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져버린 꿈의 실패, 자그마한 말에도 쉽게 흔들렸다.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던 꿈이,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믿음이, 계속 꿈꿨던 앞으로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건지 정말 발 밑이 새까매지는 느낌이었다.
결국, 진로 희망 제출할 때 '취업 희망'이라고 적고 열심히 포트폴리오를 준비했다.
그게 나의 첫 실패이자 절망이었다.
고등학생. 그리고 2학년이 끝나고 겨울방학이 다가올 때. 대학을 가거나, 취업을 하거나.. 이때는 정말 무언가를 정해야 하는 시기였다.
난 아주 어릴 때부터, 노래하고 연기하는 걸 너무 좋아했다. 그냥 좋은 것만이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나름의 신념도 어릴 때부터 갖고 그 꿈을 지켰었다.
하지만, 입시학원을 다닐 환경이 안되었기에 점점 나는 그 꿈을 잡는 힘이 약해져만 가고 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연말 축제 때 나에겐 마지막 동아리 공연을 끝나고 며칠 뒤 아이들이 가장 꺼려하는 선도부 교무실에 들어갔는데, 가장 까다롭고 무서운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불러 세웠다.
긴장했다. 입술에 틴트 바른 게 티가 났나? 치마가 짧다고 하시려나? 생각하는 찰나,
" 네가 이번에 주인공으로 섰던 애 맞지?... 잘했어. 너만 돋보였어. "
라고 해주셔서 순간 복잡한 감정이 들어 감사하다고 황급히 자리를 도망갔고 며칠 후 내가 꿈을 포기할 거라고 말하니 같은 연극부 연출 친구가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줬다.
유일했다. 내가 꿈을 망설일 때 잡아준 그 두 문장들이 날 어지럽게 했다.
이런 말 들을 자격이 있나 내가?
꿈을 포기하기 직전인데.
사실은 모두가 잡아주길 바랐던 거 같다.
겨울방학 내내 곰곰이 생각했다.
결론은 이 능력으로 밥을 먹고 살기엔 월등히 부족하다고 느꼈다. 또 학원을 꾸준히 다닐 수 있는 여력도, 그럴 의지도 부족했다.
나 자신한테도 이렇게 자신이 없는 상태에서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눈물 흘리게 할 수 있는 건 거짓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점점 더 암담해졌다. 지금까지 내 생각대로 안 된 것들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나의 참패였다.
이게 왜 실패고 참패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난 다른 사람들처럼 나약하게 포기하지 않겠다며 굽히지 않았던 나의 어린 날의 다짐을 생각하니 다른 사람들과 순위로 매겨져 패배했던 것보다 그렇게 쓰디쓸 수가 없었다. 내가 나에게 진 기분이었고 세상 탓으로 돌리고 싶었지만 결국은 모두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탓을 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나는 취업 준비를 하고 한 번에 면접에 붙었는데, 회사가 어떤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빨리 학교를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에 덜컥 계약을 하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뮤지컬 극장에서.
어린이 전용 뮤지컬극을 하는 곳이었고 나름 바라보고 서포트하는 것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가끔은 배우분들이 "너도 꿈이 뮤지컬 배우였다며, 아직 젊은데 왜 벌써 포기했어? 다시 도전해봐."
라고 희망찬 말을 던져주실 땐 나도 모르게 기쁘기도 하고 동시에 속상했다.
어느 날, 가장 마음이 어려웠던 날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기념 촬영하는 시간이었는데 한 아이가 인솔하는 나를 빤히 보더니 "언니는 배우 아니에요? 꼭 공주님 같아요. "라고 해줬었다.
그 말을 듣고 순간 울컥했었다. 듣고 싶었던 말이었던 걸까, 믿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런 말을 듣고 기뻐하지 않았으면 했다. 꿈에 미련은 더 이상 없길 바랐다.
그렇게 자기 혐오감이 들다가 문득 아이가 순수하게 나를 배우로 봐준 마음이 너무 기뻤으나 이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가장 우울한 시기를 보내면서 깨달은 건, 아직 나는 그 꿈에 미련이 남았다는 것이었다.
다시 시작을 하기엔 늦어서 취미로만 하자, 생각이 들었다. 내 돈으로 스스로 뮤지컬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아마추어 뮤지컬 공연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큰 시련이 찾아왔다. 취미로 하는 거니까, 어떤 배역이든 즐겁게 해야지 하던 찰나에
뮤지컬 빨래를 하게 되었고 앞서 고등학생 때 나영 역할을 했었던 나로선 나영 역할을 다시 깊게 참여하고 싶었다. 나의 인생사와 아주 조금은 닮아 있는 그녀의 모습이 좋았다. 또 넘버들도 좋아서 배역 오디션도 나영으로 참가했으나 삑사리가 나고, 심지어 2 지망 3 지망 역할도 되지 않고 나보고 배우를 계속해야 한다고 한 연출분이 엄청난 캐스팅을 결정했다.
가장 어렸던 내가, 제일 맡기 싫었던 '할매'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놀라고 무서워서 캐스팅 표를 보자마자 울었지만 어쨌든 이탈은 하고 싶지 않았으니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다. 하지만 마지막 공연이 끝날 때까지 내가 마음에 드는 '할매' 역할을 연기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때 너무 많이 흔들렸다.
모르는 분이 공연이 끝나고 와서 내 손을 잡으며 연기 너무 잘 봤다고 칭찬해주시고,
같이 공연했던 언니의 지인들이 내 팬이 되었다며 감사한 말씀을 해주시고
추후에 다른 공연장에서 우연히 만났을 땐 정말 팬이라며 사진도 같이 찍기도 하고..
이런 순간순간들이 다른 배우 언니 오빠들도 많이 들은 칭찬이었겠지만 나에겐 너무 흔들리는 순간들이었다. 아직 미련이 남았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살면서 많은 성공과 실패의 순간들이 있었겠지만, 난 이 꿈에 져버린 게 아직도 나에겐 큰 좌절이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길이지만, 그렇다고 그저 실패로만 남겨두긴 아쉬운 그런 , 막 다른 길.
내가 꿈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을 보면 모두 목표가 있고 꿈을 지키는 모습을 보니 아름다웠다.
배우가 되겠다는 친구, 돈을 많이 벌겠다는 친구, 집을 사겠다는 사람, 커리어를 쌓고 싶다는 사람...
모두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걸어간다. 결과가 희미할지라도 앞을 본다.
그 꿈의 원동력이 정말 미칠듯이 부럽다.
그 원동력이 자신을 빛나게 한다는 걸,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지금은 심적으로 크게 힘들진 않지만 아직도 난 열정 있는 사람들처럼 실질적인 목표가 뚜렷하지 않아 여전히 실패한 사람으로 남아있다.
실패로 인해 얻은 교훈이 아주 많았기에
그 실패를 마냥 좌절로만 둘 수 없기에
아직도 나는 져버린 꿈에 흔들리기에
잊을 수 없는 나의 첫 참패,
성공의 도약이 되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