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듣던 스몰웨딩을 준비하면서 든 생각들
2020 대한민국 결혼식 평균 비용 약 4,500만 원
난 이 비용이 하루 한 시간을 위해 사용하기에는 좀 아까운 비용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혼식으로 인한 축의금과 답례의 과정이 너무나도 귀찮았다.
나는 그런 것을 꼼꼼하게 챙길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지 않은 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글이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도 있는데 너는 왜 그래?]의 근거 글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애초에 결혼에 대한 로망도 없었고 결혼을 할 생각 자체가 없었으니까.
당신의 평생 반려자가 될 사람에게 훈수 두게 하려는 글이 아님을 먼저 밝힌다.
1. 신혼집
신혼집은 이 전 글에도 썼지만 전세로 좋은 가격에 구할 수 있었다.
계약금은 여유돈이 있었던 남자친구가 냈고 대출은 내 이름으로 진행했다.
사실 이 부분은 집값이 미친 이 상황에서 누가 대출을 받고 누가 뭘 했냐가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2. 예식홀
가족 결혼식을 결정하기 전 스몰웨딩 이야기를 했을 때 스몰웨딩을 진행하기 위한 예식홀 자체가 굉장히 비싸다는 것을 알았다. 100-200명을 수용하는 곳이나 50-100명을 수용하는 곳이나 결국 꽃장식, 디렉터 비용 등등을 합치면 차라리 200-300명의 일반 예식장에서 진행하는 것이 훨씬 저렴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이게 무슨 스몰웨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 부분을 알아보면서 많이 보였던 후기의 대부분이
'이 돈이면 일반 예식장에서 하겠다 싶어 스몰웨딩을 포기했다.' 거나
'그래도 적은 손님들을 초대하고 싶어 강행했다'는 경우였다.
이 부분은 손님수에 따라 결정이 되는데 나 같은 경우는 직장 사람은 부를 생각도 없었고
친구들 중에서도 정말 친한 친구들 외에는 결혼식을 부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중간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자리를 채우려는 마음은 서로에게 부담으로 돌아올 것 같았다.
그러나 남자친구는 달랐다. 이 친구까지 부르자니 저 친구가 눈에 밟히고, 회사 사람들을 안 부르자니 이제까지 낸 축의금이 걸리고.
사실 칼 같이 관계를 그어버리는 내 성격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진짜 축하받고 싶은 사람만 부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 마저도 우리 두 사람은 생각하는 게 많이 달랐다.
그래서 결국 한정시켜버렸다.
가족 결혼식으로.
사촌, 친척 다 빼고 부모님과 형제들만 초대하는 것으로.
그러고 나니 예식홀을 찾아볼 필요가 없었다.
대신 가족들에겐 비싸고 좋은 음식을 대접해드리자고 약속했다.
3. 웨딩패키지
내가 스몰웨딩을 결심한 것도 치렁치렁한 웨딩드레스를 입기 싫어서였다.
그 옷을 입을 생각만 해도 불편해서 그 날 하루 종일 스트레스를 받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옷을 입고 스튜디오 촬영을 하고, 드레스를 고르러 여기저기 다니고 하는 것은 내게는 시간이 아까운 일이었다.
그래서 과감히 다 안 하기로 했다.
사실 당일에 원피스도 입지 않으려고 했는데 엄마가 딸이 하얀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보고 싶어 해서 엄마의 컨펌 아래 드레스 같은 원피스 하나만 구매했다. 나름 엄마랑 인터넷으로 이게 예뻐, 저게 예뻐하면서 고르는 재미도 있었고 결과적으로 원피스도 내게 잘 어울려서 만족했다.
남자친구는 평소에도 입을 수 있는 세미 정장을 하나 구매하고 넥타이나 구두는 평소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착용했다.
메이크업에 조금 돈이 들었는데 나와 남자친구는 데일리 메이크업을 해주는 곳에서 진행하고 엄마와 할머니, 남동생 메이크업을 내 돈으로 지불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엄마도 할머니도 만족하셨고 나와 남자 친구도 나쁘지 않은 결과물의 얼굴(?)이 되었다.
4. 예물, 예단
이 부분은 각자 부모님을 잘 설득해서 진행했다. 아무래도 남자 친구 형이 결혼하면서 있었던 선례가 있어서 조심스러웠지만 부모님의 지원을 일절 받지 않았기 때문인지 양가 부모님 모두 이해해주셨다.
대신 우리끼리 얇은 금반지 하나를 맞췄다.
5. 이바지
이건 뭔지도 몰랐다.
6. 혼수용품
혼수용 가전이나 가구는 내가 모은 돈에서 일부를 사용하기로 했다.
이것도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 가격대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기 때문에 내가 예산 캡을 정해버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필요한 가구를 한정시키고 가격대 내에서 비교해서 구매했다.
결과적으로 우리 집에 브랜드 제품은 냉장고와 에어컨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우리 가격대에 맞는 인터넷 제품으로 고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럽게 쓰고 있다. 내가 원하는 디자인과 공간을 연출하고 있어서 내가 먼저 만족스러웠고 내 의견을 그대로 따라준 남자 친구도 지금은 매우 만족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특히 다른 곳에 아끼고 침대를 슈퍼킹으로 산 것은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둘이서 서로 자부하고 있다.
7. 신혼여행
안 갔다. 코로나도 심했고 겸사겸사 가지 않았다.
딱히 신혼여행에 대한 로망도 없었고 돈을 모으는 것이 우선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신혼여행은 메리트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오히려 남자친구가 신혼여행을 국내로라도 가자고 했었는데, 대학교 때부터 여행을 1년에 두어 번씩은 갔던 나로서는 가도그만 안 가도 그만인 느낌이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결혼식 당일 할머니, 부모님들은 다소 어색한 듯 보였지만 이내 진심으로 우리를 축하해주시며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우리가 사회를 보고 부모님들이 편지를 읽어주고 축사를 해주시며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내 결혼식이 좋았다.
다정한 사람들과 소중한 시간을 잘 즐기게 된 것 같아 지금 생각해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지난주 나는 동기 언니의 결혼식을 다녀왔다.
몇백 명이 참석한 대규모 결혼식이었다.
언니는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행복하게 결혼을 했다.
나 역시 그런 언니를 보며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세상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각자의 가치관이 있고 각자의 삶의 방식이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맞다 틀리다 할 수 없다.
그러니 나의 결혼식이 이렇다 저렇다 평가받을 일이 아니란 것을 안다.
나의 결혼식은 그저 우리 가족이 행복했던 그런 시간이었을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