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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당근 May 19. 2024

서울의 의미

아직 방황 중이지만...!


 학원 쪽지시험이나 모의고사 점수는 늘 좋았다. 이 점수라면 어느 지역을 써도 붙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노량진의 대형 강의실을 빽빽이 채우는 것도 모자라 모니터로 송출되는 강의실에 있는 수많은 학생들을 모두 통틀어서 ‘2등’이라는 숫자를 눈으로 확인했을 때 “분명히 합격이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글을 읽은 누군가는 나를 거만한 사람이라고 평할지도 모르겠지만 (‘자자 여러분 진정해 주세요’) 임용을 준비할 때 나는 서른이었다. 지금에야 서른은 아직 어리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당시에 나는 이 나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에서의 한 자리가 간절했다.

 물론 ‘그게 어떤 거라도 무조건 좋아!’, ‘뭐든 그럴듯한 자리여야 해’는 아니었다. 상담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기 위해 교육대학원에서 2년 반을 보냈고, 마지막 학기는 매 주말 하루 종일 노량진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천 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한 겨울 추위도 쪼그라들 것 같은 무더위도  버텨냈다.


 새벽에 일어나 택시로 남춘천역으로 향한다. 일찍 도착해야 맨 앞쪽 자리를 사수할 수 있고, 붕 뜨는 시간 없이 순공시간(순수 공부 시간)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 유일하게 택시비를 아까워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ITX청춘 열차에 올랐다가 다시 노량진으로 향하는 지하철로 갈아탄다.

 너울거리는 한강을 보며 늘 이런 생각을 했다. ‘서울에서 지하철로 출근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그건 임용시험에 합격을 했다는 의미이니까. 그러기만 하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 상담을 하며 보람찬 하루를 보내고, 주말에는 한강공원에 놀러 가거나 서울에 있는 독립서점도 여기저기 가보고, 또 감성 가득한 카페에서 작업도 하고... 지금은 낯설고 어색한 서울이지만 자연스럽게 그 삶에 녹여든 내 모습을 그려보면 왠지 멋져 보였다.


 반전 없이 그 해에 임용에 합격하였다. 서류를 넣기 전 연고도 없는 서울에서 살 수 있을지 잠깐 고민을 했었지만 이 역시 반전은 없었다. 나는 서울이어야만 했다.


 지하철을 타다 한강이 보이는 구간을 지날 때 고개를 푹 숙여 휴대폰을 보던 시선을 돌려 반짝이는 한강을 바라본다. 그러다  한강변의 빌라를 바라보며 ‘저런 멋진 집에는 누가 살까?’하고 궁금해해 보고, 하늘을 바라보며 ‘아 오늘 날씨가 너무 좋구나!’ 하고 미소도 지어본다. 그러다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 순간을 아쉬움 없이 지나친다.


 그럴 때면 이 순간을 간절히 바랐던 때가 짧게 스쳐간다. 처음 발령받은 학교에는 5호선을 타고 아파트가 많은 주거지역으로 출퇴근을 했다. 일자리가 몰린 곳과는 반대 방향이라 수월하게 출퇴근을 할 수 있었다. 몇 달은 신나게 지하철을 타며 꿈에 그린 순간을 만끽하였으나 (예상하듯) 그건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지금은 버스를 타고 종로부터 광화문 빌딩 사이를 지나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을 지나 경복궁을을 둘러 가는  출근길로, 늘 볼거리가 넘치고 멋지지만 대부분은 꾸벅꾸벅 조느라 놓칠 때도 있고 유튜브를 보다가 무심히 지나치게 된다.


 서울생활 6년 차 직장인. 설레던 매일이 조금 익숙해지고, 소중함도 사라져 간다. 일도 익숙해지고, 바짝 긴장하던 어깨도 풀어지고 퇴근하고 바로 침대로 곯아떨어지는 날도 없어졌다. 퇴근 후에는 좋아하는 취미생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일과 삶의 발란스를 조금씩 맞춰가고 있다.


그렇게 일상을 보내다 보면, 이 평범한 일상을 간절히 바랐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때의 나를 만난다면, 반짝이는 눈빛으로 '지금 서울에서의 삶은 어때?'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힘을 북돋아주기 위해(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만들기 위해 ;)

"서울에서의 삶은 정말 즐거워. 내가 무언갈 경험하고 배우려면 언제든 할 수 있는 것도, sns에 뜨는 맛집이나 카페도 다 이곳에 있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서울은 좋은 곳이야.  내가 다른 곳에서의 삶은 살아보지 못해서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노력해서 온 보람이 있다고 생각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직업 덕을 본 날이 많았던 것 같아.


 그런데 살다 보니 직업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해결되는 게 많이 없더라고.  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인연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성취의 압박은 끝이 없고, 인간관계나 일 적으로든 실수를 해서 엉망진창인 날도 있었어.  

이제 6년 차 서울 생활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완전히 이곳에 녹아든 지는 모르겠어. 당연한 건가?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3대가 서울에 살아야 서울사람이래ㅎㅎ 나에게 2세, 3세가 생길지는 모르겠으니 난 영원히 서울사람이 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어. 평생 사는 곳이 이곳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정년퇴직은 당연한 걸로 알았는데ㅎㅎ 뭐 이러다 쭉 이 일을 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미래는 알 수 없지.


 네가 이곳에 온다면 어쩌면 이런 기분을 오랫동안 느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와야 할 거야. 여전히 방황하고 헤매는 느낌. 그렇다고 지레 겁먹거나 단단히 각오할 필요는 없어. 넌 그런 순간들을 잘 견뎌왔으니까. 물론 그 과정에서 실수투성이었지만... 지나간 시간에 후회하는 편이 아니어서 그런가 이랬으면 더 좋았을걸 하는 건 없는 것 같아. 그때의 나라는 사람은 그 순간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꼭 서울이 아니라도 괜찮아'라고 해도 너는 서울이어야만 하겠지. 서울의 의미를 단순히 삶을 사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노력으로 일궈낸 값진 트로피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넌 알게 될 거야 증명하는 삶이 그리 의미 있지는 않다는 것을. 타인은 물론 너 자신에게도 말이야.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삶이 피곤한 게 아닐까. 난 이미 트로피를 품에 안고 세리머니를 했는데 또다시 경기에 참여하려고 하고 있으니까.  빽빽이 어깨를 맞대며 앉아 함께 강의를 듣던 경쟁자들이 사라졌는데도 여전히 조급한 마음뿐이야. 언제까지 끝없는 경기를 치를 수 있을까. 난 누구와 경쟁을 하고 있는 걸까? 난 정말 그 트로피를 가지고 싶은 걸까?


 앗! 앞날이 창창한 너를 두고 이런 말을 해도 되려나 싶네. 도움이 되거나 힘을 주는 말을 했어야 했는데 주저리주저리 넋두리만 한 것 같아. 그래도 너는 이해해 줄 수 있겠지? 너는 나니까. 그래도 이것만은 확실히 말해줄 수 있어.


넌 방황하더라도 언제나 자신을 좋은 방향을 향하도록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할 거라는 것.

그러니 불안해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마.


너는 충분히 잘 해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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