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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키 Aug 20. 2020

제주도로 이민 가기로 결심했다

경력은 3년을 채우고

인천에 살던 집이 망하고 서울로 이사온지 어느덧 15년.

그 사이에 결혼도 했고 신혼집은 서울로 얻었다.


주님의 은혜로 전세금 1억 1천으로 서울 도심권 중심지에 있는 딱 2명이 '살기 좋은'이라기 보단

딱 2명이 '살 수 있는' 빌라를 얻었다.

서울에 있는 빌라들은 닭장처럼 붙어 있어 빛은 건물에 의해 차단된다.

그나마 빛이 들어오는 곳은 침실 방이지만, 이곳은 도로가에 있어서 창문을 열면 바로 외부에 노출되어

빛을 온전히 느끼기엔 온전치 못하다. 때문에 사생활 보호를 위해 퇴근할 때 몇 주간 커튼을 다 안치고 나갔더니

금세 눅눅해지고 습기가 차 커튼 주변에 곰팡이가 생겼다.

하지만 서울에서 이 정도 집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 못 모을 돈으로 집값이 솟는 걸 지켜본다면.

'집'에 대한 생각에, 예전에 어렸을 때 빛이 잘 들어오고 층간소음에 걱정하지 않고 내 집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었던 그런 집에는 내 평생 앞으로 다시는

살 수 없을 거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할 무렵에,

공직의 부조리함과 답답함, 민원인들의 비합리적인 고집과 횡포에 지친 무렵에 남편과 제주도로 도망치듯 휴가를 떠났다.


일주일 전 부랴부랴 티켓을 끊고 숙소는 떠나기 5일 전에 잡고 렌터카는 전날에 겨우겨우 잡았다.

제주도.


제주도는 참 아름답더라.

물가는 너무 비싸더라. 여기서 살다 간 허리가 휘어질 것 같더라.

이곳의 임금은 너무 적더라.


그러나 9급 공무원의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며,

오히려 이 정도 월급만 줘도 어느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근로감독관 업무를 하면서 다양한 업종을 겪다 보니 어떤 업무를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 또한 배웠다.

중요한 건, 내가 누구를 만나면서 일하고 내가 상대하는 사람들은 누구냐가 더 중요했다.


제주도는 내게 그런 영감을 주었다.

서울 어디에서 사느냐,

학교는 어디 나왔느냐,

남편 직장은 어디냐,

이런 것보다 네가 하고 있는 일에 스스로 만족하고 있느냐고 질문하는 것 같았다.


20대에 전문직의 환상으로 전문직 시험을 준비했지만

매번 커트라인에 떨어졌고,

월급 많이 주는 금융권에 들어갔지만

그 속엔 '사람'이 없었다.

'사람'을 위해 일하고 싶어서 '고용노동부' 그것도 '근로감독관'에 지원했지만

'사람'만으로 가득 찬 일도 나를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도 알았다.


여러 차례 이리저리 옮기기만 한 게 적응에 실패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 곳에 오래 진득하게 버티는 것 또한 실력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인생이 있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스타일이 제각각 다르듯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경력 3년은 채우기로 협의했다.

누구와? 남편과.

 이 공무원 일이 얼마나 도움될진 모르겠지만, 공무원을 내려놓을 준비는 언제든 되어있다.

단지 문제는 돈이다.


동생은 말로만 그럴 거 다 안다면서 관심 없어한다.

엄마한테 말하면 미쳤다고 하겠지.


그동안에 마이너스 대출금을 갚고

카드 사용을 줄이고 돈을 모으고,

무엇보다 내 경력 3년은 채워보자고.


그렇게 생각하니,

출근길에 매번 가슴이 막혀서 숨쉬기 어려웠던 그 시간이

2년이라는 시간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즐거워졌다.


나만의 게임을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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