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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안 Jul 21. 2019

많이 늦은 <부천국제영화제> 후기

<온다> & <데드 돈 다이> 외 2편


 올해로 23회를 맞이한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 방문했습니다. 비 소식이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제가 방문한 날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비는 내리지 않고 구름만 있었습니다. 덕분에 햇볕이 덜 들어와 시원스럽게 바람 불러왔습니다. 나름 시원영화제를 즐겨서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단지, 만족스러운 날씨에 비해 부천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자칭 '판타스틱'한 영화들은 제 취향과는 거리가 있어서 만족스러운 작품을 많이 만나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이 글에서는 <온다>, <데드 돈 다이>, <운전강사의 특이한 비밀>, <박미숙, 죽기를 결심하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합니다. 각 4편의 영화는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스타일이 온전히 담겨있는 <온다>, 짐 자무쉬의 자유분방했던 <데드 돈 다이>와 코미디 영화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었던 <운전강사의 특이한 비밀>과 더불어 부천영화제에서 예상치 못하게 즐겁게 본 <박미숙, 죽기를 결심하다>까지 인상 깊게 본 작품들입니다. 각기 다른 4편의 영화를 보며 느꼈던 만족스러운 생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도 싶습니다. 그리고 부천 영화제를 돌아다니며 느꼈던 영화제 감상도 더불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 온다(来る)

  나카시마 감독의 <온다>가 부천 영화제를 방문했다. 평소 강렬한 이미지를 활용한 연출 방식으로 나름 팬층을 지닌 감독이라서 이번 부천 영화제에서 그의 신작 <온다>의 인기는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의 독특하고 강렬한 연출 방식이 낯선 사람이라던가, 취향에 맞지 않은 사람에게는 썩 호응을 유도해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대중들에게 호불호가 극명하게 구분되는 예술로 받아들여지고, 팬들 역시 불호의 의견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는 분위기다. 개인적으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가 표현하는 감각적인 이미지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해주고 싶다. 하지만 스타일이 좋다고 영화가 좋은 것이 아니듯이 감독의 능력은 높이 생각하나, 그의 작품에 대해서는 아직 의아한 점이 많다.



 <온다>는 일본 호러소설 <보기왕이 온다>를 원작으로 한다. <보기왕이 온다>는 일본 호러소설 대상을 받은 경연 우승작이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지만 <온다>는 소설의 서사만 가져올 뿐,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색깔이 듬뿍 담겨있다. 그래서 원작 소설과 영화 사이에서 발생하는 괴리감을 느낀 사람들 또한 많은 듯하다. 자신의 색깔을 온전하게 담아 새롭게 재구성하는 점은 대단하지만, 자신의 색을 담아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보기왕이 온다>와 <온다> 사이의 거리감은 무시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거리감이 오롯이 감독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때, <온다>를 보며 느껴지는 서사에 대한 빈약함은 감독의 책임이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작품을 보며 느낄 수 있는 연출과 서사의 부조화는 평소 평론가들이 끊임없이 그를 향해 제시하는 비판이기도 하다. 감각적인 이미지 활용에 몰두되어 감정적 폭발력은 갖지만 그 폭발력이 이야기 속에서 활동하지 못하고 이야기 표면만 긁어내는 수준에 그친다.



 <온다>도 마찬가지다. <온다>에서 분출해 나아가는 활동성은 오직 이미지 활용에 기반하는 피상적 활동에서 멈춰버린다. <온다>는 인간이 지닌 나약함을 귀신이라는 매개를 통해 표현하고 그를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책임성이 요구되는 위치에 둔다. 즉, 인간의 나약함과 책임성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고통을 귀신이라는 요소로 풀어낸다. 하지만 <온다>는 감각적 이미지를 통한 분위기 형성, 캐릭터의 성격을 드러내는 단편적 시퀀스들만 보이고 그 외에 해당하는 귀신이 표현하는 인간의 나약함,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진 나약함의 원인처럼 매우 중요한 요소들은 힘을 잃어 공감하기 어렵다. <온다>를 보며 치사의 부모가 단순히 무책임한 나쁜 사람이라 생각될 뿐, 그들이 가진 나약함의 근거와 공감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점이 <온다>가 지닌 가장 큰 단점이다.


 

2, 데드 돈 다이

 그의 작품이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 작품은 예매 1순위로 자기매김 되었다.  짐 자무쉬 감독의 작품세계를 열렬하게 좋아하는 한 명의 관객으로서 <데드 돈 다이>를 놓친다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래서 예매가 시작됨과 동시에 즉시 <데드 돈 다이>의 좌석표를 보며 자리를 쟁취했다. 그리고 뿌듯함과 성취감에 소리 없이 환호성 치며 설레어했다. 그리고 부천국제영화제의 사실상의 목표인 <데드 돈 다이>를 본 이후 조금은 얼떨결 한 느낌과 약간의 허탈함 그리고 살짝의 미소를 띠며 상영관을 나서게 되었다.



 <데드 돈 다이>는 고어하고 자극적이며 속도감 있는 좀비영화라 칭하기에는 어려운 지점들이 있다. 물론 이는 감독 특유의 감성이 반영된 결과이지만 그의 작품세계를 추종해온 사람들도 약간의 갸우뚱한 지점들 역시 존재한다. <데드 돈 다이>의 유머 코드는 짐 자무쉬적인 것에는 부정의 여지가 없지만 장르를 비틀며 생겨나는 의외성은 영화의 후반에 이르면 관객 의 이해 가능 궤도에서 이탈하여 완전히 B, C급 감성으로 질주하게 된다. 필자는 이런 형태의 폭주를 <패터슨>의 반동처럼 느껴지도 했지만, <패터슨> 이전 짐 자무쉬 작품들에서도 엿볼 수 있는 의외성이라는 점에서 이탈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데드 돈 다이>에서는 그 의외성이 증식하더니 B급을 넘어 이탈해가는 서사의 흐름에 당황하게 된다. 그래서 <데드 돈 다이>는 짐 자무쉬적이면서도 짐 자무쉬적이지 않는 도발성을 가졌다고 하면 적당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짐 자무쉬 답게 <데드 돈 다이>에서도 정치적 메시지를 섞은 유머들이 가득하다. 이해하면 재밌는 것이고, 이해 못하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의 유머들을 가리켜 일일이 설명하는 일은 이 글에서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단지 진지하게 다뤄지는 현 사회적 문제들을 가볍게 변주하며 던지는 대사들의 박자감은 기가 막힐 정도로 재치 있다. 특히 '좀비'를 다루는 방식이 재치 있다고 느꼈는데, 죽기 전에 하던 일을 중얼거리는 좀비의 모습은 일본 좀비 영화 <아이 엠어 히어로>를 연상시키고, 영화 마지막의 살육씬은 게임이지만 <레프트 4 데드>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좀비를 단순히 공격성을 띤 시체들을 넘어 자유롭게 활용해 가는 <데드 돈 다이>의 매력은 앞서 이야기한 의외성과 함께 영화의 활력을 더한다. 그래서 보는 내내 어디로 튈지, 무슨 말을 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흘러가는 <데드  돈 다이>를 진지하게 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살짝의 체념을 섞어 영화가 만들어가는 이상한 궤도에 자신을 맡겨 보는 것이 이 영화를 보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3, 운전강사의 특한 비밀

  <운전강사의 특한 비밀>을 보신 많은 분들 대부분 긍정적인 평을 내고 있다. 아주 유연한 방식과 유쾌한 방식으로 풀어낸 코미디 영화라는 점과 더불어 코미디 장르가 살기 어려운 요즘 시대의 피시주의에도 적당한 작품이라는 평이 대부분이다. 마치 <고스트 버스터즈>를 연상시키는 주인공과 종교적 순결주의를 비판하는 주제의식이 만나 유쾌하게 질주하는 <운전 강사의 특이한 비밀>은 코미디의 명중율도 높은 편이다. 첫 씬에서부터 관객의 입가에 작은 웃음을 주는 이 영화는 점점 웃음의 빈도가 잦아지더니 템포가 줄어들지도 않고 끝까지 나아간다. 유머의 힘이 일관성 있게 증식해가는 <운전 강사의 특이한 비밀>은 배우들이 연기한 각 캐릭터의 개성들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도 영화 전반에 흐르는 반의식주의적 주제의식이 이 영화를 더욱 빛낸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운전강사의 특이한 비밀>의 악당 '크리스천'은 록스타였던 자신의 과거 명예를 되찾기 위해 흑마술로 처녀를 악마에게 바치려고 한다.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 '로즈'는 예전 자신의 퇴마 중 발생한 실책으로 퇴마를 그만두고 운전강사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크리스천'의 악행을 알게 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된다.]


 악당의 설정부터 직설적으로 영화가 다루고 싶어 하는 주제를 이야기한다. '처녀를 바치려 하는 크리스천'이라며 종교의 의식주의에 대한 비판을 영화는 예고한다. 이에 걸맞게 주인공 로즈의 퇴마 방식을 별거 없이 유령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만, 악당 크리스천의 주술을 아주 형식적이고 거창한 의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코미디의 피가 흐르는 이 영화에서 악당 크리스천의 의식적 행동들은 아주 우스광스럽게 연출된다. 크리스천의 의식은 자꾸 끊기고, 의례방식 역시 아주 보잘것없어서(처녀 탐지기) 웃음을 자아낸다.



 코미디는 사회적인 가치로부터 이탈하여 그 가치에 대해 다시 재고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효능을 가진다. 이처럼 <운전강사의 특이한 비밀>은 코미디라는 장르의 효능을 극대화시키는데, 특히 영화의 절정에 이르면 처녀성이라는 일종의 억압 체계가 얼마나 쉽게 무너지고 별거 아닌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아주 경쾌하게 흘러가는 <운전강사의 특이한 비밀>은 이 경쾌함 속에서도 자신이 겨냥한 목표물을 놓치지 않는다. 코미디라는 장르가 지닌 장점을 최대치로 이끌어낸 이 작품 덕분에 필자도 조금 코미디 물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4, <박미숙, 죽기 결심하다>


 <박미숙, 죽기 결심하다>에 대해서 적기로 결심한 것은 한 장면 때문입니다. 5편의 단편영화 틈 속에서 유일하게 흐뭇한 실소를 준 작품이기도 했고, 빠듯한 영화제 일정에서 마주한 산뜻한 사진 같기도 했습니다. 장편의 삶에서 단편의 삶은 영화이며, 영화라는 아름다운 순간을 찾기 위해 생동하는 모든 것이 영화의 몫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박미숙, 죽기결심하다>에서 마주한 순간은 그 몫을 충실히 수행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한 장면, 이곳저곳의 사진을 찍다가 비를 피하려 들어간 정자에 남자와 여자, 그리고 그 둘을 찍은 사진들, 사진들 위로 읊는 인물들의 대사들, 멈춰있는 사진의 시간은 대사의 흐름 위로 살아있고 적적하게 내리는 빗물에도 새어 나오는 인물들의 생동감은 제 마음을 훔치기에 충분했습니다. 삶은 비극이기에 사진으로 순간의 행복을 잡아내려 하는 남자 주인공(이름이 기억나지 않네요)의 말처럼 비록 사진 속의 그 사람이 진짜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괜찮으니 사진 속에서는 그런 사람으로 존재하도록 삶의 균열을 메꾸는 것. 상처 난 삶을 붕대로 싸는 것처럼 나의 살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상처를 덮어주는 것. <박미숙, 죽기 결심하다>는 영화가 행해야 하는 거짓말의 진실을 가볍게 툭 던져주는 따듯한 영화였습니다.


--------후기---------

 뜨거운 햇살이 아스팔트 바닥까지 녹일 기세로 내리쬐는 바람에 그 햇살 아래서 땀을 삐질삐질 흘렸던 게 기억이 납니다. 영화를 크게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은 제게 영화제가 그렇게 재밌냐고 질문하고는 합니다. 그리고 항상 좋은 영화만 있는 게 아닐 텐데 돈이 아깝지 않으냐고 말합니다. 실 영화제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만 만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서 아쉬운 느낌을 주는 영화를 마주하기도 합니다. 영화제가 만드는 것은 일종의 만남의 장이지 만족스러운 만남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누구의 탓도 아닌 자연스러운 일상의 만남과 같은 것이지요. 우리의 일상에서 항상 만족스러운 만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이 어긋나는 순간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 또한 하나의 세계와 만나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그 중독성을 외면하기 어렵습니다. 만남을 갈구하는 모든 영화광들에게 영화제는 수많은 만남을 가능케 하는 축제입니다. 그리고  속에서 영화인들은 마음을 두드려줄 영화를 찾아다닙니다.


 다음 영화제는 부산국제영화제가 될 것입니다. 처음 가는 것이지만 한국의 가장 큰 영화제로써 설레는 마음으로 시간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부디 그날도 부천 때처럼 날씨가 좋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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