔닝 전략을 짜고, 새로운 브랜딩 방향에 대해 고심하여 프로그래밍할 필요할 것이다. 대기업의 자본력과 지난 20년간 쌓아온 노하우, 네트워크는 이를 타파해 나가기에 충분할 것이다. LG아트센터가 마곡지구에서 앞으로 한국 공연예술의 새로운 20년 역사를 어떻게 써 나갈지 매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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