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론-13

13

by 최희철

이미지론-13


무상(無常)이라는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무상에서 ‘상(常)’은 ‘늘’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여기서 ‘늘’이란 ‘좋은 것’으로서의 ‘늘’ 일 겁니다. 이른바 푸른 게 그것이죠. 그래서 무상은 늘 푸르지 않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늘 푸르지 않다 즉 ‘무상’이란 좋을 때만 있는 게 아니라 나쁠 때도 있다는 걸 말하는 것이죠. 그게 바로 사이키 조명 같은 삶이죠. 하지만 생각해 보면 정말로 삶이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이키 조명은 어둠과 밝음이 반복되는 겁니다. 차이의 반복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우리에게 좋고 나쁨이란 게 있을까? 물론 선과 악처럼 좋음과 나쁨이 영구불변한 게 아니라, 순간적이라 할지라도 우리 삶에 유용하다는 의미로 나쁨이라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좋고 나쁨이라는 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저는 그런 게 없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럼 어떤 게 남을까요? 저는 오직 좋은 것만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은 늘 ‘좋은 것’으로만 가득하다는 것이죠. 그럼 사이키 조명은? 사이키 조명은 늘 좋은 것들의 다름으로써 ‘차이의 반복’이지요. 추호(秋毫)도 나쁜 게 없는 좋음의 세계가 바로 우리의 삶일 수 있다는 겁니다. 니체가 말한 ‘운명애’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몸(정신과 육체) 상태를 생각해 봅시다. 태어나서 젊게 살다가 젊음을 잃어버리면 늙음이 오고 그리곤 죽게 됩니다. 선형(線形)적 관점으로 보면 태어나서 가장 건강한 시절을 거쳐 점점 건강을 잃어버리면서 나중에 푸르디푸른 시절을 모두 잃게 되면 죽는 것이죠. 과연 그럴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록 늙어 가는 것도 한순간 한 순간을 가장 건강한 시절을 사는 것이죠. 물론 모두가 다 다른 건강함의 순간들입니다.


그럼 병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스템으로서의 몸이 가장 유효 적절한 자신의 몸 시스템을 구축하는 중에 생긴 상태(혹은 사건)인 것이죠. 마치 기침을 하고 미세혈관까지 피를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혈압을 높이는 것처럼.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암’도 마찬가지입니다. 몸 시스템이 그 순간 가장 적절한 시스템을 구사하는 상태가 ‘암’ 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의학적 관점에 반(反)하는 생각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몸은 늘 최적의 시스템을 구사하려는 욕망으로 가득하다는 겁니다. 상승은 물론 우리에게 하강처럼 보일 때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그런 욕망이 작동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난 일반적으로 말하는 의미로서 ‘병’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순간이든 그게 최적의 상태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옥과 천당이 있을까요? 전 없다고 생각하는데 굳이 말하자면 오직 ‘다양한 천당’이 있을 뿐이죠. 각자에게 알맞은 ‘천당’ 말이죠. 나쁜 짓을 잔뜩 하고 죽은 사람도요? 네! 그럼 이원론은? 이원론은 오직 편의를 위해서만 있을 뿐입니다. 오직 일원론뿐이죠. 열려 있으며 내부적으로 무한하게 주름 잡힌 일원론 말입니다.


우리는 태어난 적도 없을뿐더러 죽을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삶을 사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늘 좋은 상태들의 삶을 구사하려는 안간힘뿐이죠. 그렇다고 일상에 필요한(?) 좋음과 나쁨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진 않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좌파(左派)’이긴 하지만 ‘진보’는 아닙니다. 이원론을 인정치 않는 좌파일 뿐이죠. 좌파는 가장 왼쪽에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런저런 위치에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전 12화이미지론-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