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리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뭐 어때서
망할 놈의 사업은 몇 번이고 다시 해놓고 왜 브런치 작가 도전은 한 번만에 포기인 거야? 내가 이렇게 쉽게 포기하는 성격이 아닌데.. 이상했다. 나이가 들면 성격도 바뀌나? 무모했던 브런치 작가 도전은 조용히 서랍 속에 넣어둔 채 모닝 독서만 계속했다. 왠지 찝찝했다.
벌써 4달 전 일이다. 아주 화창한 봄날 브런치 앱 알림이 떴다! 작가에 선정되지 않았다며 [시무룩 금지]라는 메시지와 함께 위로하는 알림이 왔지만 근래 들어 가장 큰 시무룩 순간이었다. 실패 경험은 이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나에게 브런치 너마저 실패 이력을 남겨주는구나.
글 하나 달랑 써놓고 브런치 작가에 도전해놓고 뭘 바란 거야
결과는 뻔했다. 그렇다고 중대한 시험에 떨어진 것도 아닌데 가라앉는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전쟁 같은 회사 업무야 매일이 도전이지만 내 개인의 카테고리 안에서는 오랜만의 도전이었다. 새로운 영역의 도전이라 설레기도 했다. 은근히 기대했었나 보다. 사실 나쁘지 않은 글이라 생각했다. 브런치 작가가 되면 쓰고 싶은 글들이 메모장에 대기 중이었는데 힘이 쫙 빠지면서 '에잇 안 해'가 되어버렸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은 내 꿈도 아니었고, 밥벌이와도 상관이 없었다. 그동안 내가 실패해도 다시 도전했던 일들은 꿈과 관련이 있었고 더 현실적으로는 생계와 연결되어 있었다. 4개월 전의 나에게 '브런치 작가 되기'라는 도전에는 간절함이 없었다. 승부욕을 자극하는 누구와의 경쟁도 아니었다. 그냥 혼자 보는 모의시험이었다. 잘 나오면 기분 좋지만 안 나온다고 해도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작은 이벤트였다.
그 후 브런치라는 존재를 잊고 책만 읽었다. '읽는다고 뭐가 달라지나'라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독서로 인한 변화의 순간들을 직접 경험하다 보니 지금은 책만이 나를 더 성장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심지어 신나게 돌아가는 세탁기 속 빨래처럼 내 머릿속 뇌가 활성화되는 듯한 기이한 느낌이 일상 속에서 예고 없이 찾아오기도 한다. 최근에는 머릿속에서 텍스트들이 서로 엉켜 둥둥 떠다니는데 빨리 글로 옮겨야만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브런치에 두 번째 글을 썼다.
"매일 책을 읽었더니 글이 쓰고 싶어 졌다"라는 글이다.
엉킨 빨래를 잘 풀어서 예쁘게 개어 놓은 것 마냥 편안해졌다. 그러고 나니 과거의 다양한 경험들이 파노라마처럼 한 장면 한 장면 지나갔고 내 경험들을 글로 쓰고 싶다는 열망 같은 게 가슴속에서 요동쳤다. 그리고 나의 첫 실패를 고백하는 글을 세 번째 글로 썼다.
간절함 없이 썼던 첫 글.(작가로 선정되는 일에 간절함이 없었다는 것이지 글에 진심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니 오해 금지) 무언가에 이끌려 정신없이 써 내려간 두 번째 글. 누구에게도 자세히 얘기한 적 없는 내 진짜 이야기를 고백한 세 번째 글.
이렇게 3개의 글을 쓰고 다시 도전했다. 두 번째 신청은 마음가짐부터 달랐다. 20살 재수 시절 생각까지 나는 걸 보니 소소한 이벤트라 하기엔 감정이입이 상당했다. 오히려 첫 번째보다 자신은 없었다. 이번 결과 알림은 한쪽 눈만 살짝 뜬 채로 조심스럽게 확인했다.
여보 대박! 나 브런치 작가 됐어!
작가 신청할 때 제출했던 3개 글을 차례대로 발행했다. 구독자 0명, 당연히 혼자만의 축제였다. 가끔 뜨는 'OO님이 글을 라이킷했다'는 알림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썼던 나의 첫 실패 이야기가 발행 다음날 조회수 1000을 돌파했다는 알림이 왔다.
"2평짜리 고시원을 보고 첫눈에 반한 이유"라는 글이다.
남편과 밖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남편에게 자랑할 겨를도 없이 조회수 2000 돌파, 3000 돌파, 계속 올라가더니 그날 자정 12,000까지 올라갔다. 무슨 일인가 싶어 이리저리 검색해보니 이 글이 다음 메인에 나왔고 브런치 인기글에도 올라 있었다. 약간의 부끄러움이 동반된 첫 실패 고백글인데 예상치 못한 조회수에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오늘 하루 그러고 말겠거니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내 예상과 다르게 조회수는 다음날까지도 올라갔고 3만을 넘어버렸다. 작가라는 호칭도 아직은 낯선 브런치 작가 3일 차에 생긴 일이다. 이후로도 꾸준히 읽혀 이 글을 발행하는 지금은 조회수가 54,000을 넘었다.
내 글이 왜? 어떤 점 때문에? 갑자기 분석을 하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를 쓰고 싶다며 순수하게 시작했던 마음이 조금씩 오염되기 시작했다. 쓰고 싶은 이야기 리스트가 7개 정도 있었는데, 갑자기 그 이야기들을 무시하고 전략적으로 소재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직업병이 또 도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내 경험담이었다. 조회수를 신경 쓰기 시작하면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할 수 있을까? 조회수로 평가받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이미 회사 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우리 회사는 영상 콘텐츠를 만든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분석 따위 그만하고 내 감정에 따라 글을 쓰자며 스스로 다짐했다. 그런데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브런치 글쓰기를 전략적으로 접근했던 내 모습을 부끄럽다고 여긴 '그 생각'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사람들이 내 글을 왜 많이 읽었는지 생각해보고 분석해보며 다음 글은 더 잘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렇게 나쁜 건가? 팔리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잘못된 건가? 과연 내 글을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글쓰기를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을까? 그럼 그냥 비공개 일기를 쓰는 게 낫지 않을까. 결국 '팔리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글쓰기에 대한 부담도 덜하고 빨리 쓰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렬해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주객이 전도되어 조회수와 반응에 목을 멜 필요는 없다.
진정성 있는 글이 팔리는 글이라는 것을 분석의 끝자락에 알게 되었다.
내가 회사를 운영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가장 첫 번째가 고객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일에서 '뭣이 중헌 지'를 깊이 생각하게 되고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는데에 도움이 된다. 결국 고객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 이야기는 고객을 유혹하는 사탕발림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내 생각, 내 관점, 내 메시지가 담겨야 가능하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던 이유도 '남들이 보고 싶어 하고 공감할 수 있는 나만의 스토리를 내 목소리로 들려주는 것' 이게 하고 싶어서였다. 내 이야기만 구구절절 늘어놓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지어내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글 속에 나와 독자가 함께 있는 그런 글이었다.
작가라는 호칭이 낯선 작가 3일 차에 이렇게 큰 행운이 오다니.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