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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ONY Apr 13. 2024

좋은호구가되는길

자책vs자해vs자아비판vs자기성찰

살다 보면 누군가에게 상처받거나 관계가 틀어지거나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 고통받는 일이 있다. 사업이 망하거나 직장에서 잘리거나 모함을 당하거나 연인에게 배신당하거나 누군가의 오해를 사거나 갑자기 큰 병에 걸리거나 소중한 사람을 갑자기 잃거나 하는 그런 일들이 있다. 내 잘못이 아닌데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일어나는 교통사고처럼 우리 모두에게는 필연적으로 크고 작은 사고들이 일어난다.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지만, 그 일을 받아들이는 것은 전적으로 한 사람의 선택이다. 즉, 그 일을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계속 어깨에 짊어지고 가느냐, 단지 지나가는 가벼운 이벤트로 생각하고 넘기느냐, 그 일을 계기로 인사이트를 얻어 삶의 변곡점으로 작용하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들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1단계] 자책
내가 어떤 소중한 관계나 중요한 일을, 간혹 심하게는 내 인생 전체를 망쳐버렸다는 후회와 죄책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과정
호구들은 일반적으로 죄책감이 과도하게 많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부터 좌절하고 자신감을 잃어버린 호구들이 많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거나 관계를 맺지 않거나 숨어버리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스스로를 책망하며 두 눈을 꼭 감고 살아갈 지도 모르겠다


[2단계] 자해
나를 탓하고 스스로를 책망하며 나 자신을 등한시하거나 괴롭히는 단계
스스로를 벌주기 위해 나쁜 음식들을 먹거나 술, 담배처럼 몸에 해로운 행동을 하고 해야 할 일을 미루거나 너무 바쁘게 자신을 몰아세우는  등의 극단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게다가 자해라는 행동 자체가 강박이나 중독성이 있기도 하거니와 주변인들에게 동정심을 받으면서 만족하고 안주하기도 하며, 스스로에게 동정표를 던지며 거기에 자기 연민 혹은 자괴감까지 더해지면 영원한 도돌이표를 그리게 된다. 실질적으로 이 단계에 머무는 호구들이 대부분이라고 여겨진다.

[3단계] 자아비판
내 잘못이나 실수했던 부분에 대해 비판과 분석을 시도해 보는 단계로 감정적인 부분을 배제하고 내가 견지하고 있던 시점을 변화시키면서 다각도로  하나의 사건을 다룬다
시간이 지나 마음의 상처가 아물거나 주변 사람들의 지속적인 지지와 돌봄이 존재하는 경우에 도달할 수 있는 상위 단계

배경상황이나 앞뒤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순수하게 그 사건 자체에 대해 잘잘못을 가리는 판단 과정이며 나 이외의 주변 사람들이나 상대방의 입장과 태도에 대한 고찰을 포함한다

[4단계] 자아성찰
나의 결정에 대한 이해와 존중과 반성,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통찰과 깨달음, 그 이후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 내는 최종 끝판왕 단계
주로 내 무의식에 숨겨져 있던 근본적인 결핍이나 욕망에 대한 확인을 포함해야 하며 전문가가 개입하지 않으면 깜깜한 지하세계의 미로를 헤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고행의 시간이다 

그닥 즐겁지는 않은 것이 마치 내 자신이 수술대에 누워 내 마음속을 스스로 해부하는 병리학자가 된 느낌이다


우리는 보통 자아비판의 단계까지도 가기 힘들다. 성찰이라는 건 단번에 쉽게 되지 않는다. 성찰은 수없이 반복하는 지리멸렬한 자기와의 싸움과 반복되는 좌절을 딛고 일어날만한 힘을 가진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을 혼자서 할 수 있는 사람은 성자나 보살 외에는 없다.
나는 나보다 더 나은 통찰력을 가진 능력자들의 도움을 받는 행운이라도 있어서 다행히도 중간에 좌절하지 않고 잘 버텨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끔 누군가에게 나도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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