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나 영화나 연기나 뭐든 하는 게 힘들다. 현실이 쉽지 않다. 이젠 지겨울 정도로 해왔던 이야기. 한가지 점검하자. 예술을 하는 게 이토록 힘겹다면 그걸 이겨내는 건 뭘까? 계속해서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끌어내는 건 뭘까? 생각해본 적 있나? 애정이라고 말할 것이다. 창작하고 싶은 기본적 욕구라는 대답도 가능하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본질은 아니다. 모두 결과적으로 충족되는 것들이다. 그저 좋아하기에 아니면 그저 나의 창작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예술을 한다는 건 방법론적으로 틀렸다고 볼 순 없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이내 강한 현실 앞에서 쉽게 포기하고 쉽게 좌절하고 쉽게 잃어버리기 쉽다.
그렇다면 예술을 하는 가장 깊은 동기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나는 파이터들의 세계에서 그 깊은 동기를 읽는다. UFC 파이터들은 옥타곤이 두렵지 않을까? 김동현 선수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도 두렵다고 한다. 인간이기에 그 누구도 옥타곤에 올라서서 문이 잠기면 두렵다고 한다. 여기서 살아서 나가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엄습한다고 한다. 사실 파이터들이 많은 돈을 버는 건 아니다. 꿈의 무대인 UFC에 서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고, 그중에서도 챔피언이 된다는 건 더더욱 기적 같은 일이다. 대부분 초라할 정도의 대전료를 챙긴다. 그래도 그들이 링 위에서 서는 이유는 뭘까?
파이터들의 증언에 의하면, 링 위에서의 쾌감이 있다고 한다. 그 절대적 공포와 싸우면서 분출되는 마약보다 강한 쾌감이 있다고 한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쾌감이 있다. 궁극의 몰입 속에서 느끼게 되는 짜릿함이 있는 것이다. 몰입 속의 쾌감, 어쩌면 자기 학대적인 고통 속에서의 쾌감을 모른다면 진짜 예술을 하는 기쁨은 모른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몰입 속 자유로움, 본질적인 창작의 기쁨은 어떤 면에선 고통일 수 있다고 했는데 그건 어떻게 맛볼 수 있는가? 계속해서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끌어내는 마약은 뭘까?
결국, 재능이다. 그래서 예술에선 수월성이 중요하다는 거다. 잘하기에 좋아하게 되는 거다. 잘하지 못하고 좋아만 하면 오래가지 못한다. 견디지 못하게 된다. 예술을 할 때 가장 큰 문제는 환경의 어려움이나 가난이 아니라 재능 없음, 더는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 생기기 때문이다. 오해하지 말자. 이 재능은 천부적인 재능만을 말하지 않는다. 물론 천부적인 재능도 중요하지만, 예술은 다양한 분야가 있다. 태어날 때부터의 재능이 매우 중요한 분야가 있고, 나이가 들고 인간에 대한 통찰이 깊을수록 맛이 나는 분야가 있다. 연극과 영화는 무조건 후자다.
연극 신동, 영화 신동을 들어본 적 있나? 그딴 게 있을 수 없는 거다. 문학 신동이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연극과 영화에서 재능은 곧 관점이자 구조이며, 언어이자 세상을 향한 관심이다. 치열함이자 견뎌내는 뚝심이고, 애정이다. 결국, 인간을 향한 통찰인 거다. 그런데 이 통찰도 사실상 재능이다. 능력인 거다. 자꾸 맞아떨어지는 쾌감이 있다는 거다. 내가 바라보는 관점과 구조와 표현이 하나둘씩 맞아떨어질 때마다, 예술적 성취를 이룰 때마다, 마치 마약처럼 더 깊은 창작과 몰입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이런 기쁨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환경의 어려움은 이제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결국, 능력이 중요하다. 너의 통찰이 예리하면 예리할수록 예술에 중독되어 갈 것이다. 좋아하기에 잘하는 게 아니라 잘하기에 좋아하게 되는 거다. 절대 포기할 수 없다. 너의 성취가 너를 중독시킨다. 그래서 실력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