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회사 다니면 겪는 일들
처음 취직한 회사는 10인 이하의 작은 회사였다. 규모가 작은 회사였지만 대외적으로 비춰지는 회사 내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고, 회사에서 담당하고 있는 브랜드들이 제법 굵직한 것들이어서 좋은 기회가 될 거라 생각하고 입사하였다.
내가 입사했던 회사는 마케팅 대행 회사로, 여느 마케팅 대행 회사들답게 직원들의 평균 연령이 낮았다. 대부분이 20대였고 몇몇만이 30대 초반이었다. 젊은 또래들과 일하니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이 좋았고 업무를 배울 때도 어려움이 없었다. 회사를 다닌 다기보다는 학교 조모임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입사 후 6개월 간은 정말 즐겁게 다녔다.
꽤 만족스러운 시간들이었다. 일이 어려워도 서로 나서서 알려주었고 그러면 나는 또 열심히 배웠다. 잠시나마 내가 꿈꾸던 직장생활이라며 만족했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사달이 났다.
젊은 직원들과 늘 가까워지고 싶어 하셨던 대표님은 직원들과의 소통을 좋아하셨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소통 과정에서 안 좋은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 이야기는 새어나가고, 또 왜곡되며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우리는 파국을 맞이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대표님은 직원들을 항상 궁금해하셨다. 그래서 직원들과의 소통을 늘 중요하게 생각하셨는데 나는 그런 점이 좋았다. 문제는 대표님은 입이 아주 가벼우셨다는 거다. 직원들과의 대화 내용을 다른 직원들과 언급하는 일이 잦으셨다. 그동안은 다행히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결국은 일을 낸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터질 게 터진 거였다. 그동안 신입이었던 나만 몰랐을 뿐 오래된 고질적인 문제였던 것이었다. 대표님의 가벼운 입 덕분에 늘 아슬아슬했다고 한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다들 불만이 가득 쌓인 상태였다. 그런데 이번에 제대로 불을 지르신 거였다.
불은 정말 활활 타올랐다. 문제의 직원이 퇴사를 했고, 그 이후로 줄줄이 퇴사를 했다. 찰나의 순간에 직원들 절반이상이 사라졌다. 갑자기 회사는 5인 이하로 규모가 줄어들었다. 이 모든 게 불과 한 달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때 나는 입사 1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당연히 그때부터 나는 엄청나게 많은 업무를 떠안았다. 직급은 따로 없었지만 사실상 팀장과 같은 분이 퇴사를 하셨고, 그 밑에 있던 직원들도 우수수 퇴사하는 바람에 일개 막내 신입이던 나는 갑자기 중요한 업무들을 맡게 되었다. 솔직히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이런 업무를 맡아도 되나 싶었다. 나는 정말 조무래기였다. 이제 막 초등학교 입학한 아이한테 수능을 보라는 꼴이었다. 그러니 제대로 할 수가 있겠나. 엉망진창이었다. 그동안 배웠던 걸로 흉내는 냈지만, 어디까지나 흉내에 불과했다. 이제 내게 회사는 전쟁터였다. 남은 직원들끼리 어떻게든 업무를 끌고 가려니 1분 1초가 피 터지는 싸움이었다. 어떻게든 일을 해내야만 했다. 우리의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속 편한 대표님은 팀원들을 충원할 테니 걱정 말란 말만 하셨다.
다리도 뜯기고, 팔도 뜯기고, 여기저기 상처 투성이에 목숨만 겨우 부지했는데 이걸 살았다고 표현해도 되는 게 맞을까. 그때 나는 딱 그랬다. 정말 운이 좋게도 일은 잘 처리해 냈지만 살았다고 기뻐하기엔 죽은 것과 다름없었다. 그냥 최악을 면했을 뿐이었다. 아마 그때 먹은 욕과 비난, 질타 덕분에 생명이 며칠은 연장 됐을 거다.
충원해 준다던 팀원들은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고, 업무는 과중했고, 작은 회사다 보니 체계도 없었고... 누가 봐도 엉망진창이었다. 딱 한 사람, 대표님만 빼고.
대표님은 우리끼리도 충분히 잘 해낸 것 좀 보라며 몹시 만족해했다. 그러면서 지금처럼 유지하면서 운영하면 어떻겠냐는 둥, 궁지에 몰리면 결국엔 다 하게 되어 있다는 둥, 이전까지 업무에 비해 불필요하게 인원만 늘렸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소리만 늘어놓으셨다. 이때부터 나는 출근하는 게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고통스러웠다. 주변에서 그렇게 작은 회사 들어가면 고생한다고 했을 때 귓등으로도 안 듣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주변에서 누가 말리거든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는 게 맞다. 아무튼 어른들 말은 다 맞다. 그냥 그렇다.
그 이후 팀원도 다소 충원되고 업무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갔다. 결국 회사는 어떻게든 굴러간다는 말이 맞았다. 그런데 사람은 안 변한다고 했던가? 대표는 또 한 번 가벼운 입을 놀려 회사 내 분위기를 파국으로 이끌었다. 결국 기존에 있던 직원들이 모두 퇴사하였고 입사 1년 차이던 내가 이 회사의 최고참이 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게 진짜 있을 수 있는 일이라니.
마지막 기존 직원이 퇴사했을 때, 대표님이 나를 따로 불러 이야기하셨다.
나는 말 그대로 동공지진이었다. 지금껏 직급도 없던 회사에서 갑자기 팀장이라니. 게다가 이제 막 1년 차가 된 내가 팀장이라니. 이렇게 초고속 승진을 해도 된다고? 이게 가능하다고? 이런 게 말로만 듣던 중소기업의 말도 안 되는 직급체계인가? 나는 사고가 정지되었다.
누군가는 이건 기회이니 잡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없었다.
결론은 퇴사 엔딩이었다. 팀장이 되어 해피 엔딩을 이뤄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조차 안 해봤다.
당시 팀장직을 거절한 후 새로운 팀장을 모셔왔지만 얼마 못 가 그만두셨고, 또 한 번 대표님은 내게 팀장직을 권하셨다. 하지만 나는 내 그릇을 잘 알기에 정중히 거절했다. 그리고 팀장을 한다고 해서 내 연봉이 파격적으로 오르거나 하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이름뿐인 팀장이랄까.
하지만 작은 회사기 때문에 팀장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팀장 역할을 하기는 했다. 굉장히 모순적이었달까. 그래서 결국 나는 퇴사를 결심하고 퇴사 엔딩을 맞이했다.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대표님이 어찌나 잡으시던지. 하마터면 마음이 약해질 뻔했다.
혼자서 몇 명 몫의 일을 다 떠안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시로 직원들이 교체되는 것도, 체계가 없어서 대표님의 말이 곧 법이자 기준이 되는 것도, 모든 일을 주먹구구식으로 처리하는 것도 신물이 났었다. 처음 겪는 사회생활 치고는 꽤 험난한 편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퇴사에 미련이 하나도 없었다.
아마 회사는 내가 퇴사한 후에도 어떻게든 굴러갔을 거다. 회사라는 게 그런 것 같다. 지인들이 대기업이라고 별반 다를 거 없다고 결국 똑같다고 이야기하는 걸 보면 회사라는 게 원래 이런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한다. 팀장이 되었다면 어땠을지 보장은 못하겠지만, 아마 엄청 고생스럽고 힘들었을 거라는 확신은 든다. 적기에 잘 그만두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본다.
돌이켜 보면 그때 가장 많이 일을 배웠던 것 같긴 하지만 다시 돌아가라고 한다면 절대 NO다. NO!
어른들이 처음부터 개똥 밭에서 굴러보며 몸으로 배워야 잘한다고들 하셔서 그때의 나는 그런가 보다 하긴 했지만, 요즘은 이왕이면 좋은 회사에서 좋은 사람들과 괜찮은 시작을 하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나 요즘 말하는 MZ려나?
아무튼 하마터면 나는 20대에 팀장을 다는 영광(?)을 안을 뻔했다.
ps. 개인적으로 현재는 해피엔딩을 향해 가며 잘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