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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Jade Feb 13. 2020

돈도 아니고, 사탕 하나 준 거 가지고 왜 그래요?

원 없이 자원봉사 활동해보려고 떠난 길바닥 여행기 (15)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 Annapurna Base Camp)를 함께 오르기로 한 가이드 누나의 이름은 '비누'였다.

비누 누나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야물딱진 인상에 강한 아우라를 풍겼다. 그런 가이드 누나와 처음 발맞춰 걷기 시작할 때만 해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무슨 이야기를 꺼내며 일주일 동안을 함께 걸어야 하나.'

'무사히 베이스캠프에 다다를 수 있을까'


여러 생각들이 머리에 스쳤다. 그러나 내 인생에서 스쳐간 대부분의 걱정들이 그러하듯, 이런 걱정들도 결국에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나가 던지는 장난스러운 질문들에 긴장이 눈 녹듯 사라졌고, 그런 누나를 나 역시도 “비누 디디(누나), 디디(누나)!”부르며 잘 따랐다.

누나는 꼼꼼하고 똑 부러지는 성격이었는데, 그런 모습들이 참 듬직했다. 마치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야’라고 말해주며 안도감을 심어주는 듯했다. 그렇게 함께 산행을 하며 누나에게서 기본적인 네팔어를 배우기도 했고, 궁금한 점들을 묻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누나는 항상 웃으며 네팔어를 알려주고, 곰곰이 고민해가며 내가 묻는 이야기에 답을 해주었다.  





비누 누나는 대학교 3학년인데 학비를 벌기 위해 가이드 일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친구의 소개로 3년 전에 쓰리 시스터즈를 알게 되었고, 1년 6개월 동안 보조 가이드로서 교육을 받고 난 뒤, 정식 가이드 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트레킹 성수기 시즌이라 잠시 학업을 멈추고 일만 하고 있어요. 네팔에서는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시험을 통과해야 되는데, 돈을 벌면서 공부하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스스로 학비를 벌면서 느리지만 천천히 꿈을 찾아가는 누나가 멋졌다. 아무리 그래도 여성으로서 가이드 일을 하면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 말이다.

“그런데 누나 하필 왜 가이드 일을 선택했어요? 힘든 일이 많았을 텐데”

그러자 누나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대답을 해주었다.

“우선 네팔에서는 여성들이 직업을 가지는 게 너무 힘이 들어요. 그래서 오히려 저는 이 일에 너무 감사해요. 처음 여성 가이드가 생소했을 땐, 남녀 가이드가 뒤엉켜서 지내기도 했는데, 지금은 많은 부분을 배려해주기도 하고, 격려해주시는 분들도 많고요. 그래서 지금의 이 일은 정말 좋아요."

누나는 진심으로 본인의 일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럼 누나가 생각하는 어려운 점은 없나요?"

그래도 여성으로서 이 산악 가이드 일에 힘든 점이 있을 것 같아서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러자 누나가 다시 생각을 곰곰이 하더니 이야기를 조심스레 이어갔다.

"음.. 다만, 손님 분들이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을 때는 조금 힘이 들 때가 있어요. 가이드로서 드리는 이야기들인데, 여성이라 그런지 종종 무시할 때가 있어요. 가령, 산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잘 안 지키시는 경우가 그렇죠. 쓰레기 함부로 버리지 말아야 하고, 자연을 훼손해서는 안 되고 등등 이 외에도 정말 기본적인 원칙들이 있잖아요. 좋게 말씀드려도 무시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저도 화가 나기도 해요. 또, 힘들게 숙소를 예약해놨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는 분들도 계세요. 알다시피 성수기에는 숙소 구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거든요. 가이드 일은 산간 마을 주민들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데, 그런 일이 생기면 신뢰를 잃게 되고 예약도 잘 안 해주게 돼요.”

고맙게도 누나는 그동안의 고충들을 내게 털어놓아 주었다. 그래, 일주일에 한 번 꼴로 4,000m가 넘는 산을 오가야 하고, 동행인들을 인솔하며 올라야 하는 일인데 어떻게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신기한 건요, 아무리 힘들어도 제 가이드를 받은 여행자들이 산행에 만족을 느끼고 무사히 여정을 마치면, 힘든 일이 눈 녹듯 사라져요. 그 사람들이 행복해하며 고마워할 때, 저도 보람이 들고 참 행복해요. 그리고 ‘쓰리 시스터즈’가 이곳에서 워낙 평판이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격려해주고 응원해줄 때 힘이 나고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려운 일 일텐데 그래도 본인의 일을 행복해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동생이자 친구로서 대견해 보였다.

“그럼 누나, 평생 이 일하는 거예요?”

“에이, 그건 아니죠. 하하. 저에게도 꿈이 있다고요. 어서 빨리 학교를 졸업하고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지금 공부하는 영어와 지리학을 살려서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누나의 말에 웃으며 꼭 멋진 선생님이 될 거라고 진심으로 응원했다. 힘든 환경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꿈을 향해 나아가는 누나가 참 좋았다.  

 




그런데 내가 가장 좋아했던 누나의 모습은 따로 있었다.  

한 번은 산길을 걷다 작은 마을 하나를 만났다. 마을에는 서너 명의 꼬마 아이들이 있었는데, 우리를 발견하고는 “머니, 머니! 캔디, 캔디!”하며 졸졸 따라왔다. 많아도 대여섯 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애들이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기에, 나도 모르게 가방에 있던 사탕을 꺼내 애들에게 나눠 줬다. 그때였다.

“하섭! 그러지 말아요! 계속 가던 길 걸어요!”

계속 따라오는 애들이 안타까워 사탕 하나 나눠 준 건데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살짝 서운함이 들었다. 비누 누나가 그렇게 화를 내는 모습이 처음이라,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말없이 누나를 따라 걷다 퉁명스럽게 물었다.

“비누 누나, 사탕 정도는 되지 않아요? 돈을 준 것도 아니고, 애들이 그렇게 원하잖아요.”

그러자 누나는 이해한다는 듯이 부드럽게 답했다.

“내가 화내서 서운했죠? 하섭 마음 다 알아요. 그런데 정말 그 애들을 도와주고 싶다면 아무것도 줘선 안돼요.”

단호한 누나의 말에 내가 되물었다.

“캔디 조차도요?”

“그럼요. 입에 들어간 캔디는 잠시 단맛을 낼 순 있지만 곧 녹게 되죠. 그렇게 순간의 단 맛을 찾아 아이들이 구걸하다 보면 더 많은 걸 바라게 되고, 점점 더 구걸을 하게 될 수밖에 없어요. 하섭이가 준 건, 캔디 하나에 불과하겠지만 그 캔디가 아이들을 점점 더 무기력하게 만들어요.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해서 캔디를 사 먹게 돕는 게 아니라면 관광객들이 오가며 주는 캔디는 그저 단맛 나는 독에 불과해요.”

나는 아무 말도 못 한 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걸으면서 곱씹어 보니, 비누 누나의 그 말이 점점 더 내 가슴에 와 닿았다. 어찌 보면 손님이기도 한 나에게도, 굽히지 않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녀만의 소신과 그 단호한 용기를 나는 너무나도 본받고 싶었다.

그렇게 일주일간의 우리들의 산행은 무사히 끝이 났다. 산행을 하며 가이드 '비누' 누나에게서 배운 모든 것들이 안나푸르나의 녹지 않는 만년설만큼이나 눈부시게 내 머리와 심장에 녹지 않고 남아 있다. 사실 안나푸르나의 절경보다 가이드 '비누'누나와의 추억이 더 기억에 남는다. 흡사 소설 '연금술사'의 주인공이 보물을 찾아 이집트로 여행을 떠났지만 진정한 보물은 멀리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던 것처럼, 안나푸르나에서 그토록 보고자 했던 그 무언가를 나는 이미 '비누'누나를 통해 마주하고 있던 건지도 모른다.


비누 누나는 단순히 산길만을 안내해주는 가이드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과 관광객들인 우리가 함께 걸어야 될 길을 안내해주는 진정한 가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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