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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희 Oct 17. 2024

#03. 여름이었다 하필이면

쓰다가 눕다가 울다가 

  덥다. 지독히도 습하고 고통스러운 여름이다.

      

  4년 전, 내가 척추 질환으로 드러누웠던 그때도 여름이었다. 아파서 환장할 때야 계절이 춥든 덥든 중요하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니 척추 환자에게 여름은 특히 가혹한 계절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걷는다. 척추 질병을 앓는 전우라면 무슨 말인지 아실 것이다. 허리와 목이 아픈 사람들, 튀어나온 디스크로 신경이 눌린 사람들, 그래서 팔과 어깨, 다리와 발가락까지 아픈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 바른 자세로 걷기다. 눈물 날 정도로 아픈데 무조건 참고 걸으란 말은 아니다. 다만 걸을 수 있다면 일어나 걸어야 한다. 평생 누워 지내고 싶은 게 아니라면.     

  

  허리를 펴고 고개를 쳐들고(척추의 신이라 불리는 어느 의사 선생님 말씀으론 한껏 건방진 자세로) 걸어야 한다. 적당한 보폭으로 씩씩하게 팔을 휘저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굽은 뼈가 예쁘게 펴지고, 근육이 든든히 뼈를 지지할 수 있게 되며, 밀려난 디스크는 제 자리로 슬금슬금 들어가고, 터져 흘러나온 디스크 수액이 제대로 흡수된다. 시간은 꽤 걸리지만 그 길만이 살길이다(물론 그사이에 주사도 맞고 처방받은 약도 꾸준히 먹어야 함).      

  

  비극은 내 허리 디스크가 문제를 일으킨 게 6월 말이었다는 것이다. 병원을 옮겨 MRI를 찍고 최종 진단을 받고 주사를 맞고 겨우 두 발로 딛고 설 수 있게 되었을 때는 8월 초, 땡볕 더위의 한복판이었다.      

  

  처음엔 하루에 두 번 10분씩 걸었다. 고작 10분이지만, 그때는 최선이었다. 코어 근육이 망가져 있었다. 누워 지내는 사이 내 속 근육이(있는지도 몰랐네) 서둘러 짐을 싸 도망가 버렸더라. 허리 디스크가 튀어나오기 전에는 3분 거리였던 편의점이 아픈 걸음으로 10분 넘게 걸렸다. 집 앞 골목에서 아장아장 아픈 티를 팍팍 내며 걷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물에 빠졌다 건져진 사람처럼 온몸이 축축했다. 이를 악물고 아픔을 참으며 걸었으니, 식은땀이 쏟아지기도 했겠지만 심각하게 더운 날들이었다. 그 길에, 땡볕에 나와서 걷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걸음마 배우는 아이처럼 열심히 걸었다. 나중엔 꽤 속도가 붙어서 제법 사람답게, 시간을 늘려 걸었다. 그러나 가혹한 뙤약볕은 집 밖으로 나서기 두려울 정도였다. 더 걸을 수 있을까 가늠하기 전에, 열사병으로 쓰러지는 건 아닌지 고민이 될 정도로 지독한 볕이었다.      

  

  더운 날씨는 걸을 때뿐만 아니라 누워 있을 때도 고통이다. 종일 에어컨을 켤 수는 없었다. 전기요금도 걱정이지만 계속 찬 바람을 쐴 수 없는 몸뚱이라(결국 냉방병에도 시달림) 적정한 온도를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가만히 누워 있는 사람에겐 에어컨의 냉기뿐 아니라 선풍기 바람도 곤욕스럽다(진짜 가만히 누워만 있어 보면 알게 됩니다). 참을성은 아픔을 참는데 죄다 끌어 쓰기 때문에, 약한 바람도 거슬린다 싶으면 참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리모컨을 찾아 에어컨이든 선풍기든 다 꺼버렸다.      

  

  진통제와 신경 약은 통증에도 잘 들었지만 잠도 잘 불러왔다. 차라리 고마운 일이었다. 종일 누워만 있는 사람은 잠까지 오지 않으면 진짜 할 일 없이 멀뚱대야 한다. 그러면 속을 시끄럽게 만드는 생각이 꼬리를 이어 괴롭힐 것이므로 어떻게든 잠드는 편이 좋았다. 일어나 걷거나, 먹거나(약 때문에 억지로 먹음), 생리적 문제를 해결할 때 빼놓고는 잤다. 신생아처럼 하루 대부분을 자는 데 썼다.      

  

  다시 말하지만, 여름이었다. 에어컨과 선풍기의 예약 시간이 끝나버린 줄도 모르고(혹은 내가 끈 것도 잊어먹고) 비몽사몽 지내다 보면 몸 어느 한 군데도 빠짐없이, 입고 있는 것 무엇 하나 예외 없이 땀으로 젖었다. 돌아눕는 일도 고통스러워 어금니를 깨물고 비명을 내지르는 처지라 일어나 앉는 것, 옷을 갈아입는 것, 젖은 몸을 씻는 것 역시 고통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그해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땀띠가 온몸을 덮어 어떤 고생을 더 했는지 자세히 덧붙이지 않겠다. 더러웠던 그 시절을 굳이, 시시콜콜 알릴 순 없으니까(알고 싶지도 않을 테지요). 찬 바람 부는 늦가을쯤에야 보송한 몸을 되찾을 수 있었다.      

[선풍기에 기대 누운 어느 여름날의 고양이 철수씨]


  여름이 가혹한 이유는 또 있다. 앞서 말했듯(‘03. 비 오는 날마다’ 참고) 시시때때로 내리는 비 때문이다. 2020년 그해 장마가 어찌나 길던지, 다시 찾아보니 7․8월 내내 비가 내렸더라. 습도와 기압으로 인한 통증은 약도 못 이긴다.    

  

  그해 여름, 2주에 한 번 신경 주사를 맞으러 대학병원에 갔다(너무 아팠던 공포의 신경 주사). 주사를 세 번 맞고도 차도가 없으면 결국 수술하기로 했는데 의사가 통증이 나아졌느냐고 물을 때마다 내 대답은 매번 ‘비가 와서 잘 모르겠어요’였다. 의사도 다시 묻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그해 정말로 많은 비가 내렸다. 


  비가 올 때마다 차원이 다른 고통을 맛보고 나니 빗방울이 한없이 두렵다. 지금도 예보에 비 소식이 있으면 며칠은 몸을 사릴 정도다. 어른 흉내 내며 ‘비가 오려니 찌뿌둥하네’라고 장난스레 내뱉었던 어린 날들을 반성한다(오늘도 찾아온 반성의 시간).     

 

  게다가 비가 오면 밖으로 나갈 수 없어 거실, 좁은 공간을 빙글빙글 도는 것으로 걷기를 대신해야 한다. 밖에서 걷는 것보다 효과는 현저히 떨어진다. 여름은 해가 뜨겁거나 비가 쏟아지는 날들뿐이니 걷는 게 정말 중요한 척추 환자에게 비효율의 계절이 틀림없다.      


  인상적인 사건을 겪고 나면 그때의 모든 게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는다. 내 마음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했던 고통의 날들, 그해 여름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특별한 기억이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여름만 되면 서로 전화를 걸어 잔소리를 주고 받는다. 

  “자세 바로 하고 있어? 허리 펴고 앉아야지.” 


  그러니 여기까지 읽어주신 당신도 부디 바르게 자세를 정비하시길. 고통의 날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아직, 여름이 한창이다.    






✔덧. 스치듯 이야기한 ‘신경 주사’에 대해서는 언젠가 따로 쓰겠다. 어린이 시절, 보건소에 예방주사를 맞으러 갔을 때도 겁먹지 않았던 나는 살면서 주삿바늘이 무서웠던 적이 없었지만, 허리에 바늘이 꽂히던 그 순간 달라졌다. 그날 아침, 같은 주사를 맞기 위해 대학병원 복도에 앉아 있던 겁먹은 사람들과 커튼 너머로 울려 퍼지던 어른들의 비명과 그 무자비한 공포를… 용감히 전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되짚어 보기도 싫은 순간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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