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 저 그만둘게요."

 괜찮다는 말이 듣고 싶었던 거니

긴급 고용지원금 업무에 강제 동원되어 해당 업무를 처리하느라 방치된 ,

신고사건을 이제 하나둘씩 출석요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월요일 오전부터 부른 민원인이 심상치 않다.

 감독관 1년 하니, 이젠 얼굴만 봐도

주민등록증 사진만 봐도, 이 사람이 어떤 스타일인인지 감이 온다.

특히 진상을 부릴 스타일인지, 아닌지.

오늘도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공사현장 사건이다.

역시, 돈을 못 받았다.  그는 손이 부르튼 노인이었다.

아는 거라곤 돈 주겠다는 놈의 휴대폰 전화번호뿐. (돈 안 주고 잠수 탄 사용자는 내겐 '놈'이나 다름없다)

이름은 모른다고 한다.

피진정인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통신조회를 한 후에 해당 번호로 신고 처리된 내역을 찾아서 비교해봤다.

이름이 다르다.

더욱이 그놈은 전화를 안 받는다. 내 번호를 수신차단까지 했나 보다. 연결되자마자 바로 기가 막히게 끊어진다.

그놈의 이름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피진정인의 이름조차 특정되지 않고 통신자 명의가 다르면 조사는 어려워진다.

내가 조사가 힘들 수도 있다고 언질을 주니, 내게 고함을 치며 돈을 받게 해달라고 한다.

내가 이름도 모르고 통신자 명의도 다른 거 같은데 어떻게 찾냐고 하니

자기 계좌에 입금한 내역이 있으니 자기 계좌를 추적해서 찾아달라고 한다. 나한테 그것도 못하냐고 소리를 지른다.  덕분에 사무실의 모든 눈초리가 나를 향한다.

조장풍이 꼴 보기 싫어진다.

민원인들에게 기대를 너무 높여놨다는 걸, 사건 1개를 몇 개월 동안 하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 감독관은 그럴 권한도 없는데. 정의를 구현하겠다고 오버했다가 한 방에 날아간다는 것을.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며 욱했다. 또다시 민원인에게 화를 내는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는 걸 느끼며 무력감에 사로 잡힌다.

또한 내가 '누구'를 위해서 일해야 하는지, '누구'의 편도 들 수 없다는 외로움에 방황하던 차에

팀장님한테 메신저를 보냈다.

"팀장님, 저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봐요. 더 이상은 못하겠어요.

다음 달까지만 일하고 그만둘게요."

마스크 사이로 눈물이 흐른다. 이런 나 자신이 속상해서,

처음으로 민원인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팀장님은 일단 나를 안정시키신다.

일단 조사를 마무리할 방법을 메신저로 알려주신다.

여차여차 그 민원인은 퇴장하고,

팀장님은 이번에도 내 탓을 하지 않으시고

민원인 탓을 하셨다.

그 사람이 힘든 사람이라고.

잘 견뎠다고.

과거 내 민원인이 난리를 치면

대부분의 팀장님은 결국엔 "네가 대처를 잘 못해서야."라고 하셨다.

결국 다 내 탓이었다. 나는 그렇게 곪아갔다. 나는 그렇게 공직의 선후배 관계에 회의감을 느꼈다.

선배가 후배를 지켜주지 않는 공직의 문화에.

그러나 나의 새로운 팀장님은,

나의 그녀는, 언제나 내게 말한다.

설령 내가 부족하더라도.

잘하고 있다고.

재진정이 들어와도 네 잘못이 아니라고.

들어오면 내가 하면 된다고.

그녀는, "나 때는 말이야, 더 힘들었어. 지금 감독관들 엄청 편한 거야. "란 말을 후배들에겐 결코 하지 않았다.

훗날 알게 된 건, 그녀가 그 누구보다 힘들게 공직 생활을 했음에도

유난을 떨거나 그럼으로써 후배의 힘듦을 보고 당연히 겪어야 하는 거라고 모른 척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그녀는 후배들이 겪는 부조리한 관행을 깨기 위해 옆에서 늘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 마음을 어루만진다.

"사건 요새 안 풀리는 거 나한테 줘봐.  00 사건에 대해선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따로 설명해주지 않아도 돼.

나한테 넘기고 남은 사건에 집중해.   이 시간 또한 지나갈 거야. 괜찮아, 마음 편안하게 가져.

 그때 진상이었던 그** 민원인도 엄청 힘들게 했는데,  그 시간도 결국엔 지나가서 지금은 아무렇지 않잖아"

누구의 기준에 맞출 필요도 없어,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너답게 너만의 길을 가면 되는 거야."

헉... 팀장님.. 리스펙..

나는 사무실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을 했다.

이런 내가 뭐라고. 이곳에서 힘들어서 못 견뎌하는 날,

견디지 못하면 빨리 다른 길 찾아서 떠나라는 누군가의 말과 달리,

다시 일으켜 세워주려고 하시는 그녀의 진심에 내 마음이 어린아이처럼 무너졌다.

다행히 내 옆자리의 감독관님과 건너편 앞쪽에 계신 감독관님은 출장을 가셔서

내 흐느낌을  직접적으로 마주한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달 후에 의원면직하려던 나의 계획은 미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