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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daal Apr 11. 2023

나의 소스는 무엇입니까?

narrative_recipe: 채소구이와 미소타히니 드레싱


'너는 뭘 좋아하니?'라고 질문을 던지면 보통 '어른'들은 '어떤 거? 먹는 거? 아님 행동?'이라고 되묻더라. 그런데 7살 전후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정말 상상도 못 한 것들을 이야기해. 들어보지 못한 만화 캐릭터나 집에 있는 장난감, 혹은 갖고 싶은 물건. 어떤 아이는 이름을 대. 그게 누군지 물어보면 유치원 여자친구래. 여기서 내가 발견한 특징은, 우리 어른들은 분류를 하려 하고 정답을 맞히려고 한다는 거야. 반면, 아이들은 출제자의 의도나 상황은 전혀 상관하지 않아. 휘둘리지도 휘말리지도 않아. 다만 지금 순간에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가 머릿속에 떠오르면 망설임 없이 뱉어낸다는 거지.


미소와 타이히 드레싱을 얹은 채소구이, 현미들깨 주먹밥


그린디자인 윤호섭교수님은 (@hoseob__yoon) 낡은 티셔츠나 천가방에 녹색 페인트로 환경과 관련한 멋진 그림을 그려주시는 분이야. 직접 만났을 때 그 느낌은 설명할 단어가 존재하지 않을 특별함이었어. 지난 주말 농부시장 마르쉐 혜화에서 페인팅을 하셨는데 녹아내리는 지구, 웃는 별 지구, 원 지구 세 가진데 뭘 그려줄까?라는 질문에 아이는 '토끼요!'라고 답했다는 글이 올라왔어. 그치! 인생은 주관식이라구요!


원 지구에 큰 귀 얹어 아이 입은 앞치마에 토끼를 그려주셨대. 난 전혀 모르는 아이 맞아. 그런데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아이를 며칠째 생각하고 있어. 위대한 아이들, 항상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 보다 몇 곱절 지혜롭고 신비로워. 그래서 그들과의 대화는 새콤달콤해.


너무도 자주 얘기한 거야. 알록달록 채소는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는 걸. 그냥 가볍게 쪄서 소금과 올리브유 혹은 들기름으로도 훌륭하지만 가끔 나는 라면이 당기는 느낌으로 채소에 진한 드레싱을 입히고 싶을 때가 있어. 채소를 에어프라이어에 구워서 타히니 (참깨를 묽은 제형이 되도록 푸드프로세서로 갈아 낸 것)와 미소, 메이플시럽과 약간의 진간장, 현미식초와 알알이 머스터드를 넣어서 드레싱을 만들었는데 세상에 채소 다 먹었잖아. 엄마가 늘 하는 말씀 중에 '얘, 내가 만들었지만 너무 맛있다.'가 있어. 내가 오늘 그 말을 해버렸지 뭐야. 비율은 중요하지 않아. 배합은 주관식인걸. 양념장 배합을 퍙생 알려주지 못한 엄마는 ‘얼만큼 넣어?’라는 나의계속된 질문에 짜증을 내셨지. ‘얼만큼이 어딨어, 그냥 맛 보면서 넣는거지!’ 타히니와 미소를 섞으면 너무 꾸덕하기 때문에 나머지 액체 종류를 넣으면서 흐르는 제형이 되면 그걸로 된 거지.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단 종류의 것은 '이렇게 많이?'라고 생각 들 때 그만큼 더 넣어야 맛이 있더라고.


자투리 채소를 넣은 볶음밥에 약간의 굴소스와 타이바질을 넣으니 나는 태국에 와 있었다.


밋밋할 수 있는 채소에 가끔 이것저것 섞어서 드레싱을 만들어 보아. 짠맛, 신맛, 단맛을 잘 조합하고 거기에 고소한 무언가를 얹어주면 항상 멋진 드레싱이 되더라.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 나의 소스는 무엇일까? (엄연히 말해서 소스와 드레싱은 다르지만 소스라 쓰고싶어.) 매일 같은 색,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천가방을 들고, 같은 신발을 신고, 같은 모자를 써. 모자 속으로는 양갈래로 대충 꼬아 묶은 어중간한 길이의 머리가 자연스레 지저분하지. 지금껏 주위에서 들어본 말을 종합하자면 나는 '애월에서 만날 것 같은 도시에 사는 히피 혹은 집시'.



마치 아이들의 새콤달콤함처럼 이런 밋밋한 나 자신에게 소스를 만들어 준다면 나는 그것이 남들보다 우월한 기술이기보다는 다정함이길 바라. 관찰하기를 좋아하고 보고 들은 것으로부터 필요한 것들을 주워 모으는 걸 좋아해. 그것들 중 대부분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 표현, 태도들이야. 마음에 종일 걸리는 말을 줍게 되면 그것을 어떻게 달리 표현할까를 생각해. 반대로 멋진 표현들을 줍게 되면 기록해 두었다가 꼭 사용해. 그렇게 나는 다정힘 ('힘'이라고 쓴 거 맞아.)을 기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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