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는 것의 의미.
선수 시절 운동일지를 쓰면서 글 쓰는 습관을 들였다. 그날 무슨 훈련을 했는지 기록하려는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훈련을 통해 느낀 점을 썼던 것이 자연스레 글 짓는 연습이 되었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매일매일 느낀 점을 쓴다는 것은 나만의 비판적 사고관을 키우는 일이 아니었나 싶다. 비판적 사고 (critical thinking)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연구를 할 때도 마찬가지로 나의 견해와 다른 연구자가 가진 견해와 차별성을 갖고 있는지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언어의 동물이며 각자가 가진 언어를 입 밖으로 꺼내고 쓰는 일을 평생 동안 하면서 살아간다. 쓰지 않고 말만 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말하려는 것을 글로 바꿈으로써 생각의 오류를 줄인다. 오류가 줄어든다는 것은 사고를 명확히 한다는 의미이며 논리적 사고력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생각해보면, 시험을 볼 때도 우린 답을 쓰고, 취업을 할 때도 자기소개서를 쓰고, 유학을 가고자 할 때도 조차 입학지원서를 쓴다. 하다못해 여행을 갈 때도 출입국 신고서 따위를 써야 한다. 글 쓰는 법을 익힌다는 것은 한 개인이 삶에서 직면하게 될 복잡한 미시적인 과제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함이다. 이렇듯 우리는 무언가를 쓰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
나는 지금 여기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이곳은 남들이 내 생각을 들춰보는 공적인 공간임과 동시에 나의 사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하고 정밀하게 조정하는 연습장인 것이다. 개인 일기장이 아닌 소셜 네트워크와 같은 남들이 내 글을 볼 수 있는 곳에선 스스로 검열 작업을 한번 더 거쳐야 하기에 아무래도 문법이나 단어 선택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조던 피터슨 교수는 자신의 저서 <의미의 지도>를 쓸 때, 같은 문장을 최소한 50번씩 수정했다고 한다. 각 문장 당 50번씩, 책에 쓰인 모든 문장들을 말이다. 생각해보라.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은 이렇게 수많은 자가비판적인 수정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생각이 정리되고 명확해진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만큼 표현하지 못한 경험을 수십수백 번 겪었을 것이다.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 속상했던 적도 많을 것이다. 내가 품고 있는 생각이 말로써 일치되지 않을 때 오해를 만들어 우리는 늘 속상하다. 이러한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글을 써야 한다.
재밌게도 매일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일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싸이월드 덕분이었다. 과거 싸이월드는 현재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플랫폼들처럼 사진이나 영상을 업로드할 수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텍스트 기반의 소셜 네트워크였다. 그 안에는 사진첩은 물론, 방명록, 게시판 등등 개인의 영역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무언가를 길게 쓰고 분류해야 했고 이는 곧 자연스레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지금은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을 만큼 손발이 오그라드는 글들로 가득할 테지만, 어쨌든 싸이월드는 나에게 좋은 연습장이 되었다.
그럼 글을 정말 잘 쓰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글을 통해 훌륭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은 첫 번째도 읽기 두 번째도 읽기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주제가 무엇이든 간에 젊은 시절 다독을 통해서 최대한 다양한 문장들과 어휘들을 자신의 몸속으로 통과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체화된 문장들과 어휘를 통해 자신의 문장력과 어휘력을 확장하는 것이다. 독서하지 않고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은 밥을 굶고 운동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더 중요한 것은 독서를 하던 글을 쓰던 순서에 상관없이 일단 시작하는 것이다. 쓰기와 읽기 무엇이 됐건 일단 시작하면 이 둘은 유기적으로 보완하며 성장한다. 아무래도 독서만으로는 자신의 생각이 좀처럼 명료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해상도가 낮은 머릿속 생각들을 선명히 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다. 처음에는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미흡해도 좋다. 그냥 쓰는 것이다. 일기 형식이든 소개 형식이든 뭐든 상관없다. 일단 머릿속에 있는 정보들을 조합해서 말해 본 뒤에 최종적으로 쓰는 것이 중요하다.
운동선수들 또한 코치의 불합리함에 대해 대처하기 위해, 어쩌면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하기 위한 협상의 도구로써, 궁극적으로 운동을 하는 의미를 찾기 위해 글을 써야 한다. 글쓰기 능력은 학위보다 중요할 것이다. 물론 독서를 많이 해야 글감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당장 독서하는 것이 부담이라면 일단 써라. 글을 쓰다 보면 본인이 그동안 글 쓰는 것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뭐부터 써야 할지 고민이라면 자신에 대해 써보자. 난 그랬다.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쓰는 것은 독서량이 부족해도 쓸 수 있다. 즉 자신의 모든 경험을 글로 정리하는 것이다. 내가 직접 보고 들은 것은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기 때문에 누구나 가능하다. 책을 통해 얻는 지식도 결국에는 내가 아닌 남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에 불과한 것 아닌가. 그렇게 일단 자신의 경험을 써보면 풍부한 표현이나 정교한 생각을 담기 위해 책을 찾아 읽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 최대한 다양한 문장과 표현을 체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생각과 말을 통해 형상화된 글들을 다듬은 뒤에 적절한 단어를 찾아서 바꾸고 문장의 순서를 뒤집어 보기도 한다. 이렇게 자기의 글을 수십, 수백 번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 그저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던 생각들이 마침내 하나로 모아진다. 정교해진 생각을 갖고 있는 인간은 무엇보다 특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