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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Oct 17. 2022

5년간의 소득이 0원 일때 해야하는 일

하는 일 (   )


여기에 채워 넣을 게 없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이 10년.

그 10년은 어떻게 지나갔을까. 


나는 결혼하고 일을 그만두게 된 전형적인 케이스다. ‘취집’이 목표였기에 그런 것은 아니고, 아이를 가졌고 출산이 임박해 왔기에 자연스레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에 들어가게 되었다.


2022 육아에는 금쪽이와 오은영 박사가 있다면, 우리 때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양육서들이 태동하던 시기였다. 모든 양육서에 정언명령처럼 내려오던 이야기가 있었다. <아이가 36개월까지는 엄마 품에서 자라는 게 좋다> 이 와중에 법륜스님을 인생의 멘토로 둔 친정 엄마의 입김도 한몫했다. 법륜스님의 책 <엄마 수업>에, 그리고 즉문즉설마다 설파했던 “아이들이 3살이 될 때까지는 엄마가 키워야 해요.”라는 스님의 주장은 거스를 수 없는 주문처럼 내게 머물렀고, 나는 그리 해야 하는 줄로만 알고 나의 3년을 아낌없이 바칠 각오로 첫째 육아에 돌입했다. 출산휴가가 끝나고 육아휴직으로 이어지는 회사로 돌아갈 옵션은 아예 생각하지 않았고, 첫 아이가 14개월 되던 때 둘째가 생기며 24개월 동안 두 아이를 연이어 출산하면서 나는 자연스레 육아맘이 되었다.


밖에서 마시고 싶은 아이스음료 한잔을 참고, 매일 부스스한 머리를 하러 가는 것도 다음 달로 미루는 삶이 자연스러워졌을 무렵,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본 광고가 내 현실을 일깨웠다.

 

“그동안 못 찾은 세금 받아 가세요.” 


라며 미 환급된 세금공제액을 조회하고 받아가라는 페이지였다. 재미 삼아 개인정보 몇 단계를 입력하고 결과를 기다렸는데.


<5년간의 소득이 0원 이시네요.>


한 문장으로 사람을 모욕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아웃 소싱하는 순간 1분 1초가 다 비용인데, 어찌 나의 10년을 이토록 폄하를 시켜버리는지, 비통했다. 육아와 돌봄, 가사노동이 징글징글했다. 하루도 집안 모든 곳에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데, 냉장고를 채우고, 집안을 닦고, 쓰레기를 버리고, 깨끗한 옷을 준비하고, 가정의 근간이 되는 이 넓고 끝도 없는 노동에 어찌 비용을 부여하지 않는가. 


책 엄마 휴직을 선언합니다, 권주리 지음, 교양인출판사 2022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듯했다. 나보다 앞서 진지하게 엄마 휴직을 선언하고 바깥양반이 된 잔다르크 같은 여성이 있었다. <엄마 휴직을 선언합니다>를 쓴 권주리 작가는 본인의 책을 통해 커리어를 내려놓고 엄마 역할에 종사하게 되는 여자의 일은 왜 무상 노동이 되어버릴까 하는 현실을 짚었다.


정리하자면 나는 평균 열두 시간을 주양육자이자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 그중 세 시간 정도는 전업주부의 일이고, 나머지 아홉 시간이 주양육자의 일이다. 2022년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하여 위 노동을 임금으로 환산해보면 아래와 같다.


전업주부(집안일)

가사도우미 앱 ‘미소’를 기준으로 보면 집안일 세 시간에 40,000원을 지불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 달을 평일 22일로 봤을 때, 44,000x22일=880,000원이다.


주양육자(돌봄)

정부에서 운영하는 ‘아이 돌봄 서비스’를 기준으로 보면 아이 한 명당 한 시간에 10,550원을 지불해야 한다. 이 비용에는 준비된 식사나 간식 챙겨주기는 포함되지만 아이가 먹은 식기 설거지는 포함되지 않는다.(가사 활동은 서비스에서 제외된다는 뜻이다) 즉 하루 아홉 시간의 돌봄을 외주 하면 하루 94,950원을 지불해야 한다. 위와 같이 한 달을 평일 22일로 봤을 때, 94,950x22일=2,088,900원이다.  


p28, 29 엄마 휴직을 선언합니다, 권주리, 교양인 2022


나는 두 아이의 가정보육을 꽤 오랫동안 했다. 그뿐인가, 2019년에는 남편의 일본 주재원 발령으로, 그곳에서도 한국만큼의 활동과 먹거리를 내도록 아이들에게 보장했다(아이들과 매일 1만 보를 걷는 나들이를 했고, 아침-저녁 끼니를 만들어 정성껏 먹였다). 누구의 도움없이 스스로 해낸 것이다. 이런 나에게, 수입이 0원이십니다 라니...


남편을 비롯한 주변 모두에게서 듣는 <네가 고생이 많다. 네가 이렇게 아이들을 열심히 키우니 아이들도 잘 자라고 남편도 바깥일을 잘할 수 있는 거지>와 같은 말들은 별로 위로가 되지 않았다. 듣기 좋은 말뿐인 보상 말고, 실체가 있는 것을 원했다. 남편의 울타리가 아닌 우리 사회의 최소 안전망인 4대 보험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고 싶어졌다. 일하고 싶었다. 초등학교를 입학하는 둘째의 돌봄 교실도 외벌이 남편과 전업주부로 이뤄진 가정은 처음부터 지원대상에서 제외였다. 세상은 여러 가지 형태로 전업주부를 배제했다. 


-아, 제가 이제 취업준비 중이라서. 수업 마치고 아이가 돌봄 교실에 좀 머물렀음 하는데.

-취업 준비하고 계시다는 걸 문서로 증명을 하셔야 하는데요, 취업 관련 교육 등록하셨거나 뭐 그런 문서상 증빙이요.

-아, 내일 배움 카드가 심사 중이라, 교육 등록을 아직은 못해서요.

-그럼 아마 1학기에는 돌봄 교실은 못 들어가실 것 같아요, 지원서는 제출하셨는데, 어머님 재직증명서나 취업 준비 중이라는 서류가 같이 들어와야 하거든요. 그리고 2학기는 돌봄 교실을 추가로 모집할지는 그때 교실이랑 돌봄 선생님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거라서요. 일단은 1학기에 못들어가면 중간에 들어가기가 좀 어렵긴해요. 


전업맘이 왜 아이를 맡겨요? 를 에둘러 말한다. 여러가지로 전업맘은 안된다고 한다. 집에 있는 엄마는 더욱더 나가기 힘든 상태가 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파트타임 자리를 둘러봐도 이제는 나이 제한에서 걸려버린다. 일자리가 많이 뜨는 대학가 앞 식당이나 인근 카페도 20-30대의 지원자를 원하고, 30대 후반이 되어버린 신입은 꽤나 부담스러운 나이가 된다. 이렇게 올해가 지나고 나면 무직 10년의 37살이니 그때는 더 일자리를 구하는 게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이 무직 10년의 꼬리를 끊어야 해. 한 살 더 먹기 전에 어디서라도 일을 시작해야 해.' 조바심이 들었다. 그때 마침 마트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가 왔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가겠다고 대답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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