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즐거움

성북동 성곽길을 걷다

by 푸른 숲


한결 부드러워진 바람과 따뜻한 공기들이 주변을 채우고 있는 요즘, 신록을 바라보며 걷는 일은 참 즐겁다. 멀리서 초록의 물결이 한 번의 바람에 밀려왔다가 다시 밀려나가며 상큼한 풀과 꽃 향기마저 전해주니 마음도 맑아진다. 걷다 보면 평소에 보이지 않았던 작은 것들이나,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갔던 것들이 새롭게 보인다. 그러니 이 아름다운 날들이 사라지기 전에 틈 날 때마다 걷는다. 가까운 공원에서부터 멀리 있는 둘레길까지 주어진 시간에 따라 내키는 코스를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이날은 오랜만에 평일 오전에 시간이 나서 평소에 가고 싶었던 성북동 성곽길을 걷기로 하였다. 한양도성을 따라 걷는 이 길은 총거리가 18.6km로 네 코스로 나누어져 있다. 1코스는 혜화문에서 창의문까지 백악 구간, 2코스는 광희문에서 혜화문까지 낙산 구간, 3코스는 숭례문에서 광희문까지 남산 구간, 4코스는 창의문에서 숭례문까지 인왕산 구간이다.


나는 1코스인 백악 구간 중 와룡공원에서 혜화문까지 걷기로 했다. 대사관저 골목길 아래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한 뒤에 와룡공원까지 걸었다. 걷다 보니 이마에 기분 좋은 땀이 맺혔다. 와룡공원은 백악 코스 중간에 자리 잡은 매점 차량 한 대와 화장실이 있는 작은 공원이었다. 버스정류장도 있었는데 성곽길을 걸으러 오는 사람들이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듯했다.



와룡공원을 눈에 담은 후 매점 차량에서 구운 달걀과 양갱 몇 개를 사서 혜화문으로 가는 성곽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성곽길 옆으로 노란 꽃들과 낮은 풀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들 너머로는 낮은 집들과 높은 건물들이 모여있는 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먼 데서 바라보는 도시의 모습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가까이에서 보면 높고 큰 건물들인데 멀리서 보면 오밀조밀 모여있는 정겨운 풍경이 되고 만다. 그러고 보면 "삶"이라는 것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가끔씩 먼 데서 바라보면 그 무게가 약간은 줄어들면서 가벼워질 것도 같다.



이 길은 밤에 걸어도 참 아름답겠다. 달빛이 빛나는 밤에 성곽길에서 바라보는 서울 밤 풍경은 또 어떤 모습일까? 먼 데서 보이는 도심이 별처럼 반짝거리는 밤을 상상해본다. 낮에는 싱그러운 걸음이, 밤에는 향긋한 낭만이 있는 길이겠지. 시간이 되면 밤 풍경을 보러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걸었다.


그렇게 풍경을 바라보고 내려오다 보니 서울 도심지가 나왔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나 순간 고민하다가 서울과학고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분명 좀 전까지만 해도 자연과 성곽길이 펼쳐졌었는데 어느새 도심지가 나오는 것도 신기한 길이다. 바쁘게 움직이는 차와 사람들 사이로 한낮의 햇살이 눈부시게 떨어졌다. 그렇게 도심을 걷다 보니 혜화문의 표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혜화문은 한양 도성의 동북쪽 문이다. 현재는 일제강점기에 문루가 낡아 철거하였던 것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혜화문으로 올라가 보니 아래로 차들이 부지런히 지나가고 있었다. 도시는 복잡하게 움직는데 어쩌면 여기는 시간이 멈추어있는 것 같이 파란 하늘 아래 푸른 단청이 고즈넉해 보였다.



혜화문을 돌아 차가 있는 공영주차장까지 걸었다. 돌아가는 길은 가깝게만 느껴진다. 갑자기, 주차장 옆으로 작은 카페가 하나 있었던 것이 생각나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졌다. 걷고 나서 마시는 시원한 커피는 언제나 행복하니까.



아이스 아메리카노 위로 햇살이 내려와 반짝거린다. 시원한 커피를 사가며 다음에는 창의문에서 와룡공원까지 걸어보리라 생각한다. 역시 걷는 일은 즐겁다. 꼭 먼 곳으로 가지 않아도 나의 시간과 여유에 따라 집 앞 공원에서부터 먼 둘레길, 성곽길까지. 이렇게 다양한 걷기 코스가 있으니 더욱 그러하다.

사실 아름다운 이 봄날에 신록을 담으며 걷기는 어디라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