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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Oct 20. 2022

일하는 이유는 월급 때문이 아니다

첫 달 2주를 일하고 받은 월급이 1백 여 만원. 그리고 두 번째 달이 되어서 온전하게 170만 원이 조금 넘는 월급을 받았다. 나는 월급을 받으면 굉장히 행복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수입이 0원이시네요’에서 170만 원까지 가파른 상승이 아니던가. 


그러나 월급날이 반복적으로 돌아올수록 그 기쁨은 점점 작아졌다. 나는 일하는 기쁨을 찾고 싶었다. 


하역장에서 올라오는 박스들을 보부상 마냥 골라 담고 각자의 진열 구역으로 떠난다. 오픈과 마감조가 매장을 방어하기에 눈에 띄게 확 줄어든 제품은 없다. 물건들을 앞뒤 열을 맞추며  쑥 밀려 들어가는 자리에 제품 하나를 집어넣는다. 레고 같은 경우 중간 크기 제품은 선반에 3-4개가 들어가고, 작은 것은 6-7개가 들어간다. 오와 열을 맞춰 진열된 네모난 상자들을 보면 단정하니 기분이 좋다. 이게 이 일의 기쁨일까? 


어릴 적 유행하던 포켓몬이 다시금 부활했다. 포켓몬 카드가 입점되는 날이면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부지런한 고객들의 발걸음에 3만 원 남짓하는 카드는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선반에 가득하던 포켓몬 카드 3가지 시리즈 제품이 겨우 두 어 개 남으면 슬슬 같은 캐릭터의  다른 제품을 채울 준비를 한다. 두 개 남은 제품도 곧 찾아올 손님을 기다리며 앞쪽으로 당겨 가지런히 놓는다. 1층에서 2층으로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뭔가 기운이 느껴진다. 이쪽으로 다급하게 향하는 아빠와 아이 고객, 그 눈은 무언가를 간절히 찾고 있다.


-혹시 포켓몬카..ㄷ..?

-카드! 있어요. 2개 남았어요. 포켓몬 시리즈는 이쪽에 있습니다, 고객님.

-와~ 아빠 오늘은 있어요! 어 이거 신제품~ 칠흑의 가이스트예요! 아빠 이거 진짜 희귀한 거예요!


유난히 사재기가 많은 포켓몬 카드 경우에는, 정말 간절하게 카드를 찾던 초등 고객에게 팔려 갈 때, 제품이 주인을 만나 떠나는 그 모습은 꽤나 기쁘다. 


군대문화와 서비스업이 결합된 유통업계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일할 때는 무지성으로 임하라>라고 하기도 한다. 본사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업무 가이드라인에, 이미 꽉 찬 창고에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물량공세에, 관공서들의 관리감독에, 가장 예측 불허한 고객들 상대 등 사방으로 조이는 이 일에서는 때로는 인내심이, 때로는 먹고사니즘에 대한 서글픔이 생겨난다. 이에 버텨내는 방법은 때론 <무지성의 자세> 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지성의 날 들 사이사이, 일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으려는 나의 노력은 끝이 없다.



우리의 과학기술이 아무리 강력하고 우리 회사들이 아무리 복잡하다 해도, 현대의 일하는 세계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결국 내적인 것으로서 우리 정신의 한 측면을 구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일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널리 퍼진 믿음이다. 


p116, 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은행나무 2012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저자 알랭 드 보통은 4장의 첫 문장에서 이 문제에 대해 말했다. 


현실적으로, 인간적으로, 일과 행복의 양립이 가능한가? 때론 너무나 천직을 얻어 자신이 하는 일에서 만족감을 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퇴사’는 어느새 이 시대를 대표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서점에 가보면 자기 계발서만큼 많은 게 퇴사 서다.  


복잡한 기술문명 세계를 살아가면서도 우리가 바라는 행복은 굉장히 단순한 방식으로 추구된다.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행복해질 거야)

내가 저 사람하고 결혼을 하면, (행복해질 거야) 

내가 아이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가면 (행복해질 거야)


그러나 새로운 직장에는 예민한 사수와 공과를 가로채는 상사, 책임을 떠넘기는 팀원이 있다. 결혼은 어떤가. 모든 기혼자들은 후속 세대들에게 입을 모아 결혼하지 말라고 말한다. 먼저 보고 온 불구덩이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결혼생활을 묘사한다. 그중에서도 아이를 낳는 건 가장 큰 문제인데 아이를 키우는 것은 모든 것에 있어서 현미경을 댄 듯 확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아프거나, 말이 느리거나,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거나, 생일 파티에 부를 친구가 하나도 없다거나 하는 것으로 온 고민이 수렴된다. (당신의 인생은 이제 아이에게 오롯이 바쳐질 예정입니다.)


행복이 있을 줄 알았던 곳에는 현실과 책임감이 넘실거린다.  


나 역시 단단한 착각 속에 살았다. 내가 이렇게 우울한 건 돈을 안 벌어서라고 생각했다. 자아실현이 중단된 상태에서 일하는 나로서의 전환은 멈춰진 자아실현 바퀴를 다시금 돌리는 일이라 여겼다.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알랭 드 보통은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의 기쁨을 자아내거나 고통을 줄여줄 때 우리는 이 일이 ‘의미 있다’고 여긴다고 했다. 그러나 이 철학자는 책의 말미에서 진짜로 ‘일’이 주는 기쁨은 바로 현실감의 축소, 오롯이 일에 매진하는 그 순간의 가치에 있음을 덧붙였다.


일은 그 본성상 그 자신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면서 다른 데로는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일은 우리의 원근감을 파괴해버리는데, 우리는 오히려 바로 그 점 때문에 일에 감사한다. p367,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과장하고자 하는 충동은 지적인 오류이기는커녕 사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생명력 자체라고 할 수 있다. p369


우리의 일은 적어도 우리가 거기에 정신을 팔게는 해 줄 것이다. 완벽에 대한 희망을 투자할 수 있는 완벽한 거품은 제공해주었을 것이다. 우리가 가없는 불안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성취가 가능한 몇 가지 목표로 집중시켜줄 것이다. 우리에게 뭔가를 정복했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품위 있는 피로를 안겨줄 것이다. 식탁에 먹을 것을 올려놓아 줄 것이다. 더 큰 괴로움에서 벗어나 있게 해 줄 것이다. p371, 


나는 내가 하는 일의 순수한 기쁨을 찾는 것을 중단하기로 했다. 일이 주는 기쁨이란 행위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상태에 관한 것이었다. 집에서 밖을 바라보며 안에 머무르고 있는 내가 무용하다는 생각, 가치 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자괴감, 오늘도 내일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낙관이 없는 상태를 ‘일’이 중단시켜준다. 거기서 해방시켜준다. 


Title Photo by Amos Bar-Zeev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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