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일하는 마트지만, 단 한 사람으로 인해서 직장은 지옥이 될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출근이 두려워졌다.
나란 인력은 정직원의 휴무 대체를 위해 존재했다. 월화를 쉬는 문구S 사원을 대체해 근무하고, 수목 개인 휴무 후 금토일은 완구팀 보조 인력으로 일했다.
진열사원이 맡는 매장 영업의 일은 창고에 적재되어 있는 많은 물건들을 최대한 진열해서 많이 파는 것이다. 새로 들어온 물건이 방치되어 계속해 창고에 머무르지 않게, 근무 직원들은 박스를 열고 보충 진열을 하고, 신상품은 자리를 만들어 진열하면서 고객의 눈에 잘 띄게 하기 위한 퍼포먼스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월화 휴무를 마치고 돌아온 문구 담당자 S였다.
-작업 카트 끌고 나가지 마세요. 안쪽에 넣어 놓은 거 끌고 나갔죠? 그건 끌고 나가는 거 아니에요
-비어있는 훅 빼지 마세요. 빈 채로 그냥 놔두세요, 매 번 빼놓으니까 내가 또다시 걸어야 하잖아요.
-입점 체크 안 하죠? 월화 입점 체크를 안 하고 진열해서 뭐가 안 들어왔는지를 내가 확인을 못하잖아요. 그쪽이 입점을 체크 안 하니까 매장 가서 일일이 다 확인하는 거 알아요 몰라요
-집기 빼놓은 거 건들지 말고 그대로 두세요. 다 쓸려고 챙겨 놓은 건데 그걸 치우셨더라고요
pt인 나는 사내 업무용 애플리케이션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제한적이다. 매장에 근무하는 정직원들과 접근권한 자체가 달랐다. 가장 기본으로 보는 입점표(오늘 매장으로 배송되는 물품 리스트)를 볼 수 없고, 재고 조정권한도 없다.
본사에서 진열 pt에게 부여한 업무는 오로지 진열, 하나다.
나도 입점표를 뽑고, 대출 대입 상품(본사 지시에 따라 다른 점포에서 보내주는 소량의 품목들/우리 점포에서 보내기도 한다) 확인도 하고, 현장에 없는 재고는 바로 0으로 떨구는 재고 조정도 하고 싶다. 그런데 그건 내 소관이 아니라 한다. S는 나에게 계속해 업무지시를 내렸다.
그렇게 예고 없이 집중포화를 날리고 가는 S의 뒷모습은 홀가분해 보였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매주 월화수목이 지나고 금요일의 시작은 항상 그녀의 융단폭격이었다. 맞은데 또 맞으니 나도 아팠다. 그녀는 나를 동네북처럼 두드렸다. S를 마주칠 일이 없는 월화수목은 고요하게 지나갔지만, S와 내가 동시 출근하는 금요일이면 근무시간이 다가올수록 심박이 빨리 뛰고 몸이 떨렸다. 신체적 이상은 몇 주에 걸쳐 나타났다. 식욕이 사라지며 몸무게가 3kg 이상 급격히 빠지고, 퇴근 후 침대에 누워도 좀처럼 잠들기 어려웠다. 문구와 같은 코너를 쓰는 책 언니(출판사 소속 상주직원)가 요새는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하고 물었는데,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눈물이 났다.
‘회사 때문에 아픈지도 모르고 일하는 당신’
의무휴업일 날 들른 작은 책방에서 보게 된 책. 나에게 건네는 말처럼 다정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보리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것도 산재예요?>를 집어 들었다.
직업 요인으로 발생하거나 악화되는 정신 질환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불안증들이 있어요. 직장에서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는 일을 겪었거나, 스트레스가 높은 일을 맡아하다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다가, 이런 질환에 걸리면 직업병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정신질환에 오래도록 시달리다가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면 이러한 자살도 직업병으로 인정됩니다. p30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 조건 가운데 ‘이것만은 어기지 말아야 한다’는 최저선입니다.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면 안 된다는 것부터, 안전과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적정한 환경을 유지해야 한다고 정해 놓았어요. 작든 크든 기업을 운영하려면, 노동자의 인권도 지켜야 한다는 상식이 필수겠죠. p31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같은 일들로 스트레스를 받고 정신과 진단을 받으면 직업병을 인정받기도 합니다. 혹시 주변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 일기나 사진, 진단서 같은 자료를 챙기라고 말해 주세요. p49
- <이것도 산재예요?>
S의 휴무 대체로 근무를 하게 되면서 인수인계 없이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고(우리가 같이 업무를 하는 요일은 없다. 나는 월화 문구 대체를 하고 수목을 쉬고 금토일은 주말에 높은 매출을 기록하는 완구팀에 배정되었다), 업무연락망이라고 존재하는 노트에는 단 한 번도 전달사항이 기록된 적이 없었다. 내 가슴속에는 화병처럼 답답하고 억울한 감정이 응어리져 쌓여갔다.
16년째 이 점포에서 근무 중인 S는 2팀 내에서도 담당 pc를 세 번이나 옮길 만큼 강한 화법과 고유한 개성으로 이름이 나 있는 팀원이었다.(“S는 독특해서 누구 하고도 같이 일을 못해.” 생활팀에서 올라온 Y가 내게 지나가듯 건 낸 말이 떠올랐다) 처음 pt로 들어와 2팀 사람들에게 인사했을 때(“완구 문구 보조 스텝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들이 짓던 미묘한 표정은 바로 S와 같이 일하러 온 내가 과연 며칠이나 버틸까 하는 의미였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가장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를 검색했다. 나는 내 상태에 대한 전문의의 소견이 필요했다. 내가 과민한 건지 보통 사람들도 같은 상황에서 이만한 역치를 가지는지 알고 싶었다. 1주일 뒤 내원 한 정신건강의학과에는 나만큼이나 평범한 모습의 사람들이 소파 끝 귀퉁이마다 앉아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신입이 처하는 곤경은 신입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아무도 나서 주지 않는다. S에 대한 평판은 이미 모르는 이가 없었지만, 그녀를 맞서는 건 결국 나 혼자만의 몫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흐트러진 일상의 리듬을 다시금 찾기 위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고, 공식적으로는 담당-AM으로 이어지는 면담을 요청하기로 했다.
S와 함께 일했던 많은 직원들이 회사를 떠났다고도 했다. 그 12번째는 내가 되는 것 아니냐고 걱정스러운 안부를 전하는 팀원 K를 보면서 싱긋 미소를 지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직장 내 괴롭힘, 기간제 계약직에 대한 정규직 사원의 갑질, 사내 신문고와 고충 처리 위원회 같은 단어들이 뒤죽박죽 섞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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