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 코너를 잦게 찾던 적이 있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시선을 붙들어둘 것이 필요했다. 시간이 간절했다. 카봇 로봇으로 1시간을 살 수 있다면 10만 원도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엄마는 아이만 돌보지 않는다. 밥을(혹은, 이유식을) 만들고 먹이고, 치우고, 주방정리까지 마쳐야 겨우 한 번의 식사가 끝난다. 이와 더불어 재미있는 사실은 어질러진 공간에서는 아이들도 놀지 않는다는 것인데, 아이들은 거실이 어질러지면 방으로 도망간다. 거실을 치우고 나면 다시 어질러진 방에서 나온다. 뫼비우스 띠처럼 물리고 물린 집안일과 육아 사이에서 나는 장난감으로 내 시간을 샀다.
이제 학령기에 들어선 두 아이의 공간에는 로봇과 미니카가 사라지고 책상, 태블릿, 학습만화 같은 것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1백 번을 변신시켰을 자동차 합체 로봇은 박스에 들어가 수납 선반에 올라간 지 오래다.
그런 내 인생에 다시 장난감이 들어왔다. 완구코너의 pt가 되었다. 헬로 카봇, 또봇, 슈퍼텐, 미니 특공대, 티티체리, 캐치티니핑 등 더 다양해지고 새로워진 캐릭터 제품들에 완구 코너는 100m 달리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장이 확장되었고, 2팀 내에서도 가장 많은 팀원이 근무하는 pc가 되었다.
토요일이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노란색 카트를 밀고 완구 코너를 찾는 비슷한 모양새의 가족들을 보면 그 시절 내 모습이 겹쳐져 보인다. 기껏 어르고 달래서 나온 아이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마법 같은 공간, 바로 여기, 완구코너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엄마 일루 와봐~.”
여기저기서 엄마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결제권자는 엄마이기 때문에, 엄마에게 눈도장 한 번이라도 더 받아 오늘의 잇템을 꼭 사가려는 아이들의 노력이 눈부시다.
조부모들은 더욱 열심히다. 주말이면 찾아올 손녀 손자를 위해서 어렴풋이 알고 있는 장난감을 찾으러 마트에 온다.
-우리 아이는 이걸 잘 갖고 놀더라고. 그런데 여기 앉아 있는 토끼 다리는 움직이는 거 맞아요?
콩지 래빗이라는 아기자기한 장난감을 살펴보는 고객님이 물어온다.
-글쎄요. 이게 앉아 있는 건데, 아마도 뒤에 미끄럼틀도 타고 하려면(박스를 받아 들고 안쪽으로 자세히 살펴본다) 아 다리 관절이 나눠져 있네요. 다리가 따로 움직이는 게 맞겠네요.
그러면서 괜히 59900원에서 30% 행사하는 콩지 래빗 하우스를 권해보기도 하고 (고객님이 고른 건 단품이라 더 저렴한데, 할인율은 후자가 훨씬 크다). 선택은 고객의 몫이기에 안내 후 적당한 시점에 빠지는데 돌아서면서도 어떤 걸 사들고 갔을지 궁금한 맘이 든다.
3천 세대의 대단지 아파트와 인접해있는 우리 점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주말 풍경은 바로 에이포켓 가족인데, *에잇포켓이란, 아이 한 명을 위해 가족 8명이 지갑을 연다는 걸 의미한다. 저 출산 시대에 한 명의 자녀를 위해 부모와 친조부모, 외조부모, 이모, 삼촌 등 8명의 어른들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낸다는 걸 의미하는 신조어다. 1)
조부모와 부모까지 4명의 어른이 아이를 향해 말한다. 이건 어때? 이건 맘에 들어?
아이는 무언가를 골라야 하는데, 아직 무엇을 산다는 개념조차도 모를 나이다. 유모차에 앉아서 구경 중인 아이는 24개월 정도 되었을까? 그저 눈앞에 나타나는 박스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나, 이거 하고 싶어.라는 말을 앞으로 몇 번이나 하게 될까?
사회는 아이들에게 사회적, 지적,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방법을 가르치기보다 소비를 가르치는데 주력한다 2)
어른들은 가장 쉬운 방법으로 아이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 <행복의 조건>을 쓴 작가 에릭 와이너는 행복하려면 물건을 사기보다는, 경험을 사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경험보다 쉬운 길을 택한다. 장난감을 고른다. 계산대에서 돈을 낸다. 아이에게 장난감 박스를 안겨준다. 아이가 웃는다. 그러나 장난감의 행복은 짧다.
아이는 마트도 몰랐고, 뽀로로도 몰랐고, 타요도 몰랐다. 모든 것은 어른들이 세운 환상의 세계에서 무방비 상태로 아이 손에 쥐어준 장난감으로부터 시작된다.
소비문화가 어린이의 복지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줄리엣 B 쇼어는 책 <쇼핑하기 위해 태어났다>를 통해서 미디어와 기업에 의해 만들어지는 키즈 마케팅에 의해 급속도로 상업화되고 있는 어린이들의 소비문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전국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물질주의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9-14세 어린이들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다른 활동보다 쇼핑에 많은 시간을 쓰고 있고 3분의 1 이상은 “특정 게임이나 옷을 가진 아이들을 좋아한다”라고 대답했으며, 50% 이상이 “어른이 되어서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62%는 커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다고 대답했다.
p52, 53, <쇼핑하기 위해 태어났다>
축구, 음악, 미술을 좋아하는 것처럼 쇼핑을 좋아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그건 개인의 기호가 아니냐고 묻는다면, 쇼핑으로 대변되는 소비문화가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물질주의적인 가치관이 가져올 파장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소비문화 관여가 다른 유익한 활동가 행동을 축소시킨다는 점이다. (중략) 소비주의적인 어린이들은 친구들 그리고 부모와 형제들과의 교류가 덜 활발했다. 그들은 전반적으로 원활한 사회관계를 구축하고 있지 못했다. 그들은 독서, 놀이, 운동처럼 만족감을 주고 창의적이며 교육적인 활동들에 참여하는 기회가 더 적었다. 텔레비전의 영향에 대한 일부 연구들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그들은 덜 풍요롭고 덜 환상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소비문화가 어린이들을 행복하고 건전하게 하는 일들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어린이들은 소비문화에 깊이 빠져 있다. 어린이들은 점점 더 많은 것들을 사들이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소비문화에 보다 깊이 빠져들수록 그로 인해 더 고통받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이 상업적이고 물질주의적인 메시지를 많이 받아들일수록 그들은 자신에 대해 더 불만족하게 되고 더 우울해지고 더 불안해지며 두통과 복통에 더 시달리게 된다. 결론적으로, 어린이들이 자라고 있는 이 사회는 대부분의 어린들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파괴적이다.
p242, 243 <쇼핑하기 위해 태어났다>
완구코너에 일하고부터는 마트를 갈 때 아이들을 동행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과연 사방에서 쏟아져내리는 소비의 메시지를 버틸 수 있을까. 과연 한 개의 물건도 사지 않고 여기를 빠져나갈 수 있을까? 친절하게 아이들 시선 높이에 맞춰진 태블릿 화면들, 거기서 나오는 광고 영상, 오색찬란한 애니메이션에 아이들은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 한참이나 거기에 붙들려 있다.
모든 것이 철저하게 소비를 위해 구축된 이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광고 제품의 주인공들은 늘 도전하고, 꿈을 향해 나아가고 우정을 다진다. 불의에 맞서는 용기는 기본 장착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이 그런 변치 않고 단단하며 반짝이는 가치들을 오로지 화면 속에서만 만난다는 생각에 때로는, 우울해지는 토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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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아이 한 명 위해 온 가족 지갑 연다" 편의점도 '키즈' 마케팅 박차, 뉴시스, 이지영 기자
2) "소비문화가 아이들을 위협한다", 한경닷컴,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