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경 울림 Nov 23. 2024

만기 낙과

애초부터 씨앗으로 선택된 낙하였다네

낙과였지

가지가 부실해서였을까

아니면 비바람이 너무 세었던 것일까

누구의 잘못을 셈하기에는 몹시 아팠어


뒹굴었어

이리저리 제멋대로

생채기 나버린 껍데기 틈 사이로

흙먼지가 끼어 들어와 엉망이 되었어


들리었네

누군가의 손길에

흐르는 생수에 둥글둥글 닦아 주시니

보암직하고 먹음직해 제법 과일다웠어


생채기쯤 깎아내면 그만이지

과일이야 맛있으면 그만이지

조심 조심 껍데기만 깎아내면

누가 알겠어 내가 낙과인줄


이제 됐어 와서들 보라구

둥그스런 과육에 쌔하얀 과즙

보암직하기도 하고 먹음직하기도 하지

근사한 접시에 담겨서 옮겨질


줄로만 알았는데

더 깎아내라니 무슨 말씀인가요

껍질만 벗겨내면 아무도 모를텐데요

연회장이 저기 저 저 앞이잖아요


아니라 하시네요

저를 깨끗이 닦아내신 이유가

탐스런 과육도 화려한 연회장도

아니었노라고 침묵으로 대답하시네요


제가 머물 곳은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

그 한가운데 심겨질 씨앗이라고

그러니 씨알만 남기고는 잘라내라고


낙과였다네

그저 운이 없었다고 여겼었는데

그럴싸해 보이고자 열심을 다했는데

애초부터 씨앗으로 선택된 낙하였다네

매거진의 이전글 이런 피드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