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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와이 Nov 25. 2021

마성의 깻잎찜

엄마가 처음 길러낸 식용작물, 깻잎

향긋한 깻잎 씨앗을 얻다


깻잎을 기르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근처 사는 지인이 지난해 기르고 수확한 깻잎 씨를 가지고 있다며 나눠준 것이 계기였다. 그동안 수 차례 텃밭 기르기에 실패해왔던 나로선 이걸 받아도 제대로 길러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아직 키우지도 않은 식물을 먹기부터 할 욕심에 일단 받긴 했는데, 꽃 모양 깍지부터 영 어색하다.



살살 깍지를 비벼보니 작은 꽃 안에 한 알의 깻잎 씨가 콕 박혀 있었다. 아, 이게 들깨구나. 훅 불면 날아갈 정도로 참 작다. 하지만 무엇보다 손 끝에 묻어나는 향긋한 냄새에 적잖이 놀랐다. 박하향 같기도 하지만 그보단 한결 부드러운, 한껏 들이마시면 머릿속까지 시원해지는 향이다.


씨앗이 워낙 작고 연약해서 훌훌 날릴 것 같아 얼른 물 적신 키친타월에 올려놓았다. 촉촉해진 씨앗을 이제 심으면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하지만 무식해서, 용감했다.


알고 뿌려야 한다


간단히 검색 한번 하고 시작했으면 될걸 왜 그랬을까. 오랜 기억 속의 정보에 의지해 이렇게 잔잔한 씨앗은 고랑을 파서 솔솔 뿌려주면 될 것 같아 흙을 고른 후 말 그대로 ‘촥’ 뿌렸다. 나중에야 깨닫고 후회했지만, 손가락으로 흙에 적당한 깊이의 구멍을 내고 ‘한알 씩’ 심어야 한단다.


뿌려진 씨앗들은 정직하게 뿌리를 내렸다. 바람과 물, 햇빛의 조건 아래에서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한 자리에서 빼곡하게 몇 개의 씨앗이 함께 움튼 것은 순전히 내 잘못이었다. 것도 모르고 씨를 뿌리니 싹이 난 것에 난 그저 신기하고 신이 났다. 그러나 새싹이 하루가 다르게 키가 자라 갈 때쯤 자기들끼리 힘겹게 자리다툼을 하는 모양을 보고서야 비로소 내 실수를 깨달았다. 씨앗들은 자기 본성대로 뿌리를 내리고 열심히 살았건만, 이제 이 ‘헬 텃밭’에서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솎아내기’밖에 없었다.


깻잎을 솎으며


씨앗을 받을 때 지인 분이 “이거 꽤 많은 거야.”라고 했을 때 알아들었어야 했는데. 무식한 난, ‘에게, 겨우 한 줌도 안되는데 뭐가 많다는 거야.’라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그 들이 하나하나 자리를 두고 제대로 심겼다면, 나의 작은 정원을 채울 개수였을 것 같다. 보다 못한 난, 어느 날 아침 팔을 걷어붙이고 ‘솎아내기’에 착수했다.


(마음만은) 귀하게 기른 새싹 하나하나가 아쉬워 하나씩 살살 걷어냈지만, 뜨거워지는 햇살 아래 비지땀이 나며 손놀림이 점차 기계적으로 빨라지고 있었다. 뽑다 보니 요령이 점차 생겼다. 똑같은 씨앗일진대, 자란 모습은 저마다였다.


잘 자란 놈들은 더 잘 자라게 가만 두었다. 비슬거리며 싹만 겨우 트인 녀석들이나 뿌리가 깊지 않고 키만 길쭉이 큰 녀석들을 쑥쑥 뽑아 던져버렸다. 이로써 더욱 물과 양분을 잘 먹게 될 것이다.


한 구멍에서 난 싹 중에서도 여럿이 잘 자란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하나씩 분리하여 서로 거리를 두어 잘 옮겨 심어 주었다. 소리 없이 경쟁하느라 지쳤을 녀석들이 이제야 한 숨 돌리는 듯해 보였다.


하지만 개중에는 이파리가 제법 무성하게 잘 생겼어도 옮겨 심으니 이내 시드는 것들도 있었다. 뿌리를 깊게 내리지 않고 다른 식물들에 기대어 편하게 이파리에만 신경 썼던 녀석이리라.


어떤 새싹은 무성한 싹들의 그늘 속에서 자라 잎사귀는 아직 변변치 않지만 뿌리가 제법 튼실하게 자리 잡히기도 했다. 이 역시 넓은 흙으로 옮겨 잘 심어 주었다.


무관심이 필요했다.


이렇게 솎아내고 나니 선택되어 살아남은 식물들은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솎아내는 과정 중, 흙은 파헤쳐지고, 뿌리도 다쳤을 것이고, 아예 자리가 옮겨진 개체들은 영 허들 허들 하니 자리를 잡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이러다 제대로 된 깻잎 한번 못 맛보겠구나 싶어 마음이 달았다. 쌀뜨물을 받아 물을 주기도 해 봤지만, 영 성장 속도가 이전 같지 않았다. 제법 잘 자란 몇 그루에서 몇 번 잎을 따 먹긴 했지만 기별도 가지 않을 양이었을 뿐이다. 이렇게 농사는 실패인가 보다, 체념하고 여름 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하지만 올해 여름, 한 달여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준 것은...


보기에도 무성한 초록빛 깻잎 밭이었다...!


무엇이 얘네들을 가꾸었지?
난 그저 한 달간 집을 비웠을 뿐인데?


이들에게도 무관심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아닐까. 매일매일 들여다보고 가꿔주는 것은 부차적이었을 뿐,  그저 물과 바람과 햇빛 그리고 단단히 발 붙일 수 있는 땅이면 족했었던 것이다. 내가 잠시 관심 쏟아주지 못했던 그 시간, 이 작은 식물은 몇 백의 초록의 손을 태양 아래 좌악 펼쳤다. 내 눈에만 더뎌 보였을 뿐, 소리 없이 치열하게 뜨겁게 여름을 준비했었을 이 녀석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풍성함은 즐기면 즐길수록 더해진다


한 달간 비어있던 냉장고에 식재료가 있을 리 만무했음에도 불구하고, 며칠간 장을 보지 않고 버틸 수 있던 건 순전히 ‘깻잎’ 덕분이다.

여행 후 집에서의 첫 끼니, 누룽지와 베이컨+깻잎!

깻잎이 있으니 왕의 식탁도 부럽지 않았다. 깻잎을 마음껏 먹는 삶이라니. 한국에 사는 사람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깻잎이 뭔데 호들갑이람?? 


사실, 다른 식재료들은 현지 마트에서 그를 대체할만한 것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깻잎만큼은 아니다. 이는 한국의 고유 맛이 담긴, 한국 특유의 허브인 것이다. 이렇게 기르지 않는 이상, 통조림 깻잎 반찬을 사 먹거나, 한국 식당에서 밑반찬으로 나오는 것을 조금 맛볼 수밖에 없는 ‘귀한’ 식재료다.


길러낸 깻잎으로 쌈을 싸 먹고, 쪄서 먹고, 다른 요리에 올려먹고, 깻잎김치를 담그고, 고기전을 부쳤다. 요 별 것 아닌 잎사귀들이 주는 행복감이란...!


게다가 이 잎사귀들은 뜯어내면 그 다음날 더 많아지는 것 같았다. 마법과 같이!

친구들을 방문 할 때마다 모종이나 깻이파리를 선물했다. 해가 긴 나라라 그런지, 가을 무렵에도 잘 자라던 깻잎들.


깻잎 씨앗을 거두며


세상에는 온갖 일이 일어나
세상의 바람에 흩날리네
가을은 높은데 희끗한 귀밑털을 슬퍼하고
쇠하고 병들어 얼굴의 홍조를 꿈꾼다
새를 날려 보내도 하늘은 한이 없고
구름을 보니 길은 끝이 없다
남아 있는 내 뼈가 귀하구나
삼가 함부로 깎지 마라

-나쓰메 소세키-


어느덧 줄기마다 꽃대가 올라오고 그 끝마다 하얀 깨꽃이 피었다. 꽃망울이 맺힌 후 이 여린 식물들은 이파리와 줄기에 남은 온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단번에 잎사귀는 싱그러운 빛을 잃었고, 줄기는 노래지기 시작했다. 작은 씨앗에서 퍼져 나왔던 생명은 다시 작은 씨앗으로 돌아가기 위해 급속히 시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어떤 아쉬움이나 후회도 없이, 생명은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제 씨앗을 품은 꽃마저 갈색으로 시들어 버렸다. 하지만 그 안마다 박힌 젊은 씨앗은 다시금 봄을 꿈꿀 것이다. 어쩌면, 한 생명이 시들고 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씨앗으로 ‘변신’ 한 것은 아닐까?


사람은 두려움과 우울감으로 내 몸의 노화를 바라보게 된다. 내가 남길 씨앗에 대한 희망이 있다면, 두려움 없이 세월을 맞이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예의 대가조차 서글퍼했던 늙어감인데 그 누가 쉽게 안 그렇다고 할 수 있겠나 싶다.


깻잎을 기른   계절 동안,  자연을 통해 삶의 비밀을 조금씩 훔쳐본  같은 기분이 든다. 씨를 뿌릴 때도, 솎아낼 때도, 잎을  먹을 때도, 시든 식물에서 씨를 거둬낼 때도, 식물의 일대기 였지만, 어쩐지 인간사와 많이 닮았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
(고린도후서‬ ‭9:6‬ ‭KRV‬)


자연은 정직하게 생존과 번성을 향해 똑바로 달려간다. 열매를 맺었으면 그에 힘쓰고, 자길 버릴 줄 아는 것이다. 그들의 과감한 베팅에 감동을 느끼며, 힘껏 씨앗을 잘 수확했다. 내가 받아온 양에 비하면 열 배 정도 되는 양일 것 같다. 이 씨앗들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주변에 나눠져, 다시금 그 생명을 펼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마성의 깻잎찜 레시피


1. 깻잎을 한 장 한 장 잘 씻어준다.

2. 양념장을 만든다.

양파를 하나 썰어 넣고, 간장 4, 고춧가루 3, 설탕 1, 다진 마늘 1을 섞는다.

3. 냄비에 깻잎 4장씩 겹쳐 깔고 그 위에 각각 양념장을 올린다. 그다음부턴 깻잎의 꼭지 부분이 아래층과 겹치지 않게 살짝 돌려가며 쌓아준다.

4. 양념장을 갠 그릇에 물 반 컵을 넣고 그릇에 묻은 양념장까지 깨끗이 개어 냄비 가장자리에 주변에 부어준다.

5. 뚜껑을 닫고 중불에 5분 가열한다. 불을 끄며 들기름 한 스푼을 두른다.

이것은 깻잎 김치이다. 가열하지 않는 점과, 양념장에 젓갈이 들어가는 점이 다를 뿐 비슷한 레시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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