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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Jade Jan 17. 2020

여행하던 내가 문득 쓰레기 같았다

원 없이 자원봉사 활동해보려고 떠난 길바닥 여행기 (8)


나에게 실망했다.

아즈메르(Ajmer) 버스터미널에서 두 손을 내미시는 인도 할머니께 아무 생각 없이 5루피 동전을 던졌다.

'던지는' 행위를 했다는 사실과 '무의식적'으로 행해졌다는 상황에 더불어, 그 대상이 '두 손'을 내밀고 계셨던 할머니였다는 점에서 이건 변호사를 선임할 필요도 없이 그냥 유죄였다.

'외면하지 않고 동전을 건네 놓고는 뭘 그러냐, 착한 척하는 거냐' 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마음가짐이 변했다는 데 있었다. 아무리 비슷한 분들을 많이 만났다고는 하지만 내 스스로가 정한 선을 넘은 기분이었다.


그러다 며칠 후 결정적인 일이 벌어졌다.

자이푸르에서 아그라행 버스를 기다리며 잠시 젬베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이 신기했는지 저 멀리서 젊은 친구 하나가 다가와 내 앞에 멈춰 섰다. 웃는 얼굴로 보아하니, 내 또래 정도 돼보였다. 그런데 그 친구 양 손에 가득 들려 있는 생수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아무 생각 없이 “생수 필요 없어요. 생수 안 사요.”라고 내뱉어 버렸다.

그러자 그는 실망한 표정으로 생수 통을 뒤로 숨기면서 “아, 생수 안 사도 돼. 그냥 이야기해보고 싶어서 왔어...”라며 말끝을 흐렸다. 아차 싶었다. 두 손에 생수를 든 체 장사를 하다가, 잼베 치고 있는 내가 신기해서 찾아온 거뿐이었다. 마침 버스가 출발한다며 탑승하라는 소리가 들렸고, 생수 장수는 그렇게 쭈뼛쭈뼛 손을 흔들고는 떠났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그 친구의 낙담한 표정이 잊히지 않았다.

‘이런 배낭여행자라니, 못해 먹겠다, 나.’

내 스스로에게 진절머리가 났다.




'타지마할'을 마주해도 좀처럼 기쁘지가 않았다. 숙소에서 밤까지 뒹굴기만 하다가 잠시 산책할 겸 혼자 좀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는 데 철길 밑에서 한 거지 할머니를 만났다. 자정이 다된 시간에 머리를 푹 숙이고, 두 손을 모은 채 아무 말 없이 구걸하고 계셨다. 조금이라도 도와드리고 싶었지만, 지갑을 숙소에 두고 나와서 돈이 한 푼도 없었다. 어쩔 수 없으니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자꾸 그 할머니가 눈에 밟혔다. 다시 길을 돌아 그 할머니를 스쳐갔다 다시 돌아왔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돈 대신 내 손을 내밀어 할머니 손을 꼬옥 잡아 드렸다. 고개를 푹 숙이고 계시던 할머니께서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드셨다가 나를 바라보시고는 내 손을 꼬옥 잡고 웃어 주셨다. 고맙다며 이가 다 드러나도록 활짝 웃어 주셨다. 친할머니에게서 느껴졌던 따뜻함이 투박하고 억샌 할머니 손을 통해 전해졌다.

과장된 표현임에 틀림이 없지만, 마치 할머니께서 내게 이렇게 이야기를 건네고 계신 것만 같았다.

‘하루 종일 여기 앉아서 나는 돈을 구걸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누군가가 내 손 한번 잡아 주기만을 기다렸다네. 사람들은 내게 돈이 필요할 거라 생각하겠지만, 정말 내가 필요로 하는 건 돈보다도 사랑과 관심이었다네.’

-



자고 일어 나니 전날에 비해 몸이 훨씬 개운했다. 기운도 좀 났겠다 싶어 아그라 성을 구경하러 나섰다.

한참을 걷는데 한 릭샤꾼 할아버지께서 자꾸 나를 불러 세우셨다.

“젊은이! 이야기 좀 하지! 릭샤 한번 타봐”

“할아버지, 저 여기 코 앞에 있는 아그라 성까지만 가면 돼요. 걸어서 갈 수 있어요.”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젊은이, 오늘 한 끼도 못 먹었다네. 그냥 돈 받을 순 없고, 릭샤 좀 타 줄 순 없겠나.”라며 너무 솔직한 고백을 하셨다. 치명적인 고백이었다. 결국 나는 그 고백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정말 식사를 못하셨는지, 언덕이 나오니 힘에 부쳐 낑낑대셨다. 결국 바퀴를 굴리지 못하고 땅에 내려서 손으로 릭샤를 끌기 시작했다. 그것도 걷는 속도보다 느리게.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내가 거의 후레자식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할아버지, 저 릭샤 한번 몰아 봐도 될까요? 인도에 와서 꼭 한번 몰아보고 싶었거든요”

“뭐라고? 정말? 정말 그럴 수 있겠어?”

그럴듯했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쉽게 할아버지는 내 거짓말에 속아주셨다. 그렇게 할아버지를 릭샤에 태우고 내가 릭샤를 몰기 시작했다.

'이럴 때가 아니면 내가 언제 릭샤를 몰아 볼 수 있겠나' 싶었다.

그리고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할아버지가 자신의 릭샤 위에 편하게 앉아 갈 수 있을까' 싶었다. 나름 왕년에 자전거 좀 타봤다는 내가 잠시 몰아도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그동안 얼마나 무거운 무게를 몰고 다녔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헤어지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자연스레 그동안 잘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보였다.

물소를 몰고 다니는 아이들과 힌디어로 이름을 주고받기도 하고, 볼펜을 사러 간 가게에서 'Fan'과 'Pen'의 발음 때문에 선풍기를 살 뻔해 주인아저씨와 마주 보며 껄껄껄 웃기도 했다. 길에서 만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동전을 쥐어드리면서 내 손도 함께 한 번씩 꼬옥 잡아드렸다. 그랬더니 내게 기도 해주는 할머니가 생겼고, 같이 손을 꼬옥 잡아주는 할아버지도 생겼으며, 심지어 눈물을 머금으시는 할머니도 계셨다.  

- 

거리에서 만난 인도 사람들을 계기로, 여행 중에 해보고 싶은 일이 하나 추가됐다.  

'돈이 꼭 필요한 세상에 돈보다 더 중요한 걸 찾아내고 내 스스로 정의 내려 보는 것.'

여행의 숙제가 쌓여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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