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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미아 Jun 15. 2020

#3. 장거리 관계에 적합한 사람

결국은 체력, 경제력, 그리고 배려


더 어렸던 20대 중반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우리 둘 모두 각자의 실패한 장거리 관계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나는 떠난 사람으로서 그리고 남편은 한국에 남아있던 사람으로서의 경험이었지만, 결국 각자 당시의 연인들과 헤어졌으니, 그 관계는 실패다. 고작 1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여기 멀리 한국에서 비행기로 9시간이나 걸리는 곳으로 이사온지 햇수로 6년째이니까 예전에 비하면 훨씬 오랜 시간인데도, 아무 탈없이 무사히 잘 흘러왔다. 힘든 순간순간은 있었던 것 같은데, 특별한 사건이 기억나지 않는 것 보면 그냥 찰나의 순간으로 지나간 것이 분명하다. 무엇이 나를, 그리고 남편을 잘 버티게 만들었을까?





혼자 잘 못 지내는 사람은 진짜 매력이 없어


내가 항상 입버릇처럼 남편에게 하던 말인데, 혼자 지내면서 제대로 챙겨 먹지 않고, 맨날 아프고, 거기다가 궁상맞아서 병원도 안 가고, 와이프가 챙겨주지 않아서 옷도 후줄근하게 입고, 혼자 있어서 외롭고 슬프다고 맨날 울상인 사람이 아니기를 바랐다. 다른 것은 평소에 내가 챙겨주는 부분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외국에 나와도 잘 먹고 잘 아프지 않은 나는 남편도 나와 최소한 이 부분은 같기를 바랐다.


남편은 혼자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솜씨 좋으신 어머님 덕택에 요리에 크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신혼 때 몇 번 시도했던 결과물을 보았을 때 재능이 크게 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주로 레시피를 참고하지 않고 그의 Feel로 만들어 버리는 바람에 주체의식 강하거나 동네잔치를 벌여도 될만한 결과물이 나왔었다.) 게다가 슈크림빵을 최애빵으로 여기는 디저트 러버에, 피자와 햄버거를 아주 좋아하는 아이의 입맛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먹는 것이 걱정되었다. 역시나 본인도 홀로 몇 주 지내보더니 해결책을 찾았다.


도시락 배달. 한국에 그렇게 많은 옵션으로 도시락이 하루에 주중 두 끼씩 배달이 되는지 몰랐었는데, 한 달에 25만 원 정도면 괜찮은 옵션이었다. 둘이 살 때도 어차피 야근으로 한 달에 주말 한두 끼만 간신히 집에서 해 먹었기 때문에 엥겔지수가 높은 맞벌이 가정이었던 데다, 사실 어쩌다 사는 식재료뿐 아니라 양가 부모님들이 주시는 김치나 기타 반찬도 다 먹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에, 이 옵션은 남편에게 아주 딱 맞는 선택이었다. 게다가 영양도 어찌나 잘 맞춰 나오던지.




적당히 게으른 바쁜 사람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는 사람 중에 한가한 사람은 없다. 기본적으로는 출근 준비하는 시간부터 집에 돌아오는 시간만 계산해 보아도 12시간은 이미 회사일에 매여있는 시간이었고, 잠자는 시간 7-8시간을 더하고 나면, 남는 시간은 하루에 4시간 정도. 나는 평소에 집에 들어오면 더 이상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회사에서 에너지를 고갈하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남편은 오래된 친구들과 가끔 하는 술자리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떠난 이후에는 그것도 금요일이나 주말로 스케줄을 잡고, 평일에는 집에 오면 운동하고 휴식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광진구 어린이 대공원 바로 옆쪽에 살았었는데, 저녁 산책으로는 끝내주는 공원이었다. 남편은 저녁에 좋아하는 음악을 벗 삼아 그 산책길을 한두 시간 정도 걷고, 집에 오면 귀찮아서 피곤해서 씻고 좀 있다가 바로 자곤 했다. 가끔 나가서 하는 술자리도 항상 마치고 돌아오면, 이미 자고 있는 나에게 문자를 항상 남겨주었다.


이런 서로의 삶의 루틴의 공유는 또 다른 좋은 점도 있었는데, 평소의 괜한 오해는 피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기본적인 믿음이 있어야 하지만, 장거리일수록 상대방을 불안하게 만들만한 계기나 불필요한 오해를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나의 경우는 모르는 남자들이 많은 사모임에 가지 않는 것이었다. 외국에 오면 네트워킹은 필수라고 하지만, 꼭 그것이 남녀의 성비를 맞출 필요도 없거니와, 사람은 본능적으로 남녀관계에서의 호감은 바로 알 수 있는 데다, 외로움에 술까지 더해지면 사람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인지 혹은 의지에 반하는 것인지 개인차가 있겠으나, 감당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쉽다. 그래서 아예 그런 계기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이 맞다.


그리고 결혼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외국 생활이라 호기심에 혹은 외로움에 데이팅 앱에 접속되어 있는 사람들도 가끔 눈에 띈다고들 하던데, 그것도 결혼한 사람이면 제발 시작하지 말기를. 생각보다 세상이 좁아서, 그리고 비밀이 없어서 상대방이 알게 되는 것은 대부분 시간문제니까. 나중에 상대방이 알게 되고, 본인은 잘못된 만남을 한 번도 하지 않았음에도 괜한 오해를 사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포기할 줄 아는 마음과 적응할 준비


둘이 이야기하고 결정한 후, 남편은 그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우리 다시 생각해 보면 안 될까"라는 질문을 한 적이 없다. 그 부분은 빠르게 포기하고, 그럼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했다고 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한 것은 회사 일정을 확인해 보고, 몇 번의 일주일 기간의 휴가 일정을 연말까지 짜 놓고 미리 승인을 받아놓는 일이었다. 그리고 생활이야 직접 하면서 적응해야 하는 것이었고, 우선 마음은 편하게 그냥 일상처럼 지내기로 했다. 거의 매일 연락하기는 했지만 5시간의 시간차가 있는 곳이 었기 때문에, 남편의 시간이 항상 더 빨랐다. 그래서 대부분은 문자로 연락하고, 그 연락 자체에 너무 목매이지 않도록 했다.


아마 매일매일 통화하고 얼굴을 봐야 서로의 감정인 확인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장거리 연애나 부부관계의 유지가 힘들 수 있다. 이런 힘든 상황은 마음에서 먼저 오는 것이 아니라 사실 체력적인 부분에서 먼저 오기 시작한다. 서로 하루 일정이 끝나고 마음 편하게 영상통화라도 하려고 치면, 보통 둘 중 한 사람은 너무 늦은 밤이 되거나, 혹은 이른 새벽이기 때문에 일단 수면부족에서 오는 피곤함은 사람은 더 쉽게 지치게 만들고, 우울하고 예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체력과 정신력의 유지가 장거리 관계를 성공적으로 이어나가는 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고, 딱 한 가지만 더한다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번 정도는 생각해보고 행동하거나 결정하는 것. 그리고 섭섭함은 한번 쉬어 표현하고, 고마운 마음은 한 발 앞서 표현하는 것 정도?





가장 중요한 것, 장거리 관계는 게다가 돈이 많이 든다.

오매가매 하다 보면 비행기 값에 오랜만에 만났으니, 돈을 아껴가며 데이트를 하고 싶지 않고, 평소에 가려고 생각했던 맛집에 좋은 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당연히 카드빚에 의지하려는 심산이 아니라면, 얼굴 못 보면서 열심히 살기로 한 시간에 정말 열심히 살아서 돈도 열심히 모으던지 아님 벌던지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장거리 부부를 하면서 큰돈을 모아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버리는 게 좋다.

돈을 아끼려고 볼 수 있을 때 보지 않고 지낸다면, 그동안에 마음에서 멀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리워하면 그리운 대로, 시간과 조건이 될 때는 최대한으로 만나 마음껏 사랑할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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