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민 Feb 17. 2020

너를 가치있게 만드는 일을 찾으라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대부분 예술 분야에 관심이 있고, 예술 분야 진학을 생각하는 학생일 거다. 열정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보자. 또 꿈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열정과 꿈의 시작과 중간과 끝 열정과 꿈은 단편적 단어가 아니다. 열정과 꿈은 서사구조처럼 시작-중간- 끝이 있는 단어이다. 열정과 꿈을 단편적으로 바라보는 학생들이야말로 입시에서 가장 먼저 탈락하는 학생일 것이다. 보통 학생들은 열정이나 꿈을 단편적으로 생각한다. 뮤지컬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뮤지컬배우가 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고, 관심이 생겼을 때 난 뮤지컬배우의 꿈을 가졌다고 말한다. 학생들은 흔히 꿈과 열정을 동기와 혼동한다. 즉 어떤 분야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것을 열정이라는 단어로 너무 쉽게 치환한다는 거다. 무언가를 엄청나게 좋아하고 무언가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것. 내 평생의 꿈을 찾았고 내 평생 마음을 쏟아부을 어떤 분야를 드디어 찾았다!!! 그 꿈을 생각하면 잠을 잘 수가 없고 미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연극영화를 하고 싶다. 여기서 머무는 학생이 대부분이다. 물론 뜨거운 관심과 미칠듯한 마음은 좋다. 모든 예술가가 거기서부터 시작하니까. 그러나 진짜 열정과 꿈은 거기서 머물러선 안 된다. 반드시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반복되는 성취가 주는 행복


열정의 모맨텀 연극영화 입시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지원동기'이다. 그런데 연극영화 분야 입시의 자기소개서를 보면 지원동기 다음에는 항상 '그 전공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이라고 하는 항목이 따라오는 걸 보게 될 거다. 이 항목을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본인이 지원한 분야에 대한 모맨텀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거다. 꿈. 혹은 열정이라는 단어의 시작이 '지원동기'라면 이 꿈과 열정을 지속해서 발전시켜나가는 끊임없는 작은 행동들이 '전공을 위한 노력' 부분에 들어가야 하며 꿈. 혹은 열정이라는 단어의 중간 부분에 해당할 것이다. 여기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걸러진다고 확신한다. 꿈을 가지기는 쉽고 꿈을 가졌다고 떠벌리기는 쉬우나 그 꿈을 키우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말할 수 있는 학생은 많지 않다. 꿈과 열정을 이끌어가는 중간 부분, 즉 가장 중요한 허리 부분은 지원하는 분야를 위한 노력과 행동인데 이것을 어떻게 채울 수 있는가? 이건 말이다. 포인트가 실적이 아니다.


학생들이 착각하는 게 지원하는 분야를 위한 노력과 행동이니까 영화를 예로 들면 어떻게 영화를 찍고, 몇 편을 찍었고, 어떤 상을 받았어야 했는데 나는 일반계고등학교고 엄마가 수학학원 보내느라 그런 건 한 번도 한적이 없는데 그럼 나는 안 되는 건가요? 라는 어리석은 말을 하기가 쉽다. 행동이란 이런 정형화된 실적이 아니다. 질문과 그 해답의 반복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아직 어린 학생일 뿐인 너희가 어떤 실적을 냈고, 어떤 성과를 냈다고 떠벌려봐야 별 가치가 없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때 상 받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거든. 고등학교 상 받는 수준이 전부인 학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영화제에서 상 받은 게 중요한 거 아니다. 그 상 받았다고, 영화과 교수들이 박수쳐주면서 환호성을 지르며 너를 환영해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고등학생 영화의 수준, 그만한 영화가 창작의 전부인 학생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본인 스스로 해야 한다.


작은 성취를 자주 경험하라


성장 가능성이 큰 학생의 특징은 끊임없이 질문하는 학생이라는 것이다. 꿈과 열정의 시작이 그 분야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라면 꿈과 열정의 중간은 끊임없는 질문과 해답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은 성취가 중요하다. 연기 분야를 예로 들면 이 대본, 이 배역에 대한 호기심과 질문, 그리고 그것을 형상화하는 과정. 그리고 작은 해답과 성취. 이것의 반복이 훌륭한 배우로 성장하게 할 것이다. 섣불리 결과로 나아가지 마라. 과정이 충실하고 허리가 튼튼한 나무가 더 많은 열매를 맺지 않겠는가? 결국 자기소개서와도 연관이 된다. 지원동기가 시작이라면 전공에 대한 구체적인 노력은 중간이라고 했다. 이때 중간 부분에 섣불리 실적이나 결과를 늘어놓아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너무 빨리 결과를 보려 하고 너무 빨리 자신을 한정 지으려고 해선 안 된다. 어떤 질문과 어떤 고민과 자신의 예술세계를 형성해왔는지에 대한 탄탄한 과정이 필요하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모맨텀의 핵심은 작은 성취의 반복에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보자.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고 이 분야가 내 분야란 확신이 들었다고 생각해보자. 그 꿈을 지속시키는 모맨텀은 어디서 나오는가? 성취에서 나온다. 그래서 작은 성취를 채워가는 게 중요하다. 성취를 주는 여러 요소들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국 재능이다. 좋아해서 좋아하는 단계에서 더 나아가 잘해서 좋아하게 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잘하니까 좋아하게 되는 것. 잘하니까 성취되고, 성취가 주는 행복이 나를 더 잘하게 만드는 것.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보다 잘해서 좋아하게 되는 일을 찾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연극영화 입시에서는 교수들이 반드시 이 점을 짚고 넘어갈 것이다. 예술 좋아하는 애들은 흔하다. 왜 연극영화 하고 싶냐는 질문에 라고 밖에 답하지 못해선 안 된다. 그냥 좋아하는 걸 찾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를 찾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어떤 모맨텀을 가졌는지 어떤 질문과 답을 반복해서 해왔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성취를 채워왔는지 본인의 재능을 어떻게 발견하고 어떻게 발전시켜 나왔는지 풍성하게 허리를 채워야 한다.


재능의 발견, 거대한 노력, 따라올 수 없는 특출남


재능과 몰입과 특출남이라는 삼각관계 모멘텀에 대한 또하나의 내 생각을 말하자면, 재능은 발전시켜나가는 게 맞다. 즉. 노력하는 자가 재능을 키운다는 게 맞다.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인용했듯, 어떤 분야에서 특출난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는 일만 시간의 투자가 필요하다. 노력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노력에는 순서가 중요하다. 흔히들 ‘노력을 하면 ----> 특출나진다’라고 생각하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노력은 필수다. 노력이 시작단계는 아니다. 노력보다 앞선 단계가 필요하다. 재능의 발견이다. 또 한 번 스토리텔링과 연관된다. 재능의 발견이 시작이라면, 노력이 중간이고, 특출남이 결론이다. 재능 없는 노력은 연료 없는 기관차와 같아서 태생적인 모순이라 하겠다. 특히 예술 분야에선 말이다. 좋은 교사가 되는 건 재능 없이 노력으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너무 삶이 고단하고 뻑뻑해지겠지만, 그래도 직업의 안정성으로 버틸만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예술 분야는 다르다. '재능의 발견'이 먼저고 그다음이 일만 시간의 법칙에 해당할 만큼 거대한 '노력'이 허리이고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결과물이 따라올 수 없는 ‘차별화’이다. 이 삼각관계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보자.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입시학원을 운영하는 내 예를 들어보겠다. 어차피 나 자신의 예를 드는 게 가장 확실한 예가 되니까…. 어찌어찌해서 대학원에서 석사 코스웍을 마치고 이제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데 논문 쓰는 건 정말 내게 고된 일이었다. 나는 정말이지 논문 쓰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이 블로그를 보면 알겠지만 인용할 때 뭘 귀찮게 찾고 정확한 자료를 찾아서 첨부하고 이런 게 너무 싫다. 통찰은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즉 통찰은 나름대로 있으나 객관화가 너무 부족하다는 게 내 가장 큰 단점이라 하겠다.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다. 아마 내가 자료정리에 능하고, 객관화에 능했다면 훨씬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대학원을 수료하고 나니, 정말이지 할 일이 전혀 없었다. 정말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초등학교 보습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쳤는데 한 달 만에 잘렸다. 중학교 국어학원은 시강을 해보라 했는데 판서를 할 때 칠판을 몸으로 가리면서 쓴다고 기본도 모른다면서 잘린 적도 있다.


성수동 공장에서 얼굴마사지기계 검수하는 아르바이트도 6개월이나 했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생전 처음 발산역에 있는 전자사전 만든다는 곳에 가서 영어 성경을 입력하는 아르바이트도 했다. 그게 내 10년 전 모습이다. 그러다가 수업을 같이 들었던 친한 형이 나한테 연기 강사를 해보라는 말을 했다. 내가 연기 못하는 거 형도 아는데 무슨 소리냐, 나같은 놈이 연기를 가르친다는 게 말이 되냐. 그런데 형이 강하게 권면해주는 거였다. 그깟 거 못할 것 없다고, 나도 하는데 너라고 못하겠냐? 그래서 연기학원 네이버에 검색해서 나오는 상위 1번부터 10번까지 홈페이지 입시상담에 들어가 내 이력서를 넣었다. 설마 답이 오겠냐 했는데 단 하루 만에 연락이 왔다. 그때 내 기억으론 월요일에서 토요일 까지 일하고 140만 원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나는 감격했다. 140만 원을 받으면 만 원짜리로 두툼했기 때문이다.


너만의 모멘텀을 만들 수 있는가


나름 미래를 꿈꿨다. 학생들과 함께 있는 게 너무너무 행복했다. 일을 잘하려고 열심히 한 게 아니라 너무 재밌어서 열심히 했다. 1시 출근이면 10시까지 출근하고, 10시 퇴근인데 12시 차 끊기기 전까지 학원에 붙어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너무 열심히 해서 주변 강사님들이 그러다가 지친다며 조언해주셨던 기억도 난다. (근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안 지쳤다. 평생 안 지칠 듯 하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렇게 시작한 일이 꼬박 2년이 되었고 그 2년이 지난 후 한명 두명씩 가르치다가 도곡동 가정집 지하에서 그룹레슨, 그리고 이후에 양재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되는 데서 또 몇 년, 그러다가 저러다가 지금까지 온 거다. 돌아보니 10년이 하루처럼 지나버렸다. 정말 하루 같다. 왜 이리 시간이 빨리 지나갔을까? 지난 10년을 돌아보건대 단 하루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날이 없다. 지난 10년을 단 하루처럼 불태워왔다고 자신 있게,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일단 나는 학원을 할 때 집이 없었다. 학원에서 살아버렸다. 거의 6년 이상을. 학원에 즉석 온수기 설치하면 씻는 거 해결되니까 음식은 사 먹고. 연습실 마룻바닥에 이불 깔고 자는 생황 6년. 왜 학원에서 살아버렸냐 하면. 학원을 왔다 갔다 하는 시간도 아깝다고 생각돼서다. 학원에 조금이라도 더 붙어있고 싶은데 그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아까웠던 거다. 그리고 학원 청소하고 정리하고 꾸미는것, 학생들 관리하는 것, 그 모든 걸 혼자 더 잘 하려고 하니 학원에 사는 게 최고였다. 퇴근할 곳이 없으니, 일밖에 더 할 수 없지않겠나… 그게 당시의 내 생각이었다. 일하고 싶어서, 퇴근하기 싫어서 학원에서 살아버렸다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거다. 그 시절 만난 박현욱 군과 나는 지금도 같이 학원에서 일하고 있다. 참 멋진 친구 사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 이름을 벽에 붙여놓고 혼자 자기 전에 합격을 말로 선포하며 자곤 했다. 누구누구는 합격한다. 누구누구는 합격한다. 누구누구는 반드시 합격한다. 학생 이름을 전부 한 번씩 부르고 잤다. 학생들이 수업했던 그 공간에서 이불 하나 깔고. 학원이 왜 이렇게 재미있었을까? 솔직히 고백하건대 아무 가치 없는 존재일 것 같았던 내가 유일하게 인정받고 유일하게 잘하는 분야가 바로 입시였기 때문이다.


도곡동 지하 시절부터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이 일은 내가 좀 하는구나’ 라는 보상이 나를 들뜨게 했다. 한예종 다닐 땐 한예종 학교 안에서 애들을 가르치다가 그게 너무 눈치 보여서 교회 빈 예배딩에 들어가서 수업하고 그랬다. 그런 악조건이었지만 이상하게 맡은 학생마다 입시실적이 너무 좋으니까 소문나서 또 늘어나고, 어쩔 수 없이 더 넓은 데로 이사해야하고…. 나는 학원을 하면서 이런 시설과 이런 준비를 해놓으면 학생들이 많이 들어올거야 라고 생각하고 학원시설을 넓힌 적이 없다. 하다 보니 더이상 수용할 수 없고, 더는 견딜 수가 없어서 쫓겨나듯 더 넓은 곳으로 이사해왔다.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어떤 성취가 주어지고 드디어 내가 중요한 사람,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어떤 믿음을 주게 되는 일, 나는 그 일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발견하게 되었고 바뀌었다. 연극영화입시교육이라는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기까지 정말 잡다한 일을 했다.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한다면서 ‘청능사’라는 자격증을 따보기도 했고, 회사에 취직하기도 했고, 선교사가 되겠다고 아프리카를 가기도 했고, 별의별 일들을 다 시도해봤다. 그러나 그 어떤 일도 꾸준히 하거나 최선을 다해 하거나 노력하지 못했다. 게을러서였을까? 모멘텀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다니지 마라


나는 확신한다. 게으름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게으름이란 단어는 없다. 래리 크랩, 로렌스 크랩 박사 부부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행복감 중 여성에게 1위는 사랑받는다는 느낌. 이라면 남자 1위는 그게 아니라고 한다. 사랑받는 느낌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줌으로써 내가 세상에서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게 되는 욕구. 이게 남자에겐 최고의 심리적 행복감을 준다는 로렌스 박사 부부의 연구결과를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다. 너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은 바꿔 말하면 너를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일이다. 네가 그 일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그 일이 주는 보상에서 네가 중요한 존재라는 행복감을 보상받기 시작한다면 게으름이란 단어는 네 인생사전에서 지워지게 될 것이다. 네가 가치 있다 생각하는 일을 찾는 게 아니라 너를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일을 찾아라. 네가 세상에서 중요하고 능력 있는 존재라는 보상이 너로 하여금 행복감을 느끼게 하고 더욱더 중독된 성공을 향해 너를 이끌 것이다. 학원 원장이랑 시아준수 중 선택하라면 나도 시아준수를 선택할 것이다. 내가 시아준수 안 하고 학원원장 하는 건 시아준수만큼 뮤지컬 가수로는 모든 면에서 아예 재능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 아니겠나.


하고 싶은 일을 찾아다니지 마라. 발전이 없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다니기보다 네가 가장 가치 있게 되는 일, 너를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어주는 바로 그 일을 찾으려고 하라. 가치 있는 일을 찾지 말고 너를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일을 하라. 공부 잘 하는 학생들 특징이 뭔지 아는가?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거다. 눈알 시뻘겋도록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가 뭘까? 아마 그 학생도 공부하는 것과 시아준수 놀이 둘 중 자유롭게 선택하라면 시아준수 놀이를 선택할 거다. 그런데 그 학생이 그 재미없는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가 뭘까? 공부를 잘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해서 주는 보상이 그 학생으로 하여금 행복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한다는 자신의 재능에 대한 발견이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도록 만들고, 그 학생이 공부를 특출나게 잘하게 되는 거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비결이 뭘까? 그건 역설적이게도 공부를 잘하는 거다. 공부를 잘하면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다.


여기서 잠깐! 정색하며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겠다. 아니 형님. 그거 말씀이 좀 지나친 거 아니에요? 그럼 나처럼 재능 없는 사람은 열심히 하지도 못한다는 거에요? 재능없는 사람은 나가 죽으란 말이에요? 내 삶이 하나의 증거가 된다. 진실되게 말한다. 한국사회의 진짜 문제는 여기에 있다. 성공의 다양성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고, 한국적 유교 문화의 치명적인 부작용도 여기에 있다. 해외에서 느낀 점이 뭐냐면, 특히 호주에서 막노동 비슷한 일을 하는 현지인이 특정직업을 가진 사람을 한국사회처럼 그렇게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짜 천차만별로 이상하게 생겼는데, 그냥 생긴 대로 이뻐해 주며 잘 산다는 것, 이 두 가지를 보면서 부러웠다. 네가 재능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일정 부분 한국사회의 탓이 있다. 뿌리 깊은 유교적 문화의 가장 치명적인 악영향이기도 하다. 특정직업 몇 가지만이 인정받고, 특히 화이트칼라 직업 몇 가지에 가치가 편중되어 있고, 모든 학생의 성공사례를 그 몇 가지 가치에 강제로 편입시켜 버리는 일이 주는 거대한 불행…. 무언가 노동을 하는 일, 예술과 관련된 일등이 지독한 편견 속에 갇혀있다는 말이다.


너 아니면 안 되는 바로 그 일을 찾아라


그러나 앞으로는 달라질 거다. 개를 잘 핸들링하는 강형욱씨가 너무 좋다. 요즘엔 개도 잘 돌보면 돈도 많이 벌고 내 생각에 장담하는데 그 아저씨가 돈도 잘벌지만, 교수같은 직업을 원한다면 손쉽게 될 거다. 옛날엔 교수가 되려면 박사 받고 뭐 그런 정형화된 코스가 있었으나 요즘은 다르다. 자신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 단순 학위 받은 사람들은 학생들이 먼저 싫어한다. 개를 돌보든 와인을 마시든 연애코치를 하든 웨딩연결을 하든 화장을 해주든 머리를 해주든 싸움을 하든 전문성을 살려야 한다. 생각해보라. 코리안슈퍼보이 최두호가 싸움하는 걸 일기에 쓰고 배우고 노력하고 대학 다니고 최고의 싸움꾼이 되기 위해 진로설계를 하고 싸움에 대한 해외논문을 검색하고 싸움을 했을까? 그냥 싸우다 보니 최고가 되고, 잘 싸우니 격투계로 나간것 아니겠나. 그 다양한 세계 속에서 너와 꼭 맞는 길 너의 재능이 딱 맞는 바로 그 길이 반드시 있다고 믿는다. 100% 맞지 않더라도 괜찮다. 한 70%만 맞아도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할 것이다. 너를 지치지 않게 할 것이다. 그 일이.


정리하자. 네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일을 찾지 말고 너를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바로 그 일을 찾아라. 그걸 위해선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 딱 맞는 그것을 찾을 수 있다. 너를 중요한 존재로 탈바꿈시켜주는 일, 너로 하여금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일, 더 나아가 너 아니면 안 되는 바로 그 일을 찾을 수 있다. 만일 그 일을 찾는다면 장담하건대 게으름이란 단어는 사라질 것이다.


---> 노력 ---> 더 중독된 노력, 일만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파괴적인 노력 (다른 단어로는 몰입이 더 정확하겠다) ---> 대단한, 압도적인, 전례 없는 차별화.


나는 이것이 올바른 순서라고 생각하고 이것이 모멘텀이라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엇이 창의력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