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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Oct 28. 2022

여행보다 출근을 선택하는 이유

내년 2월에는 뉴욕에 갈 거야. 10년간 모은 항공 마일리지면 뉴욕까지 왕복 항공권이 가능하다니까?!


10년간 룸메이트이자 법적 대리인인 호호님은 벌써부터 뉴욕에 갈 생각으로 들떠있다. 나는 어쩐지 뉴욕에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 

나는 2월에도 마트 출근하고 싶은데.” 


이건 농담이 아니었다. 내년에도 꾸준히, 변함없이 마트에 출근하고 싶었다. 




3년 전, 남편의 일본 지사 파견으로 일본행을 결정해야 할 때가 있었다. 


일본에 함께 가느냐, 한국에 남느냐.


일본행이 썩 내키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지금 만들어져 있는 일상의 평온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의 일상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절대 싫어. 유치원도, 배달도, 육아 동무도 없는 일본에 절대 안 갈 거야. 하던 내 마음이 떠오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여름 일본에서 살았고, 가지 않겠단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고베를 관통하는 모든 열차를 타고선 매일같이 나다녔다. 8월의 뜨거운 간사이의 태양 아래서 우리는 치열한 여름을 보냈다. 


내 행복의 일부분은 잘 짜인 일상에 기대어 있었다.


10년간 소속 없이, 보수 없이, 평가 없이 살아온 이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보다는 매일 나서는 출근길이 더 여행처럼 느껴지는 법이다. 직장생활 지겨워, 일하는 거 너무 싫어라는 직장인들의 푸념도 내게는 닿아본 적 없는 미지의 차원의 것이었다. 매일 벽돌 하나하나를 쌓아가는 이 새로운 일상이 내게는 10년 만에 떠난 여행이다. 


나는 내일도 마트에 출근하고 싶고, 내년 2월에도 여기에 있고 싶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이 소박한 바람도 이루기 쉽지 않음을 깨달아 갔다. 


- 1팀에 Y가 2팀으로 왔잖아. 3월부터 빈자리가 아직 그대로 비어있대.

- 어쩌면 다음 발령 땐 네가 1팀으로 갈 수도 있겠다.


여사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여사들은 어쩌면 턱밑까지 찾아온 구조조정을 아직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연이은 마이너스 성장에 회사는 가장 쉬운 칼을 빼들었다. 인력절감은 영업이익을 가져다준다. 


이 점포의 태생을 같이 했던 오픈 멤버들의 정년퇴직이 시작되었다. 빈자리는 임시직인 pt로 대체하면서 인건비를 줄여나갔다. 전체 근무 인원은 대폭 줄여가면서 최소한의 인력만으로 매장을 운영했다. 예전 마트에는 부서마다 근무자들이 한 명씩 상주했다. 요즘은 물류가 들어오는 시간이 아니면, 마트 내 상주 직원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들은 이제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한다. 


사내 채용으로 인력을 우선 충원하던 이곳에서 상시 열리던 정규직 전환 기회도 점차 줄어갔고,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점포 축소 따른 직원들이 우수수 권역 내 타 점포로 발령이 났다. 직원들이 나눌 수 있는 파이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코스트코 형태의 소품종 대량 판매를 타겟팅한 창고형 물류가 대세가 되면서 기본 소매점 타입의 대형마트는 점차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다. 정규직이나 진급은 신규 점포 출점이 있을 경우 비정기적으로 열렸는데, 그마저도 전국에서 모여드는 지원자들 사이에서 경쟁이 치열해진 지 오래다. 나처럼 들어온 6개월짜리 단기 pt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는 것이 정규직 전환이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매일 출근을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6개월 뒤, 1년 뒤에 여기 내 자리는 없을 것이라는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나는 이 마트의 떳떳한 사원이 되었다가도, 누군가 요즘 일하세요라고 묻는 말에는 네, 마트에서 일해요라고 답하지 못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마트는 누구나 일할 수 있는 곳이며 아무런 자격도 필요치 않는 곳이라 그간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이 무의미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열심히 살더니 마트 직원이 되었대 라는 말에서 뜻 모를 수치심이 일어난다. 그렇지만 나는 작고 소중한 내 자리가 있고, 이름이 올라간 스케줄 표가 있고, 매 끼니마다 점심식사가 나오며 편안한 휴게 공간이 있는 이곳이 너무 소중하다. 


징그럽게 많은 물건들이 있는 곳. 악의가 없는 사람들의 성가심이 있는 곳. 자연광보다 환한 LED조명이 비추는 곳. 모두가 지갑을 여는 곳.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골라보라고 다그치는 곳. 돈을 안 내고 물건을 가져가는 곳.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곳. 갑질이 태어난 곳. 3850원의 식사가 나오는 곳. 쉴 때는 모두가 스마트폰만 보는 곳. 탑차가 끊이지 않고 들어오는 곳. 화면에서 광고만 나오는 곳. 상상력이 부족한 곳. 월급이 나오는 곳. 1시간이 1만 원이 되는 곳. 


저는 오늘도 마트에서 진열을 하고 있습니다.



Title Photo by Jorge Vascone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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