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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론-12
생명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우린 생명이 생명체의 몸속에 거(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해도 큰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생명도 기억 혹은 이미지처럼 끊임없이 흘러넘치는 것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나의 생명은 내 몸속에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외부로 전해진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외부로서 가장 먼저 떠오는 게 나의 자식들입니다. 좀 더 확장하면 식구(食口)들이겠죠. 함께 밥을 먹는 입들 말입니다. 함께 밥을 먹다 보면 생명이 흘러넘쳐서 서로에게 전해지고 식구들은 서서히 닮아 갑니다.
어디선가 생명의 씨앗을 받아 태어났고 그 생명을 몸속에 간직하며 살다가 죽을 때는 생명이 꺼져 버리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생명은 작게는 나의 부모로부터 넓게는 지역 및 지구 아니 우주로부터 내게 흘러넘쳐 온 이미지들이죠. 나 역시 그걸 내 몸속에 간직하고 사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나의 자식들에게 식구들에게 그리고 주변으로 더 넓게는 지구, 우주로 흘러넘치는 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로지 흘러넘치면서 확장만 하는 걸까요? 아닙니다. 확장도 하고 수축도 합니다. 저는 그 수축을 ‘주름’이라 생각했습니다. 수축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로 쌓이는 겁니다. 기억도 그렇죠. 이미지는 어떨까요? 확장하면서 수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가령 자연수 1, 2, 3..... 등은 무한하게 확장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과 2 사이에도 무수한 수들이 있습니다. 1과 2 사이를 무한으로 나눈다고 했을 때 수와 수 사이를 다시 무한 분할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무한 분할 가능한 수들은 모두 주름 속에 쟁여져 있는 겁니다. 그럼 확장하는 무한은 어떤 걸까요? 확장하는 무한은 ‘열려 있음’으로 보아야 할 겁니다. 이렇게 수축 즉 주름과 열려 있음으로 우주는 가득한 것이죠. 열려 있지만 가득할 수 있는 것은 ‘주름’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간혹 동물의 세계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지구의 외부 어디선가 생명의 씨앗이 지구로 날아온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생명의 씨앗이 지구로 오기 전엔 지구에 생명의 씨앗이 없었던 것처럼 말하는 것이죠. 하지만 어느 날 생명의 씨앗이 지구로 날아온 게 아니라 지구 자체가 생명인 것이죠. 나는 인간으로서 지구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지구와 나는 모두 지구였을 겁니다. 지구가 (특히 지구 위에) 있고 생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인간을 비롯해서 생명체들 모두가 지구 그 자체입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 대해 접혀 있고 확장되고 하는 것이죠. 그게 ‘액체성’의 중요한 특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액체성으로 존재합니다. 이미지의 주름상자인 기억은 완전한 액체성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나는 누군가를 기억할 때 그가 액체처럼 허물허물 한 존재 같다고 느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기억은 모두 액체 상태로 존재하고 기억되고 수축하고 확장합니다. ‘기억의 액체성’이라고나 할까요.
그때 액체는 불처럼 활활 타오릅니다. 기억 속 모든 액체적 순간들은 뜨겁다고 아우성칩니다. 그렇다고 그곳이 지옥은 아닙니다. 모두가 고체와 기체의 중간, 차가움과 뜨거움의 중간에서 살아가는 것이죠. 그게 무섭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지는 그런 것들입니다. 아무리 규정하려고 쪼개고 또 쪼개도 결코 쪼개지지 않는, 잡으려는 순간 사라지는, 하지만 늘 역동성으로 존재하는 물의 흐름처럼 주름을 빠르게 훑으며 지나가는 힘들이라는 말입니다. 생명 이미지도 그런 것 같습니다. 탕탕한 흐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