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요소에 관하여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세 딸아이의 엄마라는 이름을 달게 된 후로는 예전처럼 여행을 자주 다니지는 못하고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치로 즐겨내는 중이다.
요즘은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과 어린이 집으로 등원시킨 후, 느지막한 오전에 동네 도서관으로 작은 캔버스백 하나 달랑 메고 여행을 떠난다.
특히 매주 목요일은 길 위의 인문학이라는 강좌에 참여 중인데, 매일의 삶 속에서 무심코 스쳐 지나갔던 미술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통해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기르고자 무려 10회 차 왕복권을 끊었다.
일상에서 벗어나 낯설고 새로운 환경을 찾아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고 돌아오는 모든 과정이 여행인바, 끊임없이 일상의 굴레를 돌고 탈피(脫皮)하기를 반복하며 오늘도 나는 그 다음 여행을 꿈꾸곤 한다.
이렇게 마음의 환기를 하고 나면 새로운 경험과 자극들은 막혀가던 내 생각의 혈관들을 그 여느 때보다 맑게 확장시켜 주고, 마음의 혈류를 더 힘차게 흐르게 한다. 묘약과 같은 여행이 주는 묘미랄까.
사람의 모습이 모두 같지 않고, 그 안에 변화와 움직임 등이 주는 역동들이 다양하게 나타나듯, 여행의 모습들도 각양각색이다.
점, 선, 면, 그리고 입체. 언젠가 여행에도 기본요소가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사는 여러 차원의 삶 속에서 나름대로의 도형을 이루어 가는 것이 여행인 셈이다.
[여행의 점]
필요한 곳만 툭 하고 도장을 찍으며 다니는 것이다. 단기에 이곳저곳 주요 관광지를 살피며 가벼이 발걸음을 옮기는 ‘점’ 여행.
점을 찍는다는 표현이 다소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는 일과 속에서 미리 정보를 조사하여 효율적으로 일정을 관리한다면, 여행이 남긴 작은 흔적을 통해 많은 것들을 사유하고 채워갈 수 있다.
[여행의 선]
한 곳에 조금 더 오래 머물거나 한 번 더 그 지역을 찾아 둘러보며, 점과 점 사이의 새롭고 깊은 감회와 분위기를 발견해 가는 '선‘ 여행.
이는 점 여행에서 미처 살피지 못했던 지형지물의 새로움을 만끽하며 새로운 자극과 상상을 선물처럼 만들어 갈 수 있다.
[여행의 면]
유명하지 않은 낯선 곳 또는 어느 한 지역에서 한참을 머물며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 땅을 직접 맨 발로 더듬어가며 흙의 기운을 느껴보고 사람을 만나고 날 것의 향토 음식을 먹으며 잔잔히 그리고 오롯이 그곳의 주민으로 살아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서서히 적응하고 살아가는 과정들 속에서 무언가 크고 작은 위로와 기분 좋은 울렁거림, 그리고 나의 고향에 대한 그리운 마음이 묘하게 공존하는 다채로운 시간을 경험해 갈 수 있다.
[여행 그리고 입체]
어쩌면 가장 긴 시간과 큰 용기, 그리고 결단이 필요한 과정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또 다른 차원을 창조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차원 너머에는 또 다른 차원이 있는 것 같다. 그 차원을 넘어서려면 부단한 몰입과 자아 성찰의 과정이 필요하다.
차원이 차원을 넘어가는 순간, 지금까지 내가 보아 온 것들이 굉장히 허무하거나 허탈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우물 밖에서 바라본 세상이 주는 규모와 장관들에 크게 감탄도 할 수 있고...
어딘가 삶의 진면목이 밝게 드러난 빛 아래서 음영과 윤곽이 더욱 명료해진 나에게로 돌아와 지금이라는 이름의 일상들을 다시금 직면하고 더욱 ‘풍성한 나’라는 다음 차원의 존재를 만들어가게 되는 것 같다.
[다시, 원 ‘점’으로]
곱씹어보니 처음에 그 ‘점'이라는 것이 단순한 공간의 영역을 넘어 그 지점을 살아내는 ’사람‘ 또는 ’삶‘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점 지어진 삶들이 모여 느슨한 선으로 연결되고, 그 무수한 선들이 면을 만들어 낸다면 우리의 삶에 다양한 레이어(Layer)가 생길 것이다.
이는 ‘사람들' 또는 ’삶들‘이라는 풍부한 부피를 만들어내고 규모의 존재를 만들어갈 수도 있겠다는 요란하고 어수선한 단상도 들었다.
무에서 점이 주는 부요함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의 발과 생각이 머무는 길 위를 무척이나 배부르고 풍성하게 한다.
점, 선, 면의 모든 여행은 결국 나의 상황과 선택에 따라 다른 뉘앙스의 만족으로 다가오기에 모두 소중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여행에 대한 단상 : 나는 누구로소인가?]
나에게 여행이란 무엇인가? 나는 왜 여행을 떠나고 싶은가? 그동안 어떻게 여행을 떠나왔는가? 그리고 지금이라는 일상 속에서 나는 누구와 어떤 여행을 꿈 꾸는가? 나의 자취가 된 그 점과 선과 면 위에 앞으로 어떤 차원의 삶의 모습들을 남기고 싶은가? 그렇다면 나는 이제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결국은 여행이란, 내가 나를 만들어가는 일인 것 같다. 일상 속에서 부단히 나를 벗겨내고 켜켜한 층계를 오간다. 다른 차원으로의 나로 성장시키고 성숙시켜 가는 이 연속적인 탈피의 과정을 지나다 보면 살아 숨 쉬고 있는 나를 만나고 또 하나의 삶과 삶들로 그렇게 모습을 달리하고 아우르며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다시 일상 속으로: 여행은 낭만을 싣고]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가을은 두 번째 봄이라고 했던가! 알베르 까뮈가 남긴 오래된 말 한 마디가 긴 여운으로 짙게 맴도는 계절이다.
지금으로부터 사흘 전은 목요일이었고, 어김없이 여행을 떠났고 돌아왔다. 나의 목요 여행도 어느덧 7회차를 맞이했다.
그 여행의 서막은 도서관 선배님인 시어머니 손길에 이끌려 마지못해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제법 다정한 마음을 나눌 친구들도 사귀고 스스로 기뻐서 개근하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국립현대미술관과 호암 미술관도 다녀오고, 미술 인문학 관련 서적을 요리조리 살펴보기까지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무엇보다도 내가 나를 만나러 가는 이 여행 길이 제법 설레고 기분 좋다. 생기가 돈다고나 할까. 나와 내 이웃의 삶을 이해하고 해석하며 접근해 가는 다양한 관점과 방향성을 갖기 시작하게 된 것 같아서 이 정도면 나름대로 꽤 만족스럽게 다가온다.
탈피의 계절, 내 발치에 일렁이는 크고 작은 삶의 물결들이 참 아름답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