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배낭여행을 한다는 건 세련된 것과 거리가 먼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투박한 호스텔 도미토리에 묵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게 오히려 낭만이 되는 거다.
나는 배낭여행자라는 신분에서 누릴 수 있는 건 뭐든 누리고 싶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은 많지만 20대 배낭여행자로서 느낄 수 있는 건 이때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10년이 가까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반박할 수 없다. 아무리 청년 나이가 30대 후반으로 늘어났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게다가 워낙 꼼꼼한 성격이 아닌지라 여행 중 숙소는 지금 머무는 숙소를 떠나기 바로 직전에 세 군데 정도만 인터넷으로 봐 두었다가 도착하면 하나씩 직접 찾아가 문을 두드리는 식으로 골랐다. 내가 찾는 숙소는 주로 4 beds나 6 beds의 도미토리여서 잘 곳이 없어 전전긍긍하며 떠돌아야 하는 난감한 상황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휴양을 하러 온 것이 아니니 숙소의 퀄리티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지어진 지 수십 년은 된 것처럼 우중충하고 화장실이 노후되었다고 해도 저렴하고 아침식사가 포함되어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물론 자고 일어나니 다리에 베드 버그에 물린 자국이 잔뜩 있었다는 곳은 피하겠지만.
가장 걱정되었던 것이 과연 여러 사람이 뒤섞여 지내는 도미토리에서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거였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나와 같은 사람은 친구를 사귀기 힘들 거라 생각했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과 한 방을 쓰며 오래된 친구처럼 하하호호 밤늦도록 수다를 떨고, 다음날 일어나 오늘 하루도 힘내자며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치는 그런 류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낭여행은 그런 외향적인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나는 고독한 여행을 할 거라 생각했고 그래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도미토리는 시끌벅적하거나 북적거리기보다는 늘 평온하고 안락했다. 고단한 여정을 마무리한 지친 여행자들은 도미토리에 조용히 들어와 깊은 잠에 빠지거나 각자의 방식으로 여행을 정리했다. 물론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공유 공간에 나가면 활기가 넘치고 즐거운 대화가 오갔지만 말이다.
그리고 의외로 어느 호스텔이든 홀로 외롭게 지낸 시간보다는 새로운 친구들에 둘러싸여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먼저 다가와준 적극적인 친구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아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말을 섞게 되었다. "지금 광장으로 갈 건데 같이 갈래?", "추천받은 식당이 있는데 같이 점심 먹을래?" 이런 식이다. 고독한 여행을 즐길 거라던 나의 생각은 아주 오만했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꼽자면 '혼자'여서가 아닐까? 만약 일행과 함께 여행을 했더라면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반대로 내가 다가갈 이유 역시 없었을지도 모른다. 혼자였기에 상대 쪽이 혼자든 여럿이든 나에게 쉽게 말을 걸어왔고 나 역시 반갑게 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한눈에 보기에도 위협적이지 않고 공격성이 전혀 없어 보이기에 나와 엮인다고 해서 위험한 일은 생기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을 테다.
남미에 홀로 덩그러니 있는 나를 보며 현지인들은 걱정스러운 마음을 여과 없이 드러냈고 같은 입장의 여행자들 역시 젊은 여성이 혼자 여행한다는 것 자체에 무척이나 신기해했다. 혼자라는 것만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저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거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단순히 혼자 있는 게 안쓰러워서 다가왔을 수도 있겠지만.
산전수전을 다 겪은 여행 후반이 돼서야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다가갈 수 있었다. 정들었던 사람들과 기약 없는 이별을 하고 10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새로운 장소에 도착하면 그 외로움은 어마어마하게 증폭된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러면 누군가 옆에 있어주길 바라게 되고 결국 용기를 낼 수밖에 없다.
'나는 혼자 이곳에 왔고 당신 (혹은 당신들)과 함께 소중한 시간을 나누고 싶어요'라는 것을 은연중에 엄청나게 어필하면서 말이다. 어쩜 그토록 적극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직진할 수 있었던 건 내 나름대로의 확신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와 같은 여행자라면, 그것도 남미까지 온 사람이라면 아주 중요한 부분을 공유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 그 중요한 무언가를 지금이 아니면, 이 사람이 아니면 나누기 힘들 것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던게 분명하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그 직감은 딱맞아떨어졌다.
홀로 남미 여행의 길고 쓸쓸한 시간을 버텼다면 어땠을까? 가득 차고 흘러넘치는 혼자만의 시간을 겨우 채우고 나면 나머지 빈 공간은 어쩔 도리 없이 공허해졌을 테다. 그랬더라면 내 여행이 이토록 기억에 남을 리 없다.
그들과 함께 나눴던 중요한 무언가가 정확히 무엇인지 언어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도 혼자였기에,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남겨뒀기에, 그 공간이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것들로 가득 채워질 수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