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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daal May 16. 2023

나에게 고마워할 필요 없어

narrative recepi: 베지마잇토스트

돌고 도는 세상이란 걸 믿어. 지구는 스스로 돌아. 태양을 돌아. 엄마에게 짜증을 낼 때면 '너도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워봐라.'라고 하시잖아? 아직 그런 일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일어날 법한 일이라고 생각해. 왜냐하면 모든 것이 돌고 도니까. 도는 게 또 뭐가 있을까? '너한테만 하는 말이야'에 뒤따르는 그 말도 돌고 돌지. 


친구의 초대로 도쿄에 다녀왔어. 밀가루가 들어간 건 모두 '빵'이라고 부르는 나를 데리고 그녀는 '케잌'투어를 갔어. 그녀의 직업은 빠띠시에인데 나에게는 '빵'과 '과자'의 차이는 있어도 '빵'과 '케잌'의 구분은 없어서 지인들에게 그녀를 소개할 때면 '빵 만드는 일 해요.'라고 하지. 히라가나만 이십 년째 반복하고 있는 나에게 언어가 통하지 않는 미지의 그곳에서는 아이가 된 기분이 들었어. 여기저기서 내민 작은 도움과 관심에 감사하는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여행 마지막날엔 '우리 한국 가면 일본에서 여행온 사람들에게 친절을 되돌려주자.'라고 작게 다짐을 했어.



나중에 알고 보니 무척 부자동네였던 도쿄 외곽은 작은 도시에 갔는데 이런 시골에 무슨 빵집이 그리도 많은지, 친구는 홀린 듯이 이 가게 저가게 들어갔고 나올 때마다 기념품처럼 쌓인 빵들을 (케익) 어느 교회 계단에 풀어놓고 맛을 보았어. 아침 11시나 되었으려나? 나는 단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늘 얘기하지만 맛있는 단거를 조금 먹는 건 좋아하더라고. 어떻게 알 수 있냐면 엄청 빨리 먹는대. 맞은편에 앉아 음미하는 빠띠시에의 관찰결과가 그래. 전문가가 그렇다고 하니 그게 맞을 거야. 그래도 아침에 빵 (케잌) 5개는 무리였고 그녀도 미안했는지 아니면 뒤에 기다리는 빵 (케잌) 일정을 소화하려면 브레이크타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우리는 해장을 하러 식당에 들어갔어.



와....... 손님이 휘몰아치고 갔는지 정식이 담겨있었을 쟁반들이 부엌에 들어가지 못한 채 주방 입구 테이블에 줄을 서 있었고 주인이자 요리사이며 동시에 서빙과 계산을 하는 그 남자는 우리에게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고 짧은 눈길로 '어, 너희들이 들어온걸 내가 인지했어.' 정도의 표현을 했어. 얼마나 지났을까 뻣뻣한 태도로 우리를 테이블에 안내했고 까막눈인 우리는 옆 테이블에서 뭘 먹는지 관찰한 후 점심을 주문했어. 


와...... 이게 만원도 안된다고? 

내 뱃속에서는 다시 빵 (케잌)을 만드는 중이었어. 밀가루, 계란, 버터, 설탕. 뱃속에서는 휘핑크림을 만들고 버터와 설탕을 녹이고 있었어. 어서 장국을 마시고 밥으로 중화를 시키고 싶다는 생각뿐. 그런데 정작 음식이 잘 들어가지 않더라고. 맛은 있는데, 정말 맛이 있는데 버터와 설탕이 윤기가 흐르는 쌀밥을 거부하고 있었어. '고시히카리야, 너는 케잌 재료가 아니잖아, 나가줄래?'라고 점잖게 말하고 있었어. 



어떤 식재료가 귀하지 않겠냐마는 '점심시간'이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식당주인이자 요리사이자 서빙을 하는 저 남자가 만든 3만 원짜리 같은 만원짜리 음식을 남길 수는 없다!' 결의를 다지며 조금씩 음식을 입에 넣었고 맞은편의 관찰자는 '못 먹겠으면 억지로 먹지 마.'라며 나에게 남길 명분을 주었어. 


'그렇지? 무리지?' '나 그런데 아저씨한테 얘기하고 싶어. 나의 작은 사정을.'


그녀는 2천엔을 꺼내주며 '가서 계산하면서 말씀드려.'라고 했어.


나는 구글번역기에 '제가 배가 불러서 음식을 남겨서 죄송합니다. 정말 맛이 있었습니다.'를 일본어로 바꾸어서 외우려고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았어. 관찰자는 내가 스피커를 눌러서 기계가 정확한 발음으로 의미를 전달하길 권했지만 나는 사람의 목소리로 톤과 멜로디를 전하고 싶어서 아저씨 앞에서 화면에 적힌 발음을 보고 읽었어. 그렇게 무뚝뚝하던 그의 표정은 아이 같은 귀여움으로 바뀌었고 전쟁에서 이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전사처럼 웃었어. 전쟁이나 전사등의 비유가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식당은 정말이지 혼돈의 도가니였거든. 입구까지 배웅을 받은 우리는 마음이 전해졌다는 데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어. 그리고 다시 힘을 내서 빵(케잌) 두 번째 일정을 시작했어. 



다음날 나는 서울로 먼저 돌아왔어. 공항 꼭대기층에서 먹은 타코야키가 제일 맛있었다며 뒤따라 오는 친구에게 정보를 흘리며 말이지. 타코야키가 뱃속에서 사라질 시간만큼 비행 후 무사히 한국에 닿았어. 공항에서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하려는데 누가 봐도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자신보다 더 큰 짐을 하나씩 옆에 끼고 난감한 공기를 퍼트리고 있었어. 상황을 보니 그들은 자전거를 가지고 지하철에 타고 싶어 했으나 메트로 규정은 평일에는 예약을 한 경우에 한해 허용된다는 거야. 역무원에게 다가가서 나의 관찰내용이 맞는지 여쭤보았고 그는 이미 그들에게 불가능을 통보한 상황이었다고 했어. 그들에게 다가가서 내가 큰 택시를 불러주겠다고 하며 목적지를 물어보았어. 사실 나도 큰 택시를 부르는 법을 몰라 네이버에 검색을 하고 있었는데 역무원이 우리에게 오더니 역장에게 일시 허가를 받았으니 통과하라고 하는 거야. 규칙은 규칙이지만 역시 사람은 융통성이 필요해. 밤늦은 시간에 집채만 한 자전거 두 개가 다른 승객들에게 크게 방해가 될 것 같지는 않았거든. 게다가 그들의 목적지는 고작 두 정거장이었어. 



운서까지 가는 동안 그들의 여행 계획을 들었고 연신 고맙다고 하는 그들에게 나는 짧은 도쿄 여행동안 받은 호의를 돌려주는 것뿐이고 이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니 너희가 안전하게 자전거로 부산까지 잘 가기를 바랄 뿐이라고 화답했어. 고작 두 정거장이지만 공항에서의 두 정거장은 꽤 긴 구간이라 십 분 정도 우리는 대화를 이어갔고 다시는 연락할 일이 있을 거란 생각은 꿈에도 못한 채 서로의 SNS를 주고받으며 헤어졌어.


한두 시간쯤 흘렀을까. 지인이 새로 연 채식식당에서 브리또를 먹고 있는데 메시지가 왔어. '내 자전거가 망가졌어. 문제는 이게 일반 자전거가 아니라서 고칠 수 있는 곳을 찾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 도와줄 수 있니?'


비행기 화물로 이동하는 동안 카본 프레임이 깨졌고 이대로 부산까지 갈 수 없는 상황인 거야. 주말이기도 하고 겉멋만 들어 자전거라고는 브롬톤밖에 모르는 내가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찾는 건 쉽지 않았지만 다음날 저녁까지 수소문하고 통역을 도우며 그들이 한강을 달리는 것을 시작으로 부산에 닿는 여정을 지켜볼 수 있었어.


그들이 보낸 서울에서의 일주일을 나도 같이 사는 기분이었어. 모스코에서 온 두 젊음은 언어가 통하지 않고 자전거로 여행하기 쉽지 않은 한국에서 나도 평생 한번 가본 부산까지 무탈하게 여정을 마무리했고 나는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더라. 서울에 돌아와서도, 그리고 내가 시드니로 돌아와서도 그들은 줄곧 고맙다며 '너와 함께한 모험'이라는 표현과 함께, 굴곡이 있었던 이 여행을 더욱 추억하는 듯했어. 러시아에서 수비니어를 보내주겠다며 나의 주소를 물었고 나는 거절하기보다는 '모스코의 조각이 기다려져.'라고 하며 참 기쁘게 수락했어. 



나의 작은 호의가 사실 눈덩이처럼 커져서 분주했던 근무시간에 자전거가게에서 연락이 왔을 때는 '이게 무슨 오지랖이니'하는 생각이 들었었지만 나는 그들이 친절의 씨앗을 심었다고 믿어. 여행에서의 친절은 세계의 규율 같아. 나에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나도 받을걸 돌려주는 것뿐이야. 그리고 너 역시 그렇게 할 거라 생각돼.



3주의 여행 끝에 돌아온 시드니에서 첫 아침은 베지마잇을 바른 토스트였어. 그녀는 믿지 않지만, 내가 단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던가? 쨈보다는 세이보리한 (마치 밥과 반찬 같은) 맛의 베지마잇은 우웩 하며 뱉는 사람이 꽤 있지만 나는 처음부터 좋아했었어. 간장과 치즈를 조려 낸듯한 스프레드에 버터와 1:2 비율로 갓 구운 사워도우에 발라 먹으면 세상에서 가장 짭조름한 아침이 되지. '짠'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데 비해서 '짭조름'은 간이 딱 맞는 긍정의 맛이야.



이번 여행에서는 친구와의 수다, 맛있는 식당과 카페에 가는 그런 일상보다는, 사람과 사람을 여행하는 시간이었어. 그런 나를 알아보았는지 친구는 나에게 '나그네'같다고 이야기했어. 사람을 여행하는 나그네. 조금 더 단순한 생각, 단조로운 시간, 담백하고 간단한 음식, 간결한 말을 하고 싶어. 좋아하는 맛 하나 혹은 두 개 쓱 발라서 따뜻하게 먹는 토스트가 그러해. 담백하고 간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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