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울기 전에
2019년 12월, 내 첫 소설이 세상에 나왔다. 평생 글밥을(정확히는 방송밥을) 먹고살았으나 ‘소설 쓰는 나’는 상상도 못 했다. 삶은 내 계획보다 유연하더라. 평생 못할 것 같던 일, 꿈꾼 적 없는 시간도 살게 된다.
이듬해 초여름, 영화사에 판권이 팔렸다(그렇다고 꼭 영상화가 되는 건 아니지만, 신인 작가에겐 금전적 도움이 됨). 출판사는 후속작을 이야기했다. 내 삶은 자주 그랬던 것 같다. 재물복은 항상 비껴갔지만, 일만큼은 정해진 운이 있는 것처럼 다음의 기회, 다음의 자리가 곧장 찾아왔다. 남이 샘낼 정도는 아니다. 다만 뭘 해야 할지, 막막할 일은 없었다. 뭐든 그만두면 떠밀리듯 다음 일이 찾아왔다. 분야를 바꿔도 장르를 바꿔도 마찬가지였다. 뒹굴뒹굴 쉬는 시절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에는 소설가로 살겠구나, 했다. 이왕 붙든 기회 열심히 해보자고 계획도 구체적으로 세웠건만, 그해 더위가 극성이던 계절에 허리가 고장 나고 말았다.
별것 없는 아침이었다. 어제와 같은 시간에 눈을 떴고 한 번에 몸을 일으키지 못해서 방 천장을 구경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어제도 그제 아침에도 구경한 천장이었다. 손바닥으로 눈을 비비고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고양이 물그릇을 씻었다. 고양이 밥을 챙기고 나서 내 몸을 씻는 게 오랜 루틴이었다.
반쯤 감은 눈으로, 그릇에 새 물을 담아 고양이 밥상에 내려놓다가 균형을 잃었다. 물그릇을 두 개나 들고 있었으니 넘어지면 큰일이었다(돌이켜보면 물을 쏟거나 그릇을 깨는 게 차라리 나았다). 버티다 주저앉았다. 양손이 물그릇에 묶여 있어 바닥을 짚을 수도 없었다. 엉덩방아를 찧는 순간 허리 뒤쪽에 낯선 충격을 느꼈다. 중요한 뭔가가 툭,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뒤늦게 깨달은 통증이 너무 끔찍해서 혼자선 일어서지도 걷지도 못했다. 수술을 요하는 추간판탈출증(디스크 탈출) 진단을 받았다.
침대 위에서의 삶이 시작됐다. 아침에 잠깐 구경하던 천장을 지긋지긋하게 봤다. 당장 모든 일을 쉬어야 했다. 누워서 종일 전화를 돌렸다. ‘못해요.’, ‘미안해요.’, ‘그렇게 됐어요.’만을 반복해서 뱉었다. 돌아누울 때도 이를 악물어야 하는 처지에 컴퓨터 앞에 앉겠다는 건 욕심이었다. 모아둔 알량한 저금에서 야금야금 생활비를 파내 먹으며 버티기로 했다.
살다 보면 이런 때도 있는 거지. 6개월만 견뎌보자, 했다. 당장 직립 보행을 못할 뿐 죽을병은 아니잖냐고 나를 다독였다. 최악의 상황이래 봤자 수술뿐이다. 친구도 가족도 잠시 걱정은 했지만, 혼자 넘어져 디스크가 터졌다며(정확히는 탈출이야!) 다들 웃었다. 그만큼 별일 아닌 것 같았다.
4년이 지났다. 이제 침대에서 벗어나 건강히 잘산다고 적고 싶은데, 여전히 나는 아픈 사람이다. 중심이 무너지니 몸 전체가 삐걱댄다. 이제는 목 통증에도 시달리고 양어깨는 번갈아 오십견을 앓았다. 비 오는 날이면 칼에 베이는 것 같은 아픔을 견뎌야 한다(올해도 곧 닥칠 장마가 너무 무섭다). 전에 없던 알레르기 증상으로 고통받는 데다가 제작 년에 발병한 천식은 낫질 않는다. 뭣 좀 해보려 하면 몸뚱이가 발목을 잡는다. 잠깐 쉴 줄 알았지, 여태껏 쓰러져 있을 줄 몰랐다.
모든 일에서 죄인이 되었다. 어떤 일은 내가 돕는 처지였으나 시간을 지키지 못하니 죄인이다. 주 수입원이던 장기 프로젝트는 자신이 없어 죄다 거절했다.
‘그러다 복귀 못 해.’, ‘지금 이럴 때야?’, ‘배가 덜 고프냐?’
거절의 대가로 듣게 된 말들이 조금씩 선을 넘는다. 자연스럽게 관계도 정리된다.
오랜만에 약속을 잡아도 갑자기 시작된 통증 때문에 나가지 못할 때가 많다. 맑은 날에는 나도 아픈 이유를 알 수 없다(의사도 모른다는데). 이유를 모르니 해명도 어렵다.
‘아파서 못 나가겠어.’
핑계처럼 들리는 진실을 몇 번째 들이미는 나도 민망하다.
먹고살아야 하니 아침이면 여지없이 컴퓨터를 켠다. 밀린 일도 제대로 해결 못 하는 주제라 마감 없는 소설 따위 쓸 여력이 없다(소설은 생활비를 못 준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통증이 있으면 서럽다. 글을 보내주기로 한 시간이 코앞인데 몸뚱이가 또 눈치 없이 굴던 날, 한 시간 쓰고 한 시간 눕고 다시 쓰고 눕고를 반복하다 울어버렸다(신경 주사 맞을 때도 안 울었는데).
삶을 너무 얕잡아 봤을까. 지금까지 별별 일을 견디고 해냈듯 허리 통증쯤은 쉬이 이겨낼 줄 알았다. 치료가 길어지면 우울증 약을 함께 처방받기도 한다는 얘길 들었을 때도 남의 일이라 여겼다. 무기력하고 우울한 상태로 글 한 줄 제대로 못 쓰게 될 줄 몰랐다.
그렇게 초라해진 삶의 어느 날(그러니까 오늘), 눈 뜨고 지금까지 어떤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다(가끔 이런 날이 찾아옴). 가볍게 몸을 일으켜 커피를 한 잔 들고 창가에 섰다. 새벽녘의 고요함, 개와 함께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의 여유로움, 참을 고통이 없어 당당히 두 발 딛고 서 있는 ‘나’까지 모두 사랑스럽다. 아픈 날과 아프지 않은 날이 반복되는데 어째서 아픈 날에만 집중해 불행해지려 했을까(이러다 내일 다시 아프면 서러움이 두 배가 됨).
‘그런 시기가 있더라.’
선배들이 누워 있는 날 위로하며 해준 말이다. 너무 아플 땐 귀에 들어오지 않던 말을 오늘 뒤늦게 꺼내 본다. 견뎌내야 한다는, 누구나 겪는 생의 그런 시기. 지금이 내게 그런 시기일까(그렇대도 너무 길다 정말).
그런 날에 대해 써 볼까. 긴 호흡이 힘들면 짧게라도. 쓰다가 눕다가 눈물을 못 참고 펑펑 울어버린 지금에 대해서 써 볼까. 망설이다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견디다 보면 지나가 버릴, 나의 ‘아픈 시절’에 대해 주절주절 늘어놓다가 지웠다가, 다시 늘어놓다가 여기 이 문장까지 오는 데 두 시간이 걸렸다.
오늘도 이어지는 나의 ‘그런 시기’에 대해 써 보려 한다. 너무 우울하게는 말고, 그렇다고 마냥 우스운 얘기만 늘어놓지도 않을 것이다. 천천히 심호흡하며 적어보겠다.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리다 보면 ‘그런 시기’ 따위 훌쩍 지나갔기를 바라면서.
컴퓨터를 뒤졌더니 넘어져 처음 병원에 간 순간부터 각종 서류와 병원 방문 일정을 정리해 둔 폴더가 있더라(기특한 과거의 나). 걷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매일 몇 분을 걸었는지 기록해 둔 엑셀 파일도 있다. 3년 전부터 쓰고 있는 일기장에는(비록 아파죽겠단 소리가 대부분이지만) 언제 울어버렸는지, 언제 울음을 참았는지 꼼꼼히 적어두었다. 글감 떨어질 일은 없겠다. 다행이다.
어딘가에서 나와 비슷한 ‘통증의 시기’를 마주하고 있을 당신께도 내 작은 목소리가 닿길 바란다. 우리 함께 지루하고 고독한 아픔의 시절을 건너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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