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오드 Oct 11. 2022

마트에 왜 취직한거야?

마트 너는 나의 소중한 직장이야. 네가 내게 준 일자리에 나는 정말 기뻤어. 나도 일을 할 수가 있구나. 10년 동안 무직인 사람에게는 이런 마음이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거든. 


‘내가 지금 밖에 나가면 다만 1백만 원이라도 벌 수 있을까?’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나는 무심하게도 경력 란을 채울 생각을 못했지. 그러고 나니 어딜 가든 일을 10년을 쉬셨네요.(침묵) 하는 순간들이 찾아왔지. 그렇지만 10년의 공백은 사실이니 나는 그걸 숨길 수도, 커버를 할 수가 없었지. 최소한 면접에서는 솔직해야 하는 거잖아. 


마트에 가기 전에 면접을 본 회사가 있었어. 워크넷에서 갱신한 이력서를 넣은 곳이었는데 지원회사에서 연락이 오더군. 대단한 일은 아니고, 정수기 필터와 펌프를 만드는 인근의 회사였어. 경리직원이 하는 업무를 보조하는 역할을 찾고 있더라. 회계장부를 수기로 작성한다나. 그래서 이력서를 직접 자필로 써서 갖고 오라더라고(흔치 않지). 얼마 만에 파인테크 펜을 꺼내봤는지, 그 펜을 꼬옥 쥐고 깔끔하고 정성스럽게 한 자 한 자 써서 이전 경력 내역서와 함께 제출했지. 면접에 나온 경리직원은(나와 동갑이거나 한 두 살 많아 보였어) 회계가 있는 달에는 일이 너무 많아서 업무보조가 필요하다고 하더라. 업무 시간과 근무지가 내가 찾는 조건과 딱 맞아 여기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어. 그런데 그분은 10년간의 공백이 신경 쓰인다고 했어. 그러고는 연락을 준다던 회사는 연락이 없었어. 워크넷에는 채용 완료된 기업이라고 뜨는 걸 보니, (업무 보조라더니) 경력을 잘 갖춘, 자리에 넘치는 지원자를 뽑은 것 같더라. 그런 지원자는 빨리 나갈 텐데 말이야. 


어쩔 수 없었어. 나도 좋은 일자리를 알아. 일을 하면 할수록 커리어가 되는, 복지가 있고, 워라밸이 있는 그런 회사 나도 알아. 하지만 나는 거기 들어가기에는 너무도 낡아버렸다고 할까? 아니면 본가에 있는 오래된 장롱처럼 나는 세상과 동떨어져 변하지 못한 거야. 나는 그런 장롱 같은 게 되어버린 거지. 그렇지만 나는 폐기처분당하기에는 너무도 인생이 아까웠어. 나도 어딘가에서 쓰이고 싶었어. 그래서 내가 선택한 곳이 바로 마트야.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대형마트인데, 주 35시간 일하는 pt에게도 계열사 임직원 복지를 누릴 수 있게 해준다네? 별다방 커피도 30%나 할인해주고, 계열사 백화점도 20%, 마트 내에서 장 보면 10% 할인이 따라온다는데 혹 하드라구. pt지만 임직원 혜택은 똑같이 누릴 수 있다니. 별다방 커피가 30% 할인이라니! 몇 번이나 속으로 외쳤나 몰라. 그리고 입사하고 며칠 뒤에 사번이 나오더라. 428136. 사번이 나오고 HR사이트에 접속하니 ooo님 진열 pt 근무경력 0년 0월이라고 뜨는데, 뭔가 첫 삽을 뜬 것처럼 경이롭더라니까. 나 진짜 소속되었네! 블라인드라고 알아? 회사 재직 중인 사람들이 본인 회사 인증하고 가입해서 익명으로 회사에 대한 글을 자유롭게 쓰는 곳이야. 나도 사번으로 만들어진 사내 이메일이 생기니 여기에 가입이 되는 거야. 이런 게 정말 해보고 싶었어. 그들만의 리그에 발이라도 한번 넣어보고 싶었어. 너무 사소하지? 우습게도 내게는 이 모든 게 경이로워. 제가요, 회사를 다니게 되었거든요! 


그렇지만 나도 알고 있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란 건 이런 모습인 거.


콜센터 직원, 캐셔, 부동산 영업, 인바운드 아웃바운드가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늘 모집 중인 보험영업원, 방문 학습지 선생님, 배달원, 통신사 상담사 그 이상의 선택지를 가질 수 없다는 걸 말이야. 시급도 처우도 앞으로의 장래도 기대할 수 없는 그런 직업에서 남은 생을 보내는 것만이 유일한 길처럼 놓여있지. 그게 참 비참해. 내가 어릴 적 꾼 꿈과 지금의 나는 얼마나 멀어져 있는 걸까. 


정아은 작가의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을 읽었거든, 거기 딱 내 증상이 나오더라. 


- 이날 이후로 나의 지병이 시작되었다. 툭하면 휴대폰을 켜고 구직 사이트에 접속하는 병. 정규직,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를 가리지 않고 내가 할 만한 일이 없는지 게걸스럽게 찾아보는 병. 특히 누군가에게 노래의 2절이나 3절을 들은 날이면 어김없이 인터넷에 접속해 구직 활동을 벌였다. 정확히 말하면 구직이라기보다 그저 검색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두 아이를 돌보아야 하는 신분으로서 아침 일찍 나갔다 저녁에 퇴근해 돌아오는 직장 생활은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았기에, 검색에 두어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솟구치는 분노를 달랬다. 쓸데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검색해서 일자리 내용을 확인할 때만큼은, 이 정도면 나도 합격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 때만큼은, 돈을 벌어 온다는 느낌에 잠겨 들 수 있었다. 내가 내 능력으로 다시 회사에 들어가 다니고, 내 이름으로 된 통장에 다달이 일정 금액이 꽂힌다는 착각에, 그것은 내가 스스로에게 허용한 ‘유용한’ 시간 낭비였고, ‘논다’와 ‘남편에게 얹혀산다’는 말의 폭격 아래에서도 두 아이의 엄마라는 엄중한 자리를 이탈하지 않도록 해주는 차악의 가용 수단이었다. 


p27, 28,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정아은 , 천년의 상상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하지 않는 인간은 무엇으로 자신의 효용을 증명할 수 있을까? 숭고한 노동? 희생정신? 그런 건 그냥 듣기 좋은, 빛 좋은 개살구잖아. 숫자만큼 확실하고 쉬운 건 없지. 월급과 연봉. 너무도 쉬운 자기 증명이잖아. 나도 그거 한 번 해보려고. 


Title Photo by Clem Onojeghuo on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