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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론-14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뱃놈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골 때리는 게 많습니다. 자신이 어디 어디에 갔다 온 것(배를 많이 탄 것)을 자랑삼아 이야기할 때가 많습니다. 가령 서사모아나 피지 같은 곳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듣다가 너무 구체적이고도 길어서 언제 다녀오신 이야기냐고 물어보면 1970년대나 1980년대라고 합니다. 지금은 2024년이잖아요. 그리고 그 기간도 몇 시간(상륙이 가능한 시간)에서 며칠 동안입니다. 나도 1985년 인도양의 오만이라고 하는 나라를 갔다 왔습니다. 갔다 와서는 오만이 공화국이 아니라 왕국이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수도(무스카트)와 항구 입구의 청과물 시장, 낮에는 문을 닫는(너무 더워서) 관습, 호텔이 아닌 곳에서는 술을 마실 수 없으며, 길거리에서 여자를 보기가 어렵다는 얘기, 덥지만 습기가 없어 모두 소매 긴 옷을 입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습니다. 당시 오만에 갔다 오지 않은 주변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듣고 오만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렸을 겁니다. 그때 내가 오만에 대해 조금 거짓말을 섞었더라도 그들은 몰랐을 겁니다. 그리고 나 역시 오랜 시간 동안 내가 40여 년 전에 보았던 오만에 대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게 너무 오래되었다는 겁니다. 40여 년 전에 갔다 온 오만, 서사모아, 피지 등은 지금과는 확연하게 다를 겁니다. 너무도 극명하게 표시가 납니다. 같은 오만이나 피지일지라도 다른 오만이고 피지입니다. 제가 전에 TV에서 여행 프로그램을 보니 오만의 무스카트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 그곳에 가면 길을 잃을 정도로 말이죠.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것들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됩니다. 지금 오만과 40여 년 전 오만이 다르다는 걸 말입니다. 하물며 1살이었던 나와 63살인 지금 나는 어떻겠습니까? 완전히 다른 나겠죠. 그런데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고 어제 나와 오늘 나는 어떨까요? 다를 겁니다. 하지만 다르다고 생각하기란 쉽지 않죠. 외부에서 나를 보는 것도 그렇고 나 자신이 나를 보는 것도 그렇습니다.
가끔 근처 옥봉산에 가는데요, 옥봉산이지만 늘 다른 옥봉산입니다. 옥봉산만 그럴까요. 내가 집을 나설 때 우리 동 근처에 있는 바람공원, 도로, 43번 버스, 탑마트, 자유아파트, 교회들(교회가 너무 많습니다), 학교, 풋살 경기장, 그리고 옥봉산 초입 숲길 등등. 모두가 어제와 다른 풍경이죠. 그런 다른 풍경 속을 늘 다른 시간에 다른 내가 걸어가는 것이죠.
그런데 우린 간격이 매우 짧다면 다르다고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제주도 정방폭포(물이 육지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를 생각해 봅시다. 물론 작년 혹은 어제 정방폭포와 오늘 정방폭포는 다르겠죠. 하지만 미친 듯 쏟아지는 물줄기들의 운동성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순간순간의 시간은 어떤가요? 우리는 그냥 정방폭포라고 부르지만 다른 정방폭포일 겁니다. 아무리 짧은 구간으로 자른다고 생각해도 늘 다른 정방폭포일 겁니다. 작년뿐 아니라 심지어 어느 한순간 바로 곁에서 정방폭포를 바라보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단 한 번도 동일한 정방폭포 혹은 물줄기의 낙하를 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정방폭포 근처에 있다가 바위에 부딪히는 물보라에 몸이 적셔지는 경우는 어떻겠습니까? 모두 다 다른 정방폭포이고 몸이 젖은 자신이겠죠. 그렇게 모든 게 다 다르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