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장 평판과 뒷담화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에서 이슬아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이엔 늘 오해가 있고 앞으로도 그럴 테죠. 서로를 모르니까요. 오해는 흔하고 이해는 희귀하니까요.”
학교 다닐 때 엄청 울었던 기억은 대부분 나를 오해한 친구들을 향한 눈물이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어른이 되면 그런 일로 눈물 흘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다. 직장은 오해가 넘쳐나는 곳이었다.
소문은 정말 빠르다. 평판조회를 피해 갈 수 없다. 평판이 하나도 필요 없을 것 같은 이곳에서 평판 관리는 소중하다. 한 번 일 안 하는 사원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거의 벗어날 수 없다.
나와 Y는 완구팀의 신입이나 마찬가지였다. 생활팀에서 19년을 일한 Y는 첫 만남에 나를 이끌고 마트 내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서 그녀는 나를 신뢰하는 건지 어떤 건지 우리가 함께 일하게 될 3명의 사원에 대해 간단하게 브리핑했다.
작년에 완구팀이 와해되면서 S가 문구로 분리돼 나오고 나머지 한 명은 피혁잡화로 1층으로 내려가고, G만이 완구팀에 남게 됐잖아. S는 성격이 독특해서 누구랑 같이 일을 하기 힘들어.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 1층에 가방에 있을 때도 유명했지.
K는 스포츠, 문구, 완구 다 일했었는데, 완구팀에 문제가 터져서 결국 스포츠에서 완구로 왔지. K는 혼자서 일을 못 쳐 내. K가 근무했던 pc들은 담당들이 꽤 고생했었지.
1월에 들어온 대학생 pt가 힘들었는지 3주 만에 관두는 바람에 G, K 둘이서 하고 있긴 한데 보다시피 매장이 엉망이야. 둘이서 어떻게 그 많은 물량을 다 쳐. 그래서 내가 2팀으로 인사이동된 거잖아.
모든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사정이 있다.
스케줄 근무이면서 3명의 팀원들이 격일로 돌아가며 휴무에 들어가기에 나는 매번 달라지는 근무조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을 안 한다고 소문난 (K는 주원이다) 주원은 착하다. 누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고의로 일을 남겨 놓는다던지, 자기가 놓친 업무를 다른 사람한테 뒤집어 씌우지 않는다. 솔직하게 인정하고 말한다. 다음번에는 잘하겠다고 군더더기 없이 답한다. 여사님들이 쟤는 좀. 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MZ세대 스타일이 남들한테 피해 주지 않으면서 자기 할 일을 하고 눈치 보지 않고 쉬는 것이라고, 꼰대력을 내려놓으면 그녀의 장점이 더 보일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모두가 주원을 폄하하지만, 나는 주원과 일하는 게 가장 좋다. 대부분 엄마뻘의 여사님들 사이에서 유일한 또래 주원과의 대화에는 순수한 즐거움이 있다.
(S는 혜정이다) 혜정은 모두가 쉬쉬하는 트러블 메이커인데, 겉으로는 보기에는 매우 원만하고 쿨하다. 지나가는 이들 중 언니가 아닌 이가 없다. 검품장에서도, 휴게소에서도, 락커에서도 매우 정상적인 팀원이지만, 다들 같이 일하길 꺼리는 대단한 고인물의 문제 사원이다. 나는 혜정과 일하며 그녀에 대한 거부감과 분노가 산처럼 쌓여 갔는데, AM의 입에서 <문제 사원인 거죠.>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 분노가 사그라들었다. 그렇죠, 그녀는 문제사원이지요? 하는 무언의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받은 마냥, 그녀가 문제사원임을 보장받은 게 마치 내게 내려진 보상처럼, 그녀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을 소화시켰다. 그래서 그냥 벽을 보는 듯 그녀를 보고 지나치는 게 가능해졌다.
(G는 경순이다) 처음 내게 일을 가르쳐준 경순은 1년 전 수도권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하며 전배 왔다. 나긋나긋한 표준어를 쓰는 경순의 리드미컬한 음성은 같이 일하는 사람의 텐션도 올리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장점은 협력업체 직원들과의 소통에서 빛을 발한다.(자연스레 협력업체 직원들이 일하게 만든다) 딸뻘인 나에게도 존칭을 꼬박꼬박 쓰면서 자신의 업무 방식을 전수해주었다. 이런 경순에 가슴속에는 의외로 가시가 많다. 누구는 이래서 안 좋고 누구는 이래서 문제다 라는 가치 판단이 늘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없는 동안 내게 내려질 평가들에 때로는 좀 걱정이 된다. 그게 근로 의욕을 약간씩 꺾어 버린다. 처음 만나서 일하는 방식을 알려주던 딱 그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S는 영숙이다) 내가 근무를 시작한 것과 동시에 생활팀에서 문화팀으로 발령받아온 영숙은 자기 주도적이며, 진취적이다. 이 점포 오픈 멤버이며, 그녀가 뿜어내는 긍정적인 기운이 팀원의 사기를 북돋는 역할을 한다. 첫인사에 자신의 경력과 함께, 본인 의사로 부서 변동을 하게 된 거라고 단박에 말하는 태도에서 높고 강한 자존감을 느꼈다. 기존 근무자의 인수인계 없이 바로 매장 근무를 하게 되었지만, 늘 해오던 방식을 조금씩 변형시켜가며 업무에 적응해 나가는 모습은 마트를 종횡무진하는 잔다르크 같았다. 같이 일하면 시간은 잘 가지만, 몸은 고된 것은 사실이다. 힘껏 일해야 한다.
네 명의 팀원과 호흡을 맞추고 있지만 같이 일하기 가장 좋은 타입은 주원이다. 나는 그녀의 일하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일할 때 일하고, 일이 끝나면 후방으로 물러간다. 그리고 쉰다. 마트가 문을 여는 한 물건을 담은 박스는 끝이 없다. 물건을 사러 오는 고객이 있는 한 그와 맞물린 발주라는 물레방아는 계속해서 돌아가고, 상품 박스는 계속해서 들어올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풀어야 한다. 오늘 다 풀어도, 내일 또 들어오고, 내일 다 풀어도, 모레 또 들어온다. 그 박스를 헤쳐 없애겠다는 마음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일터가 사랑스럽게 보일 것이다.
나는 2팀 사람들이 가진 주원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주원이 말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도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
(.....!!) (할 말 잃음)
그런데 상관없어요. 어차피 나도 그분에 대해서 잘 모르고, 그분도 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여기 일이 그렇잖아요. 일이 많은 pc를 다른 사람들이 나서서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각자 일 하는 건데. 그냥 저는 제 일만 해요.
오해를 푸는 것을 해명(解明)이라고 한다. 나는 늘 해명을 위해 애를 썼다. 상대방이 가진 선입견이 폐기 처분되지 않는 이상은 그 오해라는 건 참 쉽게 풀리지 않았다. 주원은 나를 보며 감정 없는 어조로 계속해 말을 이어갔다. 오해를 그냥 둬도 상관없다고. 우리는 여기에 돈을 벌러 온 거고. 앞에 놓인 일을 하면 되는 거라고. 그거면 충분하다고. 그 밖에 쏟을 에너지가 너는 남은 거냐고.
의도 없는 주원의 눈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평판이 늘 입방아처럼 오르내리는 이곳에서 살아남는 그녀의 비기는 대단히 유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