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ear Jade Jan 21. 2020

인도 콜카타의 나만 아는 별5개짜리 유명 관광지

원 없이 자원봉사 활동해보려고 떠난 길바닥 여행기 (11)


여행자들로 늘 붐비는 ‘미르자 갈립’ 거리를 걷는 데 눈에 낯익은 간판이 보였다. 

‘DON BOSCO SHOP’. 

‘울지 마 톤즈’ 이태석 신부님을 좋아했던 터라 돈 보스코라는 단어가 눈에 딱 들어왔다. 신부님이 수단에 세운 학교 이름이 돈 보스코이고, 그곳 현지 사람들이 신부님을 돈 보스코 라 부르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번화한 여행자 거리에 뜬금없이 돈 보스코 샾이라니 도대체 뭘 파는 가게 일지 궁금했다. 그때부터 종종 일부러 먼 길을 돌아 그 거리를 들렀는데, 그때마다 문은 계속 닫혀 있었다. 그러다 콜카타를 떠나기 며칠 전, 드디어 열려있는 돈 보스코 샾을 보았다.  

- 

“안녕하세요! 제가 올 때마다 문이 닫혀 있었는데 오늘은 열렸네요!”

“하하 열렸다 닫혔다 해요. 그래도 자주 열었는데 타이밍이 안 맞았나 보네요.”

많아도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친구가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가게 안에서는 지갑, 장식품과 같은 수공예품과 엽서, 편지지 등을 비롯해 빵과 차도 판매하고 있었다.

“여기서 파는 전부 다 돈 보스코 학교에서 애들이 만든 거예요. 하하”


“아 정말요? 이 빵까지도요?”

여기에서 판매하는 모든 물건은 돈 보스코 학교라는 곳에서 공동체 생활하는 아이들이 만든 거라고 했다.

궁금했다. 말로만 학교이지 아이들을 가둬두고 돈을 버는 악덕 업체는 아닌지, 어떤 아이들이 그곳에서 생활하는지 등등 말이다. 


휴지 종이에다 약도와 찾아가는 방법을 받아 그 길로 곧장 돈 보스코 학교로 향했다. 버스에 올라 1시간을 달리니 기사 아저씨가 ‘돈보스코’ 근처의 카탐탈라 버스역에 내려준다. 여행자 구역이 아닌 곳이라 불안한 마음에 한참을 헤매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이끌려 겨우 ‘돈보스코’를 찾을 수 있었다.  

축구하던 아이들이 입구로 들어오는 우리를 보고 달려왔다. 곧이어, 이 곳 돈 보스코 디렉터의 아들이 다가왔다. 낯선 이방인의 방문에 어리둥절하는 눈치였다. 


“안녕하세요! 어떤 일로 여기까지 다 오셨나요?” 

그가 상냥히 내게 물었다. 

"아 사실 돈 보스코 샾에서 이 곳을 소개받아서 구경 왔어요. 제가 비영리단체 일에 관심이 많아서 어떤 곳인지 너무 궁금했거든요!"

"아 그러셨군요! 여기까지 찾아오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신기했어요. 그럼 제가 구경시켜드릴게요!" 

 다행히 그는 흔쾌히 학교 구경을 시켜주었다. 그의 안내를 받으며 빵을 굽는 것부터, 옷 수선, 책 제작, 목공예를 하는 교실까지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아이들의 손놀림은 어색해 보였지만 표정이나 눈빛만큼은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씨익 웃으니, 그제야 경계를 풀고 흰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인다.  




'상담실'이라고 적힌 방도 들렀는데, 상담사 ‘시프라 수라나’가 일하는 책상 바로 옆에서 3명의 아이들이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자 그녀는 “쉿!”이라며 주의를 줬다. 눈인사를 서로 건네고는 그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오늘 막 레일웨이 프로그램을 통해 하우라 기차역에서 데려온 아이들인데 피곤해서 자고 있어요. 먼저 좀 재우고 좀 있다 일어나면 상담을 해보려고요.”

“레일웨이 프로그램이요?”

내가 되물었더니 그녀는 웃으며 친절히 답해주었다. 

“아, 기차역 근처에는 집 나온 아이들이 많아요. 그 애들은 알코올 중독에 빠지거나 평생을 구걸하면서 살죠. 여기 오는 애들도 70%는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에 빠진 애들 이예요. 바로 이 아이들을 설득해서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는 일이 레일웨이 프로그램이에요.”

평균 14살 정도의 아이들이 매일 서너 명은 이곳으로 온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데려 오는 거예요? 가자고 하면 그냥 올 것 같진 않은데 순순히 따라오나요?”

그러자 그녀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직원 중에서 직접 필드로 나가서 일을 하는 직원들이 있어요.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 기차역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며 아이들을 설득하죠. 조금 다른 삶을 살아보지 않겠냐고 설득하면서요. 그렇게 한 아이에게 매일 3일 정도 말을 걸면, 아이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해요. 그렇게 마음을 여는 아이들을 데려와서 우선 이야기를 들어요. 왜 기차역에서 지내는지, 집은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등등.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돌아갈 수 있도록 돕고, 돈 보스코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공부하고 싶다면 여기서 지낼 수 있도록 돕죠.”

어른들의 시선에서 무조건 훈계를 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듣는다는 점에서 놀랐다. 그리고 아이가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

아이들의 건전한 사회 복귀를 향한 6단계(6 steps towards rehabilitation) 
(1) 거리의 아이들에게 기회를 제공
(2) 사회 악습의 연결고리 끊기
(3) 직무에 따른 역할 분배 및 교육
(4) 생계와 사회복귀를 위한 전문적 훈련 및 학술적 교육
(5) 수입, 소비 그리고 저축에 의한 자립을 보조
(6) 완전한 자립





대화 소리가 시끄러웠는지 아이들이 고단한 몸을 뒤척였다. 단잠에서 깰까 싶어 조용히 상담실을 나오니, 이 곳의 단체장님이신 '사주' 아저씨께서 우리를 사무실로 맞아주셨다. 사무실로 들어서며 내가 제일 먼저 던진 질문이 '힘드시진 않으세요?'였다. 그만큼 이 곳에서 하는 일이 대단하면서도 힘들어 보였다.  


그 질문에 아저씨는 한참을 생각하다 운을 뗐다.  

“아주 많았죠. 사실 아직도 힘이 들어요. 아이들에게 처음에 다가가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에요. 도망쳐 나왔거나 버림받아 상처 받은 아이들이기 때문에 아주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열어요. 게다가 많은 아이들이 폭력적이고, 알코올, 약물 중독에 빠져있기도 하고요."

아저씨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 아이들에겐 의지할 만한 부모가 없고, 심지어 부모가 있다 해도 아이들이 집으로 되돌아오는 걸 원치 않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기차역에서 구걸을 하고, 빈 병을 모으는 일을 하면서 푼돈을 벌며 지낸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다가가 마음을 여는 건 기적이라고 봐요, 전.”

의외의 대답이었다. 전혀 힘들지 않고 행복하다는 대답을 기대했는데, 현실적으로 힘들었던 부분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들려주셨다. 

“그럼 데려오고 난 뒤에는 어떤가요?”

아이들이 잘 적응하는지가 궁금했다. 


“물론 아이들이 돈 보스코에 적응하는 일 또한 쉽진 않아요. 거리에서 아주 자유롭게 지내는 생활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처음에는 돈 보스코에서의 규칙적인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해요. 참지 못하고 도망치는 애들도 꽤 있고요. 그래서 먼저 아이들이 규칙적인 생활에 적응하도록 최대한 내버려 둔 다음에, 천천히 가르치기 시작하죠. 끝까지 남아 졸업한 애들 중에는 대학을 가서 계속 공부하는 애들도, 여기서 기술을 배워 취직하는 애들도 있어요. 여자아이들의 경우에는 간호사가 되기도 하고요.”

“우와, 그런 아이들을 볼 때면 보람차시겠어요?”

이 질문에 아저씨는 드디어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럼요. 아이들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끼죠. 돈 보스코는 이 아이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존재예요. 계속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버팀목이 되고 싶어요.”

짧지만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기관장 '사주'아저씨께 감사 인사를 건넨 뒤 방에서 나왔다. 어느새 노을이 지려 하고 있었다. 


콜카타에서 머무르는 동안 정작 유명한 관광지는 한 번도 제대로 가보지 못했다. 이 도시에 가면 이걸 봐야 하고 저 도시에는 저걸 봐야 하는 관광지가 가이드북에는 빼곡히 있었다. 그러나 내가 정한 여행의 내 가이드북에는 이 돈 보스코 학교가 별 5개짜리 숨은 관광지였다. 들리지 않았으면 계속 후회할 뻔한 잊지 못한 관광지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죽음을 기다리는 집'의 죠셉 할아버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