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많은 것을 바꾸었다. 소비재를 팔면서 그간 호황을 누려온 대형마트도 예외가 없었다. 대형마트를 찾던 사람들은 이제는 핸드폰을 들고 필요한 물품을 쇼핑해서 터치 한 번으로 주문을 한다. 국내 대형마트 3사의 경쟁은 온라인 쇼핑몰들과의 대전으로 확장되었다. 오늘 자정 0시 되기 전까지만 주문하면 다음 날 바로 배송이 오는 로켓만큼 빠른 배송, 첫 구매 시 인기 제품을 단돈 100원에 판매하는 컬리 여사의 시장 등 실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온라인 몰들이 하루아침에 유통이라는 링 위에서 경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이후 평일의 마트는 매장을 방문한 고객보다도 검은 유니폼을 입고 카트를 밀며 장보기 대행을 하고 있는 온라인몰(=pp센터**) 사원들이 더 많다.
온라인몰 주문 상품을 장보는 시스템도 처음에는 1대 1 매칭이었다. 한 사람의 주문서를 한 사원이 처리하는 방식이었는데, 온라인몰 주문량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매장 내 장보기도 세분화되기 시작했다. 공산품만을 찾는 사원, 가공식품만을 찾는 사원, 신선, 육류만 찾아오는 사원으로 나뉘었다. 배송 직전 단계에서 고객의 주문번호에 맞춰 각각의 배달 봉투에 물품을 나눠 넣게 되면서 이들의 일도 정해진 시간을 맞추는 일과 빠르게 매장 내 제품을 찾아오는 스킬이 요구되었다. 내가 초반 마트에 근무하며 기록한 걸음 수는 1만 5천에서 2만 보 내외였다. 그러나 온라인몰 사원의 경우에는 같은 근무시간에 평균 3만보를 걸었다.
온라인 몰의 이용객이 늘면서 작년부터 올 3월까지는 스태프 채용이 활발했다. 구인구직 사이트에 자주로 올라오는 공고에, 이 일이 어떤 일인지 묻는 구직자들이 많았다.
- 온라인 몰 근무는 어떤가요?
- 7시간 동안 장 본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7시간의 워라밸과 8시 출근 4시 퇴근이라는 장점으로, pp센터에 지원한 청년들이 마트에 등장했다. 그들은 스마트폰을 스포츠용 팔목 스트랩에 장착하고 일반 카트보다 1.5배 큰 카트를 끌고 마트를 누볐다.
그들은 오랫동안 변화가 없었던 마트에 등장한 신인류였다. 마트에 진열과 보충을 하는 사원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출현이 그리 반갑지 않았다. 매장 영업을 위해 오와 열을 맞춰 진열해둔 제품을 하나씩 쏙쏙 빼가는 온라인몰 직원들과 충돌하는 부서도 있었다. 진열사원은 매장이 아닌 후방 창고에서 물건을 픽업하기를 바랐고, 온라인몰 직원은 후방창고에서 개별 제품을 하나하나 찾을 시간이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온라인몰의 매출이 점포의 매출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계열사 분리로 인해서 온라인 몰에서 아무리 많이 팔아도 점포의 매출이 오르지 않는다. 2개월마다 한 번씩 지급되는 점포 상여금도 온라인 몰과 점포는 그 금액이 다르다. 예년에 비해 폭발적 성장을 이룬 온라인몰의 경우에는 점포 상여금이 상승했지만, 역으로 매장의 경우에는 작년 대비 판매액이 줄었기에 점포 상여금의 수준은 5-6만 원 정도로 책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온라인몰의 판매량 증가로 입점되는 제품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했다. 계열사 간의 영업전략에서 쥐어짜지는 건 매장 근무 사원이었다. 5월 말에 통장에 찍힌 62000원이 무엇인가 싶었는데, 그건 상반기 점포 상여금이었다. 작년에 비해 1/10이 줄어든 금액이라고 Y가 귀띔했다. 기뻐야 할지 슬퍼야 할지. 우리의 라이벌은 우리 점포 내의 pp센터였다. 아이러니했다.
영원한 유통업계의 공룡 같은 대형마트를 흔드는 3가지는
1인 가구의 등장-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지향하는 1인 가구는 가성비의 마트템보다 실용성, 브랜드 지향성 등 가치소비에 더 비중을 둔다.
소셜커머스의 등장- 소비방식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백화점과 대형마트를 찾는 손님이 줄었고 확진자 발생 시 임시 휴업과 방역, 점포 재정비로 인한 영업손실이 발생한다.
내가 대형마트에 일하게 된 바로 그 시점에 유통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었다.
**PP센터는 오프라인 매장 일부 공간을 개조해 온라인으로 주문된 상품을 한 곳에 모으고(Picking), 포장(Packing) 등의 작업을 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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