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9시 반. 지훈이는 오늘도 편의점 파라솔 밑에서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며 저녁으로 후루룩거리면서 컵라면을 먹고 있다. 해가 진 지 오래되어서 어둠이 짙게 깔린 시간이지만 편의첨 입구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때문에 간신히 주변이 보인다. 지훈이는 컵라면을 먹으면서 생각한다. 에이, 오늘도학원에서 내 준 숙제를 하려면 편히 자긴 다 틀렸다. 무슨 자판기도 아니고 내가 무슨 척척박사야? 그리고 졸려 죽겠는데 무슨 생각을 하면서 문제를 풀어? 맘 같아서는 학원을 땡땡이치고 친구들이랑 게임 한판 하고 싶은데. 그러다가 엄마한테 들키면 경을 치겠지? 근데 인터넷 같은 데엔 학원 숙제 문제 풀이집 같은 건 없나?"
지훈이는 이제 고작 중학교 3학년이다. 사춘기가 시작된 지 꽤 오래 전이어서 코 밑엔 짧고 까칠한 수염이 나 있고 목소리도 변해서 괜찮은 중저음의 남자 목소리다. 사춘기여서 길을 걷다가 예쁘장한 또래 여자아이를 보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콩콩 뛰기도 한다. 마음 같아서는 그 여자아이에게 "시간 있으면 우리 떡볶이 같이 먹지 않을래?"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런 마음이 들면 얼굴이 조금 화끈거리기도 한다. 학원에 가면 그렇게 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어자게 만드는 숙영이라는 여자아이가 있어서 그 아이 얼굴을 몰래 훔쳐 보다가 선생님 강의 내용을 놓치기도 한다. 그래서 속으로 "너 때문에 강의 내용을 놓쳤잖아" 하면서 골을 내기도 하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만 그 아이에게 시선이 가는 걸 어쩔 수 없다. 사춘기라서 저절로 그렇게 되는데 나 보고 어쩌라고?
어느새 컵라면을 다 먹은 지훈이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컵라면을 먹는데 들어간 시간은 넉넉잡아 고작 10분. 이제 터덜터덜 집으로 가서 얼른 씻고 후다닥 학원 숙제를 마친 뒤 꿀맛 같은 잠을 청해야지라고 지훈이는 생각한다. 포근한 이불을 상상하니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좀 편안해지기는 했지만 이내 그 마음은 사라져 버린다. 그놈의 지겨운 학원 숙제 때문이다. 솔직히 학교에 가면 잠이 모자라서 선생님 눈치를 보면서 기술적(?)으로 졸곤 해서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는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학교에서 존 덕분에 저녁때 시작하는 학원 강의 내용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런데 딴 아이들은 열심히 학원 선생님의 강의를 이해하면서 듣는 눈치인데 나는 자꾸 딴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내가 좋아하는 가수 누나가 쇼 음악중심에서 이번 주 1위를 차지할까? 이번 주 일요일에는 친구들이랑 같이 컴퓨터 게임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게다가 재수가 좋아서 득템까지 한다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생각에 빠지면 자꾸만 선생님의 말을 놓치곤 한다. 심지어 혹시 나 집중력에 문제가 있거나 거 뭐라나, 에이디 에이치디라는 어려운 표현의 정신병에 걸린 건 아닐까?라는 생각 때문에 좀 걱정스러워지기까지 한다. 이러다 다른 애들은 반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워서 자사고인지 특목고인지에 합격하고 나만 별 볼 일 없는 일반고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