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금옥이의 공부방은 우리가 주로 머무는 아지트이다.
공부방은 아주머니가 어릴 적 꿈꿨던 서재를 똑같이 재현했다고 한다.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 한쪽 팔 넓이의 액자에 들어가 방 한가운데를 차지했고, 책장과 탁자 그리고 조명까지 모두 그 그림을 중심으로 고르고 배치한 듯 조화롭고 고요했다. 금옥이는 혼자서는 아지트에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했다. 들어가는 순간 갑갑해지고 책을 펼치기만 해도 잠이 꾸벅꾸벅 온다며 입을 삐죽거렸다. 무엇보다 자신이 원해서 만든 공부방도 아니고 순전히 엄마의 욕심이라나 뭐라나. 그래서인지 아주머니는 내가 오는 걸 좋아했고 우리가 아지트에 들어가 있으면 굳이 공부하지 않더라도 따뜻한 차와 다과 세트를 정성스레 차려주셨다.
처음 금옥이네를 방문했을 때 아주머니를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20대라고 해도 믿을 만큼 호리호리한 몸에 긴 생머리에 TV에 나올법한 모델처럼 무척 아름다우셨다. 내가 놀란 것에는 이런 아주머니의 뛰어난 미모뿐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금옥이가 자신의 엄마와 단 한 군데도 닮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금옥이는 키가 150cm이 조금 안될 정도로 작았고, 얼굴에는 살이 포동포동 올라 동그랬다. 우리 엄마는 그런 금옥이가 복스럽게 생겼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때 짓궂은 남자아이들 몇 명이 금옥이를 햄버거라고 놀리곤 했는데 그에 맞서 싸우는 쪽은 늘 금옥이가 아니라 나였다. 금옥이는 언제나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릴 뿐이다. 아주머니는 온화한 표정에 부드러운 표현을 쓰셨지만, 금옥이에겐 가끔 쌀쌀맞은 표정을 보이셨다. 그런 탓에 금옥이가 이렇게 멋진 공부방을 가지고 있어도 어깨를 펴지 못하는 건 아닐까.
금옥이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가 무척이나 좋았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베스트 프렌드로 남을 거라고도 덧붙였다. 나는 그 아이가 어디서 그런 확신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듣고 기분이 나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몹시 수줍어하면서도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나에게 전해주는 금옥이가 고마웠다.
올해 우리는 초등학교 4학년 이후로 4년만인 중학교 2학년이 돼서야 같은 반이 되었다. 그 소식을 접하고는 손을 잡고 방방 뛰었던 기억이 난다. 아 물론 담임선생님이 까칠하기로 소문난 국어 담당 박민정 선생님이라는 걸 알고선 둘 다 망연자실했지만 말이다.
드르륵 -
탁.
“반갑다 얘들아. 선생님 이름은 알 거고, 선배들한테 선생님 이야기는 충분히 들었었지? 한 해 동안 잘 지내보자. 내 교실에서는 1년간 특별한 문제가 안 생겨야 할 거야. 모두 언행 조심하도록. 아, 그리고 우리 반 성적은 못 해도 3등 안에는 들어야 한다. 알지?”
선생님의 공표에 반 친구들은 땡이라고 말해야 움직일 것처럼 얼었다. 괜히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바싹 긴장이 되었다.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고 있는데 순간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선생님은 씩 미소 지었다.
“수희가 우리 반이라 다행이야. 수희가 우선 임시반장을 맡도록 해. 일어나서 인사.”
담임선생님은 소위 전교권에서 노는 나를 포함한 몇 명의 친구들에게 노골적으로 관심을 가졌다. 대놓고 다른 반 친구들을 차별한 건 아니다. 그저 우리에게 더 많이 질문했고, 우리를 더 많이 찾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특별대우를 한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괜히 다른 친구들에게 미안해졌지만, 우쭐한 마음이 한구석에 자리 잡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임시반장이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반장이 되었다. 담임선생님의 요구사항이 하나 더 늘어 수업시간에 다른 반보다 면학 분위기가 잘 유지되어야 한다며 반장인 내가 더욱 신경 써야 한다고 하셨다. 다른 교과 선생님을 통해 우리 반 수업 분위기가 엉망이라는 소리를 절대 듣고 싶지 않다고 덧붙이시면서 말이다.
그로 인해 의도치 않게 악역을 맡게 되었다. 소란해지는 수업시간이 있으면 “얘들아 집중하자”, “얘들아 선생님께서 말씀하시잖아”와 같은 말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다. 그로 인해 뒤에서 내 흉을 보는 친구들도 하나둘씩 생겼다. 그건 무척 진이 빠지는 일이다. 금옥이는 나의 고충을 잘 들어주며 위로해 주었지만, 종종 “그래도 담임이 너 많이 좋아하잖아”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내 마음이 무너져 내리게 된 그 날은 어떤 이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만약 누군가 개인적으로 다가와 물었다면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건 학교에서 공개적으로, 반 친구들 앞에서 이루어졌기에 결코 가벼울 수 없었다.
“이번 자치시간에는 부모님 직업조사 할 거거든 해당하는 거에 손들어”
담임선생님은 안경을 쓱 올리며 우리를 둘러보았다. 이 질문이 가족 수를 묻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느끼는 아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 아주 깊숙한 곳에서는 비상벨이 삐용삐용 - 무섭게 울린다. 얼굴에도 그 떨림이 느껴졌다.
“음… 여기 아버지가 A 중공업 다니는 사람 손들어봐.”
선생님은 눈으로 하나, 둘, 셋 아이들의 수를 셌다. 반에서 1/3 정도 아이들이 손을 높이 들었다.
“그럼 아버지가 S 제철소 다니는 사람 손.”
몇몇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아버지가 자영업 그러니까 식당이나 가게 운영하시는 사람?”
몇 번의 질문 끝에 나와 금옥이만 남았다.
“금옥이 아버지는 뭐 하시는데 손을 안 들었어?”
“저…. 아버지 국회의원이세요.”
순간 담임선생님 눈이 반짝였다. 아이들도 ‘우와-’하는 탄성을 보냈다.
“그으래?”
그러고 나서 선생님은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수희야 앞으로 나와서 써”
그게 선생님에게 특별한 학생에 대한 특별한 배려였다. 나는 손이 떨렸지만, 티가 나지 않도록 볼펜으로 꾹꾹 눌러썼다. 그래도 금옥이 다음으로 말하지 않아 안도감이 들었다.
직업조사 이후 금옥이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아빠 이름이 뭐냐는 질문부터 대통령을 만나봤냐는 질문까지 다양했다. 금옥이 아빠의 이름은 절대 말할 수 없다고 했으나 수줍은 표정으로 “대통령은 딱 한 번 봤어.”라고 했다. 그 한마디에 “짱이다!” 아이들의 환호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한 주 동안 금옥이의 아버지 직업은 핫이슈였지만 그다음 주가 되고선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국회의원 아버지와 비교하면 금옥이는 하나도 특별한 부분이 없었으니까. 공부를 잘하는 편도 아니었고(오히려 못하는 쪽에 가까웠다) 말주변이 좋지 않아 아이들과 이야기를 할 때 적당할 말로 받아치지 못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과시하거나 그것으로 친구들의 환심을 사려 하지 않았기에 금옥이와 친해져서 콩고물을 얻으려 했던 얍삽 빠른 여자아이들도 시시해졌는지 쉽게 물러섰다. 아무도 이전처럼 금옥이를 은근히 무시하지는 못했지만.
아버지의 직업조사가 있고 나서 반 아이 중 그 누구도 나에게 ‘왜 담임이 너만 아버지 직업을 따로 쓰라고 했니?’라고 물어보지 않았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다. 나를 불쌍하게 보는 걸까? 금옥이 역시 그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처음 느껴보는 패배자가 된 기분에 더욱 공부에 매진해야 할 것만 같았다. 금옥이에게는 이번 시험 기간은 아지트보다는 집에서 집중해서 공부하겠노라 말했다. 금옥이는 조금은 서운해 보였으나 굳이 나를 붙잡진 않았다.
우리는 언제나처럼 등하교를 같이하고,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마다 서로를 찾았으나 아지트는 잘 가지 않았다. 사실 오히려 아지트에서 공부하는 편이 집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부주의한 연년생 여동생과 같은 방을 쓰는 데다, 벽이 얇은 터라 가족들이 내는 여러 소음으로 공부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귀마개가 소용없어질 때면 독서실에 갈지 잠깐 고민해보기도 하지만 독서실은 너무 어둡고 쿰쿰한 냄새가 나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럴 때면 더욱 아지트가 그리워지고 나도 모르게 서서히 상상 속에 빠져든다. 나는 아지트에서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영어 독해 지문을 풀다가, 지루해질 때면 <작은 아씨들>과 같은 영미 고전 문학을 읽는다. 그리고 과외 시간이 오면 아주머니가 정성스레 준비한 다과를 먹으며 선생님과 수업을 한다.
우리가 아지트에서 계속 놀기만 하며 시간을 보낸 건 아니다. 중학생이 되면서 매주 목요일 두 시간씩 수학 과외도 함께 했다. 과외선생님은 엄마와 친한 아주머니의 막냇동생이신데 서울에 있는 유명한 패션 잡지사에 취직해서 몇 년을 다니다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고 수능을 다시 봐 고향인 이곳 교대에 입학하여 지금은 졸업반이시다. 서울의 대기업에서 일하던 시절 선생님의 도회적인 모습은 지금과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다. 맨얼굴에 살짝 헝클어지게 머리를 묶고 두꺼운 안경을 쓴 모습이 내가 아는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우리 둘이 늘 함께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우리의 우정이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되었으면 좋다고 종종 말씀하셨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입을 모아 “당연하죠!”라고 말했다. 그때 선생님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던 것 같다. 왜 갑자기 이 일이 떠올랐을까?
딱 한 주 동안 아지트에 가지 않았을 뿐인데 왠지 아지트가 낯설게 느껴졌다. 액자 테두리가 원래 금색이었나? 은색이었던 것 같은데 이상하다.
수학 문제를 푸는데 심화 문제에 들어서자 금옥이가 더는 풀어내지 못하고 쩔쩔맨다. 과외 선생님은 나에게 계속 풀라고 하시고는 금옥이에게 어디서부터 막히는지 물어봤다. 금옥이는 선생님의 설명에도 연거푸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왠지 모르게 안도감이 들었다. “샘…. 아직도 이해가 잘 안 되는데….” 고개를 든 금옥이와 눈이 마주쳤다. 금옥이는 민망한 듯 웃어 보였지만 나의 내밀한 마음이 들킨 것만 같아 급히 고개를 숙이고 문제를 마저 풀었다.
“얘들아 이번 단원 들어가면서 좀 어려워졌지? 그래도 생각보다 잘하고 있으니 너무 기죽지 말고. 매일 풀면서 감 익혀야 해. 알겠지? 아, 그리고 금옥아 영어랑 국어 문제집 목록 여기 뽑았으니까 이대로 사서 내일 수업에 가져와.”
선생님은 먼저 아지트를 나가셨다. 문이 닫히자 금옥이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아, 미안 수희야…. 말하려고 했는데 계속 깜빡했네. 엄마가 내 성적으로 괜찮은 인문계 가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과외선생님께 영어랑 국어도 부탁하셨어. 시험 기간엔 전 과목 봐주시기로 하셨고. 이제 꼼짝없이 아지트에서 공부만 하게 생겼어.”
이상하게도 그 말이 아버지의 직업을 조사했을 때보다 더욱 가슴을 크게 울렁거리게 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금옥이의 성적은 중간 정도에서 더 오르지 않았고, 나는 교과우수상을 받으며 졸업을 했다.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서는 수학 과외 대신 종합학원으로 옮겼다. 그러면서 아지트로 가는 발길이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 그 무렵 아지트를 상상하는 것은 절대 즐겁지 않았고 오히려 괴로웠다. 금옥이와 복도에 마주치면 인사만 할 뿐 더 길게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했다. 우리의 변화는 아주 자연스러웠다고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