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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성 Feb 08. 2022

쇼트트랙은 원래 치사하다.

중국으로 간 쇼트트랙.

지난 20여 년간 대한민국에서 쇼트트랙이라는 운동을 했던 선수로써 이번 베이징 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나온 판정들을 보며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쇼트트랙 경기는 비단 대한민국 선수들을 향한 석연찮은 판정을 넘어서 도를 넘어서고 있다. 비록 글이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지라도, 최소한 앞에 남아있는 경기들에서 만큼은 오늘 같은 어처구니없는 판정들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개인적인 의견을 남기고자 한다. 이 글에서 특정 국가를 옹호하거나 깎아내릴 의도가 없음을 미리 알려드리며, 다만 공정한 경기에 대한 관점에서 쓴 글임을 밝힌다.


계주에서 터치는 이루어져야 한다

첫 번째 문제는 혼성계주에서 일어났다. 문제는 러시아, 중국, 미국, 헝가리 팀의 준결승이 문제가 되었는데 나머지 14바퀴가 남은 순간 2번 주자인 중국 여자 선수가 렌지 웨이 (중국) 선수를 터치하는 과정에서 러시아 선수의 방해로 인해 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ISU (International Skating Union)의 혼성계주에 대한 경기 규정에 따르면 (참조. 2021 Special Regulations and Technical Rules Short Track Speed Skating 51페이지 참조) 다른 팀 스케이터로 인해 터치 (exchanges)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푸시 (엉덩이를 밀어주는 동작)를 하지 못한 선수는 반 바퀴를 추가로 스케이팅하여 다음 주자와의 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터치가 이뤄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혼성계주가 신생 종목이므로 규정 자체의 결함을 주장하기도 한다. 혼성계주가 아닌 일반적인 계주에서는 터치를 못하였거나, 넘어졌을 때 순서에 관계없이 가장 가까이 있는 선수가 터치를 이어받아 스케이팅을 하면 되지만 (지난번 평창올림픽 여자 3000m 준결승 경기 참고) 혼성계주에서는 성별의 순서를 바꾸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같은 성별 안에서는 바꿀 수 있지만, 여-여-남-남 (아래 사진 참조)의 순서가 여-남-남-여 라던지 남-여-남-여 등으로 임의적으로 순서를 바꿔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즉 공정한 경기를 위해서 남자와 여자선수가 함께 레이스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ISU 테크니컬 혼성계주 규정


그런데 릴레이 순서를 바꿀 수 없다는 규정과, 준결승에서 여자 선수가 남자 선수에게 터치하지 못한 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예를 들어 한국팀의 마지막 주자가 마지막 스케이팅을 남겨둔 상황에서 한국팀 선수가 꼴찌에 있다고 가정해 보자. 하지만 마지막 주자의 판단 실수 혹은 1위로 달리고 있는 다른 국가의 선수에 의해 터치를 이어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더군다나 쇼트트랙의 맥락상 이러한 상황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일어난다고 해도 당연히 실격 사유에 해당한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이것은 400m 육상 계주 경기에서 꼴찌로 달리던 주자가 바통을 터치받기 전에 뛰어나가는 것과 같다. 혹은 다른 나라 선수가 들고 있던 바통을 받아서 달린 것이나 다름없다. 레이스 도중 터치가 일어나지 않은 경우는 20년 넘게 현장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수많은 선후배들에게 보고 들은 바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일이 처음이니 이에 대한 처벌을 내린 적도 없으며 처벌규정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다만 상황에 의해 터치를 하지 못하게 되면 반 바퀴 후에 해야 하는 것은 규정이며, 명백한 사실이다. 기준을 떠나 선수나 코치 모두 릴레이 경기에서 터치 없이 달리는 것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다. 이것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이미지 출처: Tony Chung 페이스북


위의 캡처된 사진들 중 세 번째 사진을 보면 푸시를 받아야 할 렌지웨이선수는 러시아 선수와의 충돌로 인해, 터치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내가 저 상황이었더라도 착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푸시를 해야 했던 여자선수는 분명히 노터치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여자선수는 렌지웨이선수를 터치하기 위해 따라가는 장면을 네 번째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렌지웨이 선수는 거의 전속력으로 스퍼트를 내고 있고 터치 시도 과정에서 속도가 줄어든 여자 선수가 뒤늦게 따라가서 푸시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만약 렌지웨이도 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알았다면 속도를 줄여서 푸시를 받았거나, 반 바퀴 후 다음 코너에서 터치를 받기 위해 코스 안쪽으로 다시 들어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수로 한 반칙도 반칙이다. 당연한 이야기를 설득하려니 그것도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 글을 쓰면서 깨닫는다. 


한편, 심판은 규칙을 이행하지만 예외의 경우도 물론 있을 수 있다. 다시말해 렌지웨이 선수가 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겠냐며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핵심은 저 중국 선수가 터치가 되지 않은 상황을 알고 있었던 몰랐든 간에 "터치가 되지 않은" 사실이 더 중요한 문제다. "그래, 넌 몰랐으니까 너 잘못은 아니야" 라고 위로해 줄 일이 아니란 말이다. 이 것을 지금 문제 삼지 않는다면, 다음번에 같은 상황이 일어났을 때 역시 문제를 삼을 수 가 없기 때문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중국 선수가 러시아 선수의 방해로 인해 터치가 불이행된 것이, 중국 선수가 스케이팅을 이어나가도 된다는 명분이 될 순 없다.  


 하나는 아래의 미국의 실격 사유인데 피빌리토 선수가 터치를 이어받으려 코스 안에서 주행하던 중에 레이스를 하고 있던 여자 헝가리, 중국 선수와 충돌할 뻔한 타이밍이 있었다.   피빌리토의 선수의 위치가 아래 사진과 같이 파란색  (레이스 라인) 침범하여 중국 선수의 진로를 방해한다. 이는 규정상 실격이 맞다. 허나 전체 맥락을 살펴보면 피빌리토 선수는 중국 선수가 저렇게 안쪽으로 갑자기 진입할 줄은 몰랐을 것이고, 선수가 넘어졌다면 모르겠지만 이와 같은 상황에서 실격을 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하지만 고의성이 없더라도, 심판이 경기에 방해가 되었다고 판단해서 실격 판정을 내렸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미국과 러시아의 경기 방해로 인한 실격은 납득할  있다.  터치를 하지 못한 중국도 실격이라면.


이미지 출처: SHORTTRACKHD.com


결과적으로 미국과 러시아의 실격으로 인해 헝가리와 중국이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고, 끝내 결승에서 1위로 통과하여 동계 쇼트트랙 올림픽에서 최초로 신설된 혼성계주 종목 챔피언이 되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고의성이 없는 반칙이라도 경기에 영향을 미치면 실격 사유가 된다. 왜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재차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바람만 스쳐도 실격이다?  

오늘 남자 1000m 쇼트트랙 경기가 말이 많았다. 대한민국 선수들 또한 예선까지는 무난히 통과하여 오늘 펼쳐진 준결승 경기에서 모두 심기일전하였는데 예선 때보다 선수들의 컨디션은 훨씬 좋아 보였다. 쇼트트랙 1000m 준결승 경기는 가장 힘을 많이 써야 하는 중요한 라운드다. 우승 후보급의 선수들이 경합을 벌이게 되는 준결승에서의 이변으로 인해 때로는 변변찮은 실력의 선수들이 파이널에 오르기도 하기 때문에 어쩌면 결승보다도 더 힘들고 치열하다.


영상 출처: 유튜브_일사에프


문제는 준결승 1조에 속했던 황대헌 선수의 경기였다. 앞선 두 명의 중국 선수의 팀플레이로 인해서 앞으로 한 번에 추월하기에는 여의치 않아 보였다. 두 번째로 달리던 리웬롱 선수가 의도적으로 황대헌 선수를 코스를 이용해서 전담 마킹하고 렌지웨이 선수는 선두에서 계속해서 편안한 길로 페이스를 올리면서 가는 전형적인 팀플레이 전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대헌 선수는 앞선 두 선수가 벌려놓은 미세한 간격을 역이용해서 선두로 탈환한다. 처음에는 추월 순간 황선수를 마크하던 리웬롱 선수가 삐끗하길래 몸이 조금 닿았나 싶었는데 슬로모션으로 다시 보니 황선수는 앞선 두 중국 선수와 부딪힘이 전혀 없었다. 예상컨대, 황선수는 두 번째로 달리던 리웬롱 선수만을 제치려는 요량으로 추월을 시도했지만 방심하고 있던 렌지웨이 선수가 코스를 크게 돌고 있었던 바람에 선두로 가는 길이 열렸을 것이다. 운이 약간 따라줬던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떠한 부딪힘도 없었다는 것이며 오히려 두 중국 선수 사이에 끼려고 했다면 큰 부딪힘이 생겼을 수 도 있었을 것이다.


영상 캡처: 유튜브_일사에프


이와 같은 추월 상황은 국내 경기에서는 경기중 너무나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고, 심지어 국제경기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이와 같은 추월 상황에서 경합하고 있는 선수가 설령 넘어졌다고 하더라도, 선수간에 몸이 부딪히지 않았다면 대부분 실격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황선수가 페널티를 받은 이유는 뒤늦게 추월을 시도해서 부딪힘을 유발했다는 것이다. 영상을 보면 황선수와 중국 선수의 부딪침은 고사하고 중국 선수들끼리의 부딪힘도 없었다. 다만 2위로 달리던 리웬롱선수가 갑자기 추월한 황선수를 보고 놀라서 넘어질 뻔했던 것뿐이다. 글자 그대로 causing contact (부딪힘 유발) 관점에서 봤을 때, 황대헌선수의 추월이 어떤 추가적인 부딪힘의 원인이 되었다면 황대헌 선수에게 실격을 주어도 납득할 수 있지만, 추월 후 연쇄적으로 부딪힘이 유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격이라 볼 수는 없다. 아니 놀라서 당황한 것까지 봐줘야 하나.  


2021 ISU 위반 규정


두 번째는 이준서 선수의 경기이다. 이정수 해설위원이 말했듯이 이준서 선수가 추월을 시도하면 다른 나라 선수들이 비켜주는 것 같다고 할 정도로 훌륭하고 깔끔한 레이스를 펼쳤다. 오히려 황대헌 선수가 속한 조보다 소위 말해 더 빡센 조편성으로 현 세계랭킹 1, 2위인 헝가리의 리우 형제와 중국의 500m 최강자 우다징 선수들 사이에서 접전을 펼쳐야 했다. 레이스 마지막 바퀴를 남겨두고 헝가리 형제 중 동생인 리우 샤오왕 선수를 제치며 2위로 자리를 잡았고, 그 과정에서 다시 한번 샤오왕 선수의 추월을 견제하려 코스 안쪽으로 스케이팅을 하려다 이준서 선수 뒤에서 충돌이 일어나며 샤오왕 선수는 넘어진다.


영상 캡처: 유튜브_일사에프


보통 위와 같은 상황에서 이준서 선수에게 실격을 주려면 샤오왕 선수 (추월자)의 몸이 이준서 선수와 동일선상에 있거나 최소한 몸통의 반이라도 걸쳐져 있어야 한다. 심판이 보는 각도에 따라 동일선상으로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준서 선수는 확실히 샤오왕 선수보다 몸통 하나는 앞서 있었다. 판정은 이준서 선수가 무리하게 코스를 변경해서 뒤선 수의 진로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실격을 준 것인데, 이준서 선수의 활주 자체는 자리를 지키기 위한 스케이팅이었다고 본다. 저 상황에서는 어떠한 선수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혼성계주부터 오늘까지 벌어진 이상한 판정들이 없었다면 최소한 이준서 선수의 실격은 아쉽지만 받아들여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정도의 활주도 금지된다면 우리가 열광하고 박진감 넘치는 쇼트트랙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그냥 쇼트트랙도 스피드 스케이팅처럼 서로 다른 주로에서 순위가 아닌 기록으로만 승부를 결정 지어야 할 것이다.


스포츠에서 심판에 따라 국내외를 불문하고 옷깃만 스쳐도 실격을 주는 심판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스포츠에서 판정의 잣대가 특정 국가나 선수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세워져야만 우리는 공정함이라는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공정함 같은 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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