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우는 아이는 내 아이뿐이다.공에 맞아서, 공을 뺏겨서, 시합에 져서 눈물을 훔친다. 내성적인 우리 부부를 꼭 닮은 일곱 살 아들. 스스로 원해서 시작한 축구 교실이건만 무어 그리 애처로운 일이 많은지, 대기석에 앉아 지켜보는 내 마음은 하얗게 타들어만 간다.
아들은 또래보다 철이 빨리 든 편이었다. 성격 탓인지 어린것 답지 않게 예민하고 남의 이목에 많은 신경을 썼다. 자그만 실수에도 커다란 눈망울엔 금세 울음이 가득 차오르곤 하던 녀석. 한숨이 절로 났다. 왜 나는 항상 마음 졸이는 엄마여야만 할까.
친구와 번갈아 공 주고받기 연습을 할 때였다. 짝이 된 친구가 공을 너무 세게 차는 바람에 공이 라인 밖으로 멀리 흘러가 버렸다. 그저 가서 주워오면 될걸, 아들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더니 굴러가는 공과 함께 울음을 터뜨렸다. 자신의 예상 범위를 넘어섰던 모양이다. 어쩔 줄 몰라하는 녀석의 뒷모습에 나도 딱 울어버렸으면 했다.
시합 때도 그랬다. 머뭇대다 빼앗기는 공이 하도 답답해서 먼저 좀 차보라고 다그쳤더니 혹여 친구 다리를 차게 될까 봐 못하겠단다. "친구가 아프잖아." 그게 아이의 대답이었다. 그날 밤 늦게 퇴근하고 돌아온 신랑을 붙잡고 쌓아왔던 하소연을 했다. 사내자식이 저렇게 여려서 어디다가 쓰겠냐고. 내가 낳은 자식이지만 도대체가 모르겠다고.
잠자코 듣던 신랑이 막 웃더니 말했다. "우리가 울보였잖아." 머리가 뜨끔했다. "그런데도 우리 잘 살고 있잖아. 기다려주자. 인정해주자. 그게 부모야."
문득 새 축구화를 사던 날 환하게 웃던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스스로 축구를 하겠다던, 그 기특한 순간을 나는 잊고 있었나 보다. 이상하게 눈 밑이 더워왔다. 그날 밤 잠든 아이의 종아리를 쓰다듬는데 그렇게도 미안할 수 없었다. 사실 그 눈물병, 서른이 훌쩍 넘은 나도 아직 못 고쳤는데.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을 아이를 통해 고스란히 만나야 한다는 현실이 힘들었던 걸까.고쳐야 될 것은 눈물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참 늦게도 깨달았다.
책에서 그러더라. 육아가 힘들수록 '너는 얼마나 멋진 사람이 되려고 그러는거니' 라 생각하라고. 나는 여전히 축구 시간이면 발가락에 땀이 쭈뼛 솟는 유일한 엄마다. 그럼에도 내색 않고 못 본 척 웃는 것은 아이를 통한 기다림을 배웠기 때문이다. 떼굴떼굴 굴러가는 저 흑백의 공처럼, 녀석의 눈물도 성장통도 모두 모두 굴러갈 테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네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을 달려가렴. 눈가가 남들보다 짓물러도 충분히 멋지고 행복한 어른이 될 수 있단다.