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라운시티 Jan 19. 2022

안녕(Hi) 나의 안녕(Peace)

삶의 Quality는 근무지에서 시작된다. 43만 기관러의 안녕을 꿈꾸며

"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어디에서 근무를 하고 있을까? 이 글의 시작에 앞서 미리 당신의 매일같은 출근길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


서울에서 일하는 경기도 거주민의 평균 출퇴근시간은 72.1분이라는 통계가 있다. 하지만 해뜨기 전 밥상을 차리고 눈 비비는 고등학생 딸에게 밥 한숟갈 떠먹이고 출근하는 워킹파파 K씨는 아침은 3시간이 필요하다. 아메리카노 없이는 하루가 힘들다.


KTX권역인 천안에서 일하는 서울역 인근 아파트 거주 자동차부품회사 T씨의 하루는 사실 남들보다 고달프다. 10시 출근을 회사에 약속받았지만 천안-서울 KTX 안에서 노트북으로 회사에 지원한 신입직원 지원자 자소서가 기차와 함께 흔들리는 와중에 눈을 부릅뜨고 한글자씩 읽어나간다. 알게 모르게 따가운 팀장님의 눈초리는 덤이다.


출퇴근은 웬걸 대구발령으로 지방살이를 시작하면서 갓 태어난 딸 아이와 주중 생이별한 제약회사 영업직 P씨는 혼자 사는 오피스텔의 횡함에 잦은 야근을 택했다. 하필 배정받은 대구에 친구나 지인하나 없는 건 참 서러울 때가 많다.


남들보다 두시간 일찍 출근해서 종이신문을 읽고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부서에 전달하고 싶은 부서장 W씨는 오늘도 눈 마주치기를 거부하는 부서원이 아닌 점심시간 타 부서장과 자식의 대학 입시에 성공한 동년배 이야기를 나눈다. 기러기 아빠의 삶은 다 그런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우리 회사의 연초 인사발령은 직원의 희비를 엇갈리게 만든다. 인사발령이 나는 주간에는 의례적으로 안녕(Bye)과 안녕(Peace)을 빌어주는 회식 자리를 가지기 마련이다. 집 앞에서 근무를 하게되어 얼떨떨한 직원부터 해외주재로 가족이 함께 영향을 받는 인사발령까지 너무나 다양한 형태를 띄고 있다.


인사발령은 직무, 함께 일할 사람을 정해주기도 하지만 내 인생의 배경화면이 되는 근무지라는 것을 결정하여 새로운 인생의 챕터를 알리는 서문이기도 하다. 직장인에게 연봉, 근무지 이 2가지는 공통적인 이슈가 아닐까 생각된다. 내 가치를 증명하는 댓가인 '연봉'과 내 삶의 질을 좌지우지하는 '근무지'. 그 중 근무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다. 몇 가지 문득 생각나는 케이스, 혹시 익숙하지 않은가?

1. 취학 전 아이를 키우는 A연구원, 제주도 연구소에 발령받아 가족과 함께 꿈같은 3년간 제주살이

2. 여자친구와 얼마 전 헤어진 광주 토박이 B대리, 이걸 알아챈 인사팀에서 여의도 본점으로 그를 소환

3. 회사생활 10년차 안식년 없는 질주에 지친 C팀장, 마닐라 주재원으로 발령받아 8살 딸은 어학연수 예정

4. 중간만 가자고 결심하며 회사 생활한지 5년째 갓 진급한 H과장, 계열사 발령은 권고가 아닌 강제사항

5. 결혼을 앞두고 헤어진 J차장, 부산에 마련한 신혼집을 수습하기 위해 부산 발령을 자진했으나 목포로 발령

6. 회계사로 경력직 입사한 L매니저, 입사 첫 발령지는 외식문화팀, 담당 직무는 한식기획 담당자

7. 개업 5년차 P한의사, 계속되는 환자 수 감소와 두 아이 과외비 증가로 병원 하나 없는 근교 벽지로 이전


최근 내가 본 회사 동료들과 지인의 발령 사항을 재구성해보았다. 물론 이 글의 미관상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 퇴사를 부를만한 매운 맛 예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직종에 따라, 업무 성격에 따라, 직급에 따라, 상사에 따라, 회사 방침에 따라, 사회적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근무지에 일희일비하는 동료들을 보며 진심을 다해 축하해주기도 하고, 한없이 위로하고 다독이고 싶은 순간을 마주하게 되기도 한다.


최근 COVID-19로 인해 재택근무라는 사회적 현상이 일어나면서 내 집이 근무지가 된 사람도 한두명은 아닐 것이다. 필자가 2호선 교대역에서 분당 서현역까지 눈을 비비며 네이버 지도상 40분, Door-to-Door 1시간 20분 정도를 소요하며 출근하던 기억이 있다. 경기광주에서 용산역까지 2시간 반에 걸쳐 출근하는 선배의 타박 앞에 피로를 논할 수 없었지만, 지금 그 선배는 회사 전면 재택근무 시행으로 출근길이라는 것이 아침에서 사라졌다.


또 사회적 흐름이 근무지에 영향을 준 이슈가 한가지가 있다. 필자가 일하는 공공기관이 2004년에 제정된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이하 '균특법')을 위시로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시작함에 따라 공공기관 재직자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현재 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


" 지역 간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지역의 특성에 맞는 자립적 발전을 통하여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과 국가균형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 균특법 제1조(목적)-



공공기관 이전의 이슈가 항상 회자되는 가운데 최근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리스트'라는 것이 돌면서 다수의 공공기관 재직자들이 떨고 있다. 미미한 기관 지방이전 효과, 비효율적인 수도권 업무 수행은 차지하고서라도 가족과의 생이별하게 된 가장, 함께 사는 노모를 놔두고 원치않는 지방살이를 시작한 자식, 노령화 도시에 짝을 찾지 못하는 젊은 직원까지 개인의 사정은 다양하기 짝이 없다. 이미 많은 기관들이 지방으로 이전되었고 진통을 겪으며 지방에 자리잡은 직장인도 이제는 상당수가 되었다.


지방 이전을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물론 찬성을 하는 입장 또한 아니다) 다만 혁신도시에서의 삶의 Quality에 대해서 조금 더 고민해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은 항상 남는 것 같다. 지방이전으로 인해 근무지가 바뀌고 삶의 터전이 바뀐 사람들에게 근무지의 수준은 그들 삶에 질적인 영향을 지대하게 미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0.8%*를 이루고 있는 거대한 군집인 공공기관 재직자들의 안녕(peace)에 진심인 정책이야말로 대한민국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지름길이 아닐까?

*'20년 말 기준, 공공기관 임직원 정원 435,734명


격지 근무에 지친 동료들이 유독 눈에 밝히는 오늘. 엉켜버린 근무지에 고생하는 직장인의 군상을 언급하다보니 두서없이 글을 끼적인 것 같다. 조금 더 편안한 출퇴근 그리고 휴식에 진심인 수많은 직장인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이 글을 닫는다.


 당신의 출퇴근은 안녕한가요?






작가의 이전글 공공기관 재직자에 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