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길을 잃었다

장봉도 섬 트레킹

by 푸른 숲

인천 삼목항에서 배를 타고 40여분 가면 나오는 장봉도는 바다와 산을 함께 즐길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트레킹을 하기 위해 섬을 찾는다. 특히 섬이 동서로 길고 봉우리가 많아서 산의 능선을 따라가며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다. 우리도 그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에 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오랜만에 뚜벅이 모드로 양 손에 등산 스틱을 쥐고서 말이다. 덕적도 백패킹 이후로 근교 섬에 관심이 부쩍 생긴 차에 맑고 포근한 가을 날씨까지 트레킹을 하기 위한 이유는 많았다.


삼목항에 도착하니 마침 승선시간이다. 발열체크를 하고 안심 팔찌를 차고 배의 갑판 벤치에 앉았다. 가을 햇살은 뜨거웠지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파란 하늘 아래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40분이 지나갔다.


하늘을 덮은 나뭇잎들

장봉도 선착장에 도착하자 많은 여행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우리는 선착장에서 얻은 섬 지도를 들여다보며 오늘의 트레킹 코스를 짜보았다. 이왕 트레킹을 시작한 김에 선착장이 있는 동쪽에서 서쪽 끝인 가막머리 전망대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등산로 초반에 이어진 계단을 올라가니 숲의 향기가 진하게 느껴진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온통 푸르다. 섬 트레킹 하기 참 좋은 날이었다. 그렇게 나무도 보고 하늘도 보며 걷다 보면 장봉도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인 국사봉이 나오겠지. 국사봉을 지나 걸으면 가막머리 전망대가 나올 것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걷다가 막다른 길을 만났다. 길 끝은 어느 건물의 벽이었다.

그럼 어디로 가야하지?

둘러보니 산 아래 마을 밑으로 해변을 따라 색색의 다양한 텐트들이 총총한 것이 보였다. 그래. 마을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길이 나오겠지. 그런데 이번에도 막다른 길이다. 그럼 반대쪽으로 가보자. 그런데 이번에도 길이 없다. 반대로 걸어갔더니 우거진 수풀 사이로 길이 사라져 있었다. 이럴 때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하겠지? 결국 우리는 처음 건물의 벽을 마주했던 갈림길로 다시 올라가기로 했다.


길을 잃어본 적 있어?

오래전 꼬마 아이였을 때 시내로 이사 가고 나서.
친구 집에서 놀다가 우리 집을 찾아가는데 길을 모르겠는 거야.
그래서 헤매다가 파출소로 갔었지.
어린 마음에 경찰 아저씨들이 집을 찾아줄 것 같아서.

다행히 집을 찾아갔구나.


어린 시절 길을 잃고서 당황했던 우리들은 어른이 되어 오랜만에 숲에서 다시 길을 잃었다. 길을 잃었을 땐 당황하지말고 침착해야한다고 했는데 당황스러운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그렇게 걸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다 보니 이곳엔 밤나무가 지천이다. 떨어진 밤송이 사이로 뽀얀 햇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예쁜 밤송이를 오랜만에 보니 정말 반가웠다.



길을 잃었던 곳에서 만난 예쁜 밤송이들


다행히 갈림길의 반대편으로 내려가 보니 섬을 우회하는 도로가 나왔다. 어찌나 반갑던지. 우리는 그 길을 따라 다시 서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초가을의 햇살은 뜨거웠고 우리 앞엔 낯선 모험이 펼쳐져 있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아름다운 해안이 나타났다. 그곳은 한들해변으로 장봉도에서 꽤 유명한 캠핑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캠핑장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으며 지도를 펼쳐보았다. 얼마나 더 가야할까.


지도를 보니 한들해변에서 가막머리까지 걸어가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매점 아주머니는 캠핑장에서 십여분 걸어가면 버스정류장이 나온다고 하신다. 그럼 버스를 타자. 버스를 타고 건어물 해변까지 간 다음 해안 산책길을 따라 올라가면 되겠지.



가막머리 전망대까지 가는 능선길에서 만난 바다


버스의 열린 창문 사이로 시원한 가을바람이 들어온다. 섬마을 오후의 버스 승객은 우리 둘뿐. 한들해변에서 한 두어 정거장 갔을까. 기사님이 우리를 향해 이야기하신다.

가막머리 가는 거예요? 건어물 해변에서 올라가면 계단이 많아서 힘들거든.
좀 쉬운 길로 가려면 여기서 내려요.

아 그럼 여기서 내릴게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갑자기 버스에서 내리고 보니 장봉 4리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가막머리 전망대로 가는 들머리로 많이 선택하는 곳이었다. 장봉 4리 마을을 따라 걷다 보니 이미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산을 내려오고 있다. 시계를 보니 이미 오후 4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잘하면 가막머리에서 오늘 아름다운 노을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장봉4리 등산로 입구에서 보니 임도를 사이에 두고 국사봉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우리가 예정대로 걸었다면 이 길로 내려왔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길을 잃은 덕에 밤송이도 만나고, 한들 해변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더위를 식히기도 했고, 잠시 버스를 타며 열린 창문 사이로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었으니 뭐 괜찮다. 아무튼 이제 다시 시작이다.


산은 참 신기하다. 오르막 길이 나오면 다시 내리막길이 나타나고 그러다 다시 오르막길 나온다. 그러다 보면 다시 내리막길이 나온다.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부드러운 능선길이 꽤 길게 펼쳐졌다. 그 길을 따라 가다 보니 다시 약간의 오르막길이 등장했다. 그리곤 탁 트인 어느 지점이 나왔다. 그곳에서 장봉도가 동서로 길게 이어진 양옆이 푸른 바다인 것을 깨닫는다. 여기도 바다고 저기도 바다다.


가막머리 전망대에서 만난 일몰


바다를 바라보며 땀을 식히다가 다시 이어지는 내리막길. 그 사이로는 늦은 오후의 해가 드리워진 숲길이다. 가다가 해가 지면 어쩌지. 또 다시 길을 잃지는 않겠지. 이런 저런 걱정들이 마음 속에서 올라왔다. 그렇게 어두워지는 숲길을 한참 걷다 보니 다시 환한 빛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곳은 가막머리 전망대였다. 아주 오래 걸려서 드디어 왔다. 들인 모험의 시간만큼 감동도 큰 것일까. 이날의 일몰은 또 한 번의 인생 일몰이 되었다. 무인도인 동만도와 서만도 옆으로 해가 조용히 지고 낮게 깔린 구름들은 하늘에 멋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바다는 노을빛을 받아 한동안 금빛이 되었다.


오랜만에 길을 잃었고 길을 잃었을 때 만난 것들은 길을 잃지 않았다면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길을 찾았다. 다시 찾은 길 또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공존했고 여전히 걱정은 많았지만 결국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 그 모험의 끝은 가막머리 전망대에서 만난 일몰이었다.



해가 지고 남은 빛들의 향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