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20
전날 받은 스트레스로 기절하듯 쓰러져 잠든 나는 주말인데도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잠에서 깬다. 옆에서는 희성이 곤히 자고 있다. 희성은 주로 가로누워 잔다. 가끔 내가 먼저 잠에서 깼을 때, 자고 있는 희성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 볼 때가 있다. 무슨 꿈을 꾸는지 궁금해하며-.
그는 자면서 자주 이를 간다.
어제 하루종일 취재를 다녀온 희성의 몸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고작 몇시간의 수면으로 해결되지 않을 누적된 피로일 것이다. 아기처럼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 피로가 녹아 없어질 수 있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드륵드륵 이를 가는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깬 나도 윗니와 아랫니가 맞닿도록 이를 꽉 깨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가 자면서도 이렇게 이 악물게 하는 걸까.
어제는, 일터에서 경험하는 부조리함을 이해할 수 없다며 핸드폰 너머로 엄마에게 한시간 반 동안 하소연을 했다. 중간중간 맞장구를 치며 차분히 이야기를 듣던 엄마는, 대화의 말미에 자신의 바람에 대해 말했다. 매일 새벽 네시면 일어나 거실에 방석을 놓고 백팔배를 올리는 엄마의 소원은 자식들의 안녕이라고 했다. 그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이야기를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다만 그 고생이 너무 힘들지 않기를 기도하지."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나는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근데 그렇게 고생스럽게 소원 하나 비는 거면, 그냥 로또 당첨 되게 해달라고 빌면 안 돼?"
언젠가부터 희성은 매주 로또를 사기 시작했다. 좋은 꿈을 꾸고 나면 이번 주에만은 꼭 당첨될 거라고 신이 나서 떠든다. 결과를 확인하고 나면 매번 낙담하면서도. 우리는 그런 말도 안되는 요행이 아니라면, 인생이 조만간 나아질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가 없다. 그런 세상이다.
근로소득으로는 살 수 없는 집값을 보며, 누가 누구를 협박하고 때렸다는 흉흉한 뉴스를 보며, 가까운 누군가의 현실적인 고민들을 들으며, 나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에 대고 너무 힘들다고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은 늘 더 나쁜 쪽으로만 변할 뿐, 나아진 적이 없다. 아무도 그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큰 소리로 소리 지를 뿐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피아노 학원에 가고, 피아노 선생님이 해준 사소한 칭찬을 메모앱에 기록해두며 그날의 작은 행복 할당량을 채운다. 6개월 만에 찾아간 단골집의 마라맛이 최고로 맛있어졌다며 기뻐한다거나, 점심 시간에 사먹은 커피 맛이 너무 좋았다며 기록한다. 하지만 이 기쁨이 충분한가. 나는 행복한가. 행복할 수 있는가, 애초에, 행복이 무엇인지 자꾸 묻는다.
날갯죽지를 가로지르며 찌릿거리는 만성적인 신경통을 없앨 만큼의 기쁨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젊은 날의 고생은 오늘도 내일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이 수고로움과 고생을 버티게 하는 것들은 대체 무엇인가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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