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은 감정의 응어리라고 하는데... 오롯이 나의 감정을 돌본 적이 있었던가? 암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너의 마음 좀 들여다봐!"
<당신이 옳다>의 저자 정혜신은 "내 느낌, 내 감정, 내 마음은 내 존재 자체라서 무조건 주목하고 수용해야 한다"고 한다. 그럴 때 다른 사람과도 마음이나 느낌을 주고 받는 존재의 차원에서 만날 수 있단다. '나'를 만날 때 '너'를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찾게 된 곳이 청평에 있는 활명 요양병원(이하 활명)이다. 그곳은 라이트(Light energy and Immunity Growing self Healing Training)를 비롯해 다양한 심신통합치유 프로그램이 있다. 내가 참여한 '100일 수도자 클럽'은 라이트 심화과정이다. 수도자 클럽을 마친 지금의 마음은... 수도자 클럽에 들지 않았다면 어쩔 뻔 했지? 삶이 이렇게 가볍고 따뜻해지다니!
남편의 등에 100번 업히는 기적
어느날 몇몇 도반들과 뜸실에서 뜸을 뜨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숲속공주님(별명)이 말했다. 대부분의 심리적 트라우마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동안 원장님이 말씀하신 내용이다. 숲속공주님도 나에게 몇번이나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 때는 무심코 흘려 들었다. 뻔한 얘기!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내 마음에 살포시 다가와 머물렀다. 이미 정리되었다고 생각한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관계와 나의 인생 전반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았다. 그때 놀랍게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는 한량에 집안 일을 돌보지 않았다. 이 사람 저 사람 행정 서무를 봐주며 받은 푼돈으로 술타령만 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몫까지 농사일을 하느라 힘들어하셨다. 아버지는 어머니 등에 업혀사는 거나 다름 없었다. 나는 어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나의 남편은 아버지랑 참 달랐다. 직장에 대한 불평불만 없이 아주 성실하게 돈을 벌어왔다. 주말이면 아이들을 돌보며 집안일을 잘하는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남편이 내 등에 업혀 있는 것처럼 무거웠다. 남편을 꼭 내가 책임져야할 것 같았다. 이게 뭐지?
그런데 숲속공주님의 그 한 마디에 실타래가 풀리듯 했다. 심리적인 트라우마는 어린시절의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연유한다! 아하! 부모님의 모습을 나와 남편과의 관계에 투사하고 있었구나! 남편이 동반자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 내가 엄마로 빙의되어 살았기 때문이구나!
이 고리를 끊기 위해 나는 주말마다 남편의 등에 업히는 의식을 치룬다. 100번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그의 말이 고맙다. 이전에는 남편이 주말마다 면회 오는 것이 왠지 부담스러웠다. 지금은? 주말이 은근히 기다려진다.
비움과 채움의 100일
활명에 온 이래 외로움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나에게 '외로움'이란 '기댈곳이 없는 마음의 상태'였다. 내가 수십년 동안 너무 외로웠구나!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기독교에 그리고 페미니즘에 빠져 살았구나! 사람에 기대어 사는 법을 배우지 못했구나!
나에겐 외로움과 힘듦과 슬픔을 풀 곳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수도자클럽 숙제 수련반은 안성마춤이었다. 특히 100일 내내 숙제로 주어진 이완삼종세트가 좋았다. 마음껏 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리가 마중물이 되어 몸속 깊이 고여있던 눈물이 흘러나왔다.
이런 작업을 하며, 돌아가신 엄마가 너무 그리웠다. 이때 나에게 나타난 천사, 바로 숲속 공주님! 그녀와 가까워진 것은 도반끼리의 버디코칭에서였다. 그녀는 코치로서 나의 안전한 공간이 되어주었다. 너에게도 문제가 있었던 것 아냐? 이런 뉘앙스의 말이 나올 법도 한데, 그녀는 100% 나의 감정이 옳다고 지지해주었다. 그 때의 안도감이란!
그녀에 대한 신뢰가 점점 깊어졌다. 그녀가 무엇을 하자고 하면, 나는 그냥 '따라쟁이'가 되었다. 옥수수를 따러 가자면 가고, 반딧불이 보러 가자면 가고, 묵언 수행을 하자면 하고, 단식을 하자면 하고... 엄마 손을 잡고 가는 어린 아이 같은 느낌! 편안하고 안심되고 포근하고 따뜻하고 걱정근심없는...
나는 이렇게 이재형 원장님이 깔아놓으신 멍석 위에서 100일 동안 신명나게 한풀이를 하며 치유와 성장을 이루어 갔다. 향방없이 떠내려갈 것 같아 몸을 실었을 뿐인데... 선물보따리를 한 아름 안고 내리는 뿌듯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