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영화 <오베라는 남자>(2015년)를 보고
길을 잃어버렸다면, 낯선 세계로 발길을 옮기는 것은 어떨까요? 새로운 삶이 열릴지도 모르겠네요. 영화 <오베라는 남자>(2015년) 속 주인공 오베처럼 말이죠.
오베는 그의 인생에 구원자와 같았던 아내와 사별하는데요. 거기다 평생을 바친 직장에서 정리해고까지 당하죠. 그래서 그런지 동네에서는 쌈닭 같았어요. 까칠하고 고약하고 괴팍하고... 사람들의 경계의 대상이었죠. 그는 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드디어 거실 천장에 밧줄을 매달고 의자 위에 올라가 목을 조이는데요. 거실 창 밖의 풍경에 화가 치밀어 오르죠. 누군가 주차 금지 구역에서 주차를 하기 위해 소동을 피우는 모습을 보게 된 거예요. 참을 수 없었던 오베는 밧줄을 풀고 밖으로 뛰쳐나갔어요. 이웃집에 이란인 가족이 이사를 와서 그 소란을 피우는 거였지요.
이렇게 오베는 그들과 첫 대면을 하는데요. 오베에게는 성가신 일이 계속 일어나죠. 사다리를 빌려달라, 운전연습을 시켜달라, 아이들을 봐달라...
이런 일도 있었어요. 오베는 3번째 자살로 차고에서 차 안에 가스를 틀어놓고 질식사를 시도했어요. 조금만 있으면 그가 원하는 대로 부인을 만나러 저 세상으로 갈 수 있었죠.
그런데 난데없이 차고문 두드리는 소리에 몽롱한 의식으로부터 깨어나게 돼요. 사다리에서 떨어진 남편을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이란 사람 이웃집 여자가 그렇게 한 거예요. 그들 때문에 오베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어려웠어요.
알고 보면 오베씨네 이웃집에 이란 가족이 이사 온 것은 신의 한 수였는데요. 문명화된 사회일수록 공동체 감각보다 사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잖아요. 아무 때나 남의 집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런데 이란인 이웃은 거침없었어요.
또 하나, 그들이 그렇게 망설임 없이 오베의 사생활을 침범할 수 있었던 것은 오베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일 거예요. 그가 얼마나 완고하고 괴팍한지 경험한 적이 없잖아요. 오베에 대한 선입견, 편견 따위 당연히 없었겠죠. 그래서 그렇게 오베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싶네요.
결국 문화적 충격(?)으로 오베의 단단한 마음에 균열이 가게 되는데요. 그 틈으로 마음 깊이 가두어 두었던 것들이 삐죽삐죽 새어 나오게 되죠. 사랑, 연민, 따스함, 나눔, 도움, 재미, 기쁨, 행복... 삶이 소생해요. 오베는 이렇게 고백하기에 이릅니다.
사는 게 이런 거구나!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낯선 세계가 삶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제가 청평 활명 요양 병원의 프로그램인 수도자클럽 1기생인데요. 한창 수련 중일 때, 묵언 수행과 단식을 했어요. 이재형 원장님은 그것의 의미를 낯선 세계를 만나는 것에 두시더라고요.
먹고 마시고 말하고, 이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세계잖아요. 굶고 침묵하고, 이런 것은 너무 낯설죠. 원장님은 우리가 그 낯선 세계를 만나고 경험하면서 익숙한 생각과 마음의 습관들로부터 벗어나도록 안내하시더라고요.
아무쪼록 낯선 세계에 마음 문을 여시고, 새로운 나를 만나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